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일관계 개선과 '日의 일관된 입장'

강구열 입력 2022. 7. 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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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기시다, 나토서 첫 대면
관계복원 희망에 日 기존입장 반복
외교는 상대 보며 '접점' 찾는 기술
단기성과보다 긴 안목의 지혜 필요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한 말이다. 한·일 관계와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을 할 때면 빠지지 않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기시다 총리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대부분이 그렇다. 거의 앵무새 수준이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나토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의 만남은 우리 정부가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와중이어서 한국, 일본 모두 관심이 컸다. 두 정상의 집권 후 첫 대면인지라 더욱 그랬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에 대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으나 일본 정부는 “일관된 입장 아래 소통하겠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일관된 입장’이란 양국 간의 현안에 대해 일본은 양보할 게 없으니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피해 배상 판결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가 오는 10일 열리는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엔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수층의 여론을 의식해 한국에 대한 강경론을 고수하지만 선거가 현재의 판세대로 자민당의 승리로 끝나 기시다 정권의 기반이 보다 탄탄해지면 달라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국의 군사적 팽창 등 엄중해진 동아시아 안보환경 속에서 양국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건 일본 정부도 안다. 일본이 나토 정상회의에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으로 초대된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의 정상 간 만남을 제안했던 것도 이런 인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한 외교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기시다 총리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을 두고 일본 내에 긍정적인 의견이 강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간 영역을 들여다보면 2년여 만의 김포-하네다 항공노선 재개, 지난달 시작된 한국 비자 신청 열기 등이 주목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대목들이 있다. 최근 일본 언론이 심심찮게 언급하는 기시다 총리의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도 그중 하나다. 2015년 12월 당시 외무상이던 기시다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한 이 합의를 문재인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인식이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세운) 금자탑이었던 합의가 한국 정부에 의해 훼손된 불신이 사라질 리 없다”는 내용의 칼럼을 최근 게재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며 “총리는 일·한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신중하다”는 기시다 총리 주변 인사들의 말을 전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가 극히 어려운 문제가 걸려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적극적이다. 성과를 장담할 수 없음에도 윤 대통령이 직접 정상 간 만남을 희망하고, 기시다 총리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반면 일본 정부는 뻣뻣하기 짝이 없다.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일본 국내 정치용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태도는 한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외교는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들여다보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기술이다. 하지만 ‘일관된 입장’만을 반복하고,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일본 정부에게서 그런 의지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태도가 한국 정부의 입지를 옹색하게 만들어 양국 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를 일본 정부도 알 것이다. 우리 정부도 관계개선이라는 당위에 집착해 단시간에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는 긴 안목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혜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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