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베이징 당서기 '천기 누설' 해프닝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입력 2022. 7.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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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측근 차이치 서기 "앞으로 5년 제로 코로나 계속" 발언으로 여론 악화되자 기자 탓하며 기사 수정
시 주석 연임 못박으려다 민심 역풍 맞아

중국은 요즘 올해 말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각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 별 당 대회를 열고 있는데, 6월27일 베이징 당 대회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차이치(蔡奇) 당서기가 업무 보고를 하면서 “앞으로 5년(未來五年) 제로 코로나 방역 방침을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한 말이 문제가 됐어요. 가뜩이나 강도 높은 방역 통제에 지친 중국 국민들이 이 말에 크게 동요한 겁니다.

6월27일 베이징 당대회에서 차이치 당서기가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베이징TV

◇베이징일보 기사 정정 소동

웨이보, 웨이신 등 소셜미디어에는 “3년 동안 지칠 대로 지쳤는데, 또 5년을 더 한다는 거냐” “이대로 가면 제로 코로나가 100년은 계속될 것 같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어요.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차이 서기의 발언을 보도한 베이징일보는 몇 시간 뒤 ‘앞으로 5년’이라는 문구를 기사에서 삭제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앞으로 5년’ 문구 검색도 차단했어요.

차이 서기 발언을 보도한 베이징일보 기사. 붉은 색으로 표시한 '앞으로 5년(未來五年)'이라는 문구는 몇 시간 뒤 삭제됐다. /중국 인터넷

베이징일보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차이 서기는 ‘앞으로 5년’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기자가 잘못 썼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신문은 차이 서기가 일인자로 있는 베이징 시당 기관지입니다. 그런 신문이 일인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요? 같은 시당 소속 베이징TV도 업무보고 장면을 내보내면서 ‘앞으로 5년’이라는 자막을 썼습니다.

◇연임 대못박기용 충성 발언

중국 내에서는 방역 정책 차원에서 논란이 됐지만, 사실 이 말은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제로 코로나는 중국 당국이 시진핑 주석의 치적으로 꼽는 방역 정책입니다. 그 덕분에 서방 국가들이 팬데믹으로 곤욕을 치를 때 확진자를 최소화하고 경제도 지켜냈다는 거죠. 서방의 자유민주체제보다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주장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올 연말 20차 당 대회에서 세 번째 5년 임기가 결정되죠. 국내외에서는 역대 주석들의 10년 임기 관행을 깬다는 점에서 연임에 대한 비판론과 회의론이 적잖습니다.

차이 서기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어요. “앞으로 5년 제로 코로나를 계속한다”는 건 ‘시 주석의 연임은 당연한 일’이라는 일종의 충성 발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17년10월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9차 당대회 폐막식. 시진핑 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 등 당 대표들이 시진핑 사상이 삽입된 당장 개정안에 손을 들어 찬성을 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차이 서기는 시진핑계 정치 파벌인 즈장신쥔(之江新軍·시 주석이 푸젠성, 저장성 등에 근무할 당시 수하들로 구성된 정치세력)의 일원이죠. 시 주석 집권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017년 베이징 당서기가 됐고, 국가 지도자 반열인 공산당 정치국원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그는 2017년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도 “시진핑 총서기 중요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면서 시진핑 사상이 공산당 당장(당헌)에 들어가도록 바람잡이 역할을 한 적이 있죠.

◇지방 당서기들 충성 발언 경쟁

연말 20차 당 대회에서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의 상무위원 7명 구성이 바뀌게 됩니다.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는 연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규정에 따라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72)과 한정 상무부총리(68)가 은퇴하죠.

요즘 이 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주요 지방 당서기들이 충성 발언 경쟁이 가관입니다. 같은 즈장신쥔 소속인 리창 상하이 당서기는 상하이 당 대회에서 “총서기(시 주석)가 부여한 영예로운 사명을 용감하게 맡고, 총서기가 제기한 중요한 이론을 실천해나가겠다”고 했더군요. 러우양성 허난성 서기는 “지방관원들은 시 주석의 정치 이론을 ‘평생의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리간제 산둥성 서기는 “시 주석의 지시는 나침반이자 황금 열쇠”라고 했습니다.

차이 서기도 이런 충성 맹세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을 해서 이 발언을 했겠죠. 그런데, 방역에 지친 국민의 심사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 자칫 큰 사고를 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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