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급한데 느긋한 외교부?.."느슨한 협의체로 강제징용 해법 난망"

정승임 입력 2022. 7. 6. 0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외교부가 급한 불을 끌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4일 외교부 주도로 출범한 '강제징용 관련 민관협의회'를 바라보는 한일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피해자 측과 전문가들을 모아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식의 느슨한 협의체를 통해 일본 정부와 교섭해야 하는 외교부가 단단한 결정을 내려 집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기구가 총대를 메고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아니라면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협의회는 의견 수렴만, 최종안은 정부가
"멤버 바뀔 수 있어..논의가 산으로 갈 것"
피해자 '전범기업 직접 협상' 요구에 발목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도중 서로 시선을 피하고 있다. 마드리드=서재훈 기자
“외교부가 급한 불을 끌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4일 외교부 주도로 출범한 ‘강제징용 관련 민관협의회’를 바라보는 한일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당장 8, 9월로 다가온 대법원 판결 전에 일제강점기 피해자 배상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한국에 진출한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을 팔아 돈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확정된다면 한일관계는 파국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민관협의회를 꾸린 건 2015년 ‘위안부 합의 사태’의 교훈도 크게 작용했다. 당시 정부가 모든 논의를 물밑에서 진행한 뒤 깜짝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다 보니 ‘밀실 합의’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후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외교부 당국자도 5일 “과거 정부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아 초래한 폐해가 많았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제는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과 달리 민간협의회 면면에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피해자 측 대리인과 경제ㆍ법률ㆍ언론 분야 전문가 12명을 위촉해 첫 회의를 열면서 해법 마련의 주체를 '정부'로 규정했다. 자연히 논의할 합의안의 골격을 외교부가 미리 마련해 제시해야 하는데도 “특정 시한과 해법을 현재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둘러댔다.

외교부는 특히 “회의에 참석한 12명은 고정된 멤버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논의 전개에 따라 더 많은 이들의 참석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매 회의마다 구성원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각계의 공감대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대목이다. 정부가 최종안을 마련해도 민관협의회 구성원이 바뀐다면 시행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대국적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우리 외교 여건이 확대되고 국익이 확보된다는 인식을 참석자들이 공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논의는 산으로 가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별관 앞에서 강제동원 배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민관협의회 1차 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특히 전날 피해자 측에서 언급한 '일본 전범기업과의 직접 협상' 요구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 당사자인 피해자들이 입장을 고수한다면 협의회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은 “현금화 착수를 방지할 수 있다면 고려해볼 법하지만, 피해자들마다 입장이 다른 데다 실제 의견을 하나로 모은다 해도 일본 기업과 정부가 응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간단했다면 4년 가까이 이 문제를 끌고 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가 협의회를 주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피해자 측과 전문가들을 모아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식의 느슨한 협의체를 통해 일본 정부와 교섭해야 하는 외교부가 단단한 결정을 내려 집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기구가 총대를 메고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아니라면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2005년 한일협정 문서 공개 당시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꾸린 민관공동위원회는 달랐다. 당시 이해찬 총리와 이용훈 전 대법관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관계 부처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속도감 있게 움직였다. 그 결과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는 후속조치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중 사망하거나 다친 10만 명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