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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폭등은 폭력적 약탈보다 더 나쁜 '합법적 약탈'"

입력 2022. 07. 0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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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로 본 '이상한 부동산 공화국'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2015년 개봉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수남(이정현 분)은 자기 동네 재개발을 반대하는 옆 동네 통장에게 복어 독을 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구청 운영 무료 심리 상담센터 소장이기도 한 통장에게 수남은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표정에선 망설임은커녕 미안함조차 묻어나지 않는다.

수남은 재개발을 방해하는 이들, 그것이 아스팔트 극우 할아버지든, 분노조절 장애의 폭력배든, 심지어 자신을 심문하는 형사들이라도 살려두지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수남은 '반사회성 인격장애', 사이코패스(Psychopath) 또는 소시오패스(sociopath)의 특징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로 장편에 데뷔한 감독 안국진은 반사회성 인격 장애인의 엽기적 행각이 아닌 수남이 왜 그렇게 됐는가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이끌었다.

영화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작품에서 따왔다. 1865년 출간돼 여러 차례 영화로도 제작된 <이상한 나리의 앨리스>가 7살 어린 소녀의 판타지 모험극을 보여줬다면,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 여인이 겪어야 하는 잔혹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배급사는 이 영화 포스터에서 '생계 밀착형 코믹 잔혹극'이라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2015) 스틸컷.

생계 밀착형 코믹 잔혹극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대략 개인 컴퓨터가 우리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했던 1980~1990년대부터 최근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수남은 상업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주산 1급, 타자 1급 등 14개의 자격증을 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이대로라면 대기업 취업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해 일반 업무는 물론 회계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까지 처리하는 시대에 수남이 딴 자격증은 취업에 필요한 엘리트 증명서가 아닌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수남은 어쩔 수 없이 컴퓨터가 없는 영세한 금형공장 경리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사회의 쓴맛을 알게 된다. 다행히 같은 공장에서 그를 이해해 주는, 그보다 세 살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게 된다. 오랜 공장 소음에 노출됐지만, 생활고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젊은 나이에 이미 보청기를 끼고 있는 남편은 그래도 성실한 남자였다. 남편은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미루더라도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집을 먼저 장만하고자 했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현실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남편의 청력이 완전히 죽었고, 최신 보청기 구매와 삽입 수술에 2000만 원이 필요했다. 참고로 1980년대 이 돈이면 서울 지역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수남은 "집을 먼저 사야 해. (우리 아이를) 나처럼 키울 수는 없잖아"라는 남편을 "수술이 먼저야. 집은 나중에 사줄게"라고 설득해 수술을 받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청기 부작용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정신을 잃었고, 그 순간 프레스 기계에 네 개의 손가락을 잃어버렸다. 사고 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생긴 남편은 폐인처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수남은 사랑하는 남편이 다시 웃으며 행복해지는 방법은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집을 사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시간이 없어. 잠은 나중에 자면 돼. 나만 열심히 하면 돼, 나만 하면 돼"라고 되뇌며 야간 식당 서빙부터 모텔 청소부까지 겹벌이, 세 겹 벌이를 뛰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이렇게 11년만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오르기만 하는 미친 집값이 문제였다. 수남이 혼자 생계를 꾸린 지 9년째 되던 해 그는 은행에서 어렵게 1억 4000만 원을 빌려 변두리 달동네 허름한 집을 구했다. 남편은 굳은살 박인 수남의 손을 보며 오열하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짐밖에 안 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목을 맨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남편은 식물인간이 돼 버렸다.

은행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 그리고 남편 병시중을 위해 수남은 전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해야 했지만, 남편의 상태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쌓여만 갔다. 밀린 병원비에 의사가 존엄사를 권할 정도였지만, 수남은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수남의 동네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것이 밀린 병원비와 빚을 갚을 유인할 해결책이었다. 문제는 옆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지역까지 재개발 대상으로 선정하지 않으면 재개발 자체를 못 하도록 구청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답답한 마음에 구청을 찾아간 수남에게 담당 계장은 "동네 시끄러우면 재개발 승인이 취소된다. 주민들 (동의) 서명만 받아와라. 우리가 직접 나설 수도 있지만, 보는 눈이 있고. 그다음엔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한다.

수남은 하던 밥벌이를 중단하면서까지 옆 동네 주민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는다. 그러다 재개발 반대 대책위 임원들에게 폭행과 고문, 납치까지 당하면서 수남은 더욱 절박해졌고, 이때부터 영화는 진짜 잔혹극으로 전개된다. 결말은 영화를 통해 꼭 확인하길 추천한다.

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총제작비 3억 원가량의 저예산 독립영화다. 2015년 개봉 당시 관객 4만4074명이라는, 독립영화로는 적지 않은 관객을 불러 모았지만, 같은 시기 1200만 명의 <암살>, 200만 명의 <뷰티인사이드>, 147만 명의 <차이나타운> 등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작에 가려 대중에게 크게 각인되진 않았다. 그래도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대상, 2016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수상이 말해주듯이 우리 시대 문제를 뒤틀어 더욱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성은 여느 대작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배우 이정현은 신산한 삶을 살아야 하는 수남 역을 맡아 꿈 많은 여린 소녀부터 현실 무게에 짓눌린 중년의 아줌마까지 소화해내며 열연했다. 덕분에 그는 전지현, 김혜수, 한효주, 전도연 등 당시 흥행 영화 여주인공들을 제치고 2015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경제학자 전강수는 2019년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여문책 펴냄)에서 "병은 대개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은 고통스럽지만, 병의 존재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라고 밝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노동, 여성, 인권, 부동산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민낯, 즉 통증을 제대로 드러냈다. 특히 부동산 문제는 우리 사회 오래된 통증이다. 오래됐다는 건 그 병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우리 사회 부동산 투기의 시작을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부터로 보고 있다. 인구 분산 목적으로 내세운 강남 개발의 배경엔 경부고속도로 용지 확보와 권력 비자금 마련 등 비본질적 의도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는 도시개발 시 선행되어야 할 부동산 투기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소설가 황석영은 2010년 <강남몽>(창비 펴냄)에서 부동산업자를 등장시켜 "길 가는 데 땅이 있고 땅은 돈이 된다. 이게 부동산 투자의 첫 번째 원칙이야."라고 말했다. 애초 강남 개발은 정부에 의해서 기획된 부동산 투자가 아닌 투기가 본질이다. 전강수는 "박정희의 강남 개발 이후 한국 사회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불로소득을 좇아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라면서 "박정희는 부동산 공화국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사회 내부에 지속적 성장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인을 심어놓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평론가 프레더릭 제임스는 2015년 언론 기고에서 "우리 시대의 모든 정치는 부동산에 관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 시대에 시작된 극심한 개발주의는 4대강사업, 설악산 케이블카, 흑산도 공항 등은 여야,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계속 확대되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투기는 부의 편중을 심화시켰다. 2014년 기준 상위 10% 개인이 전체 개인 토지 소유지의 67.4%를 차지하고 있고, 법인 토지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전강수의 분석이다. 이러한 구조는 주기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은 2020년 <부동산 약탈 국가>(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은 폭력적 약탈보다 더 나쁜 '합법적 약탈"이라며 "한국에서 이런 합법적 약탈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진보-보수 정권이 번갈아 가면서 합동으로 발전시켜 온 약탈체제이기에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질 건 없다. 한국의 정치판과 고위 공직은 주로 이런 약탈체제의 수혜자들로 구성돼 있기에 약탈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 말마따나 '정치는 원칙의 경쟁으로 위장하는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싸움의 와중에서 외쳐지는 '정의', '공정', '평등'과 같은 아름다운 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한 기만적 언어일 뿐이다."이라고도 지적했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재개발 지구를 선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약자끼리 극심한 갈등을 빚는다. 실제 이런 사례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장면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관련 우리나라 최상위층의 욕구와 욕망은 중산층을 넘어 이제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영화 배급사는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라고 홍보했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이, 대다수 서민이 뼈 빠지게 일해도 팔 집은커녕 살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세상이 바로 '이상한 나라'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서 산다.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2015) 포스터.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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