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복합위기 온다.. 尹대통령 '경제 워룸' 가동해야" [세상을 보는 창]

주춘렬 2022. 7.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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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초비상 상황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보다 심각
물가·성장 동시에 좋게 할 정책은 없어
경기회복 효과 내려면 물가 안정부터
민간 위주의 경제 역동성 회복 바람직
동맹국과 훼손된 공급망 복원도 중요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는 늘 크고 작은 위기에 시달려왔다지만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자고 나면 대내외에서 대형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소비자물가는 근 24년 만에 6%대로 치솟았고 생산과 투자, 무역수지 등 주요 경제지표는 온통 잿빛이다. 성장과 기업실적 전망이 암울하고 주식과 채권 등 자산가치의 급락세도 심상치 않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지금이야말로 미증유의 초대형 복합위기(퍼펙트스톰)가 쓰나미처럼 오고 있다”고 했다. 이번 위기는 경제와 금융 전반을 위축시키는 ‘복합질환’으로 한칼에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윤석열정부의 위기 대응에는 우려하는 빛이 역력했다. “정책 기조는 큰 틀에서 맞지만 실행력이 많이 떨어진다”며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정책 추진력이 약화하는 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비상대응체제(경제 워룸)를 가동해야 한다”며 “경제주체 모두가 현재 상황을 초비상사태로 인식하고 고통분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이사장의 위기진단은 무게가 남다르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초대 금융위원장을 맡아 신속·과감한 대응으로 ‘특급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환위기 때에는 당시 김영삼정부의 초청에 23년간의 세계은행 등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환란 극복에 힘을 보탰다. 1998년부터 4명(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의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를 지냈다. 위기 감별과 극복 방안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인터뷰는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세계경제연구원 집무실에서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현재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초비상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실물과 금융이 동반 침체에 빠진 데다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과 국내정치 여건, 노동계의 강성 투쟁까지 위기를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과도한 부채 문제까지 깔려 있다. 가계와 기업, 정부 부문의 부채가 무려 5000조원을 웃도는데 고금리 충격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과거 수출경쟁력을 높였던 고환율도 무역 적자를 악화시킨다. 고물가가 고착화하고 장기 침체도 우려된다. 2차 오일쇼크가 덮친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급등)보다 심각하다.”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한다면.

“과거 위기는 기업·금융의 부실에서 촉발돼 신용경색으로 이어졌는데 초동 대응과 단기 응급 처방으로 빠른 기간 내 극복이 가능했다. 지금은 전 세계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마비된 코로나19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위기를 맞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유가·곡물 등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이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에 불을 붙이는 인화물질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을 단칼에 해결할 수단은 제한적이다. 과거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위기 극복의 디딤돌이었는데 이제는 둔화 국면이어서 부담이 커졌다.”

―이런 위기는 유례가 드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어떤 정책이든 물가와 성장 양쪽을 동시에 좋게 하기 어렵다. 정책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게 급선무다. 물가가 안정돼야 다른 경기회복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금리 인상이나 재정 긴축은 수요를 억제하는 것인데 생산성 제고 등 공급 개선책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규제 완화는 기업의 비용 감축과 생산 활성화로 이어져 인플레 극복과 경기 침체 해소에 기여한다. 믿을 수 있는 동맹국과 함께 훼손된 공급망을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4일 “위기가 상시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재정이 최후의 보루”라며 “건전성 회복을 위해 재정준칙을 서둘러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제현 선임기자
―고물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인플레 극복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기준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금리 인상 폭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빅스텝(0.5%포인트 상승)을 단행하면 인플레 차단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부작용이 많다. 가계와 기업 부채가 4000조원인데 대부분 변동금리여서 상환 압박과 경제 충격이 크다. 재정은 큰 틀에서 최소 중립, 일부 긴축 기조를 이어가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 중장기 대책도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물가가 40년래 최고인데 에너지 전환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우리도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0%에 달한다. 화석연료를 줄이고 원전 효율성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 에너지 독립·안보를 확보해야 지속가능한 저물가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정책 기조를 평가한다면.

“민간 위주의 경제 역동성을 회복시키고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반전하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문재인정부가 지난 5년간 과도하게 공공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민간의 성장 동력이 위축됐다. 그 결과 현 정부는 재정 악화와 가계부채 덤터기를 떠안아 딱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난 정부의 실정, 대외환경 악화 탓만 할 수 없다. 능력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 개혁은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발동이 걸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유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통령이 직접 일주일에 수차례 청와대 벙커에서 비상대책 회의를 가졌는데 새 정부도 이런 ‘경제 워룸’ 체제로 전환해 상황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노동시장·연금·교육·금융·서비스 등 5대 부문의 구조 개혁을 공언했지만 추진이 여의치 않아 보이는데.

“잠재성장률 회복 차원에서 5대 개혁 선정은 합리적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강력한 정치 리더십과 국민 지원이 수반돼야 가능하다. 복합위기 상황에서 추진이 더 어렵다.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되 실행에서는 저항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부문부터 진척하는 게 현명하다. 예컨대 연금 개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의 절반 수준인 보험료를 정상화해 지속 가능한 체제로 가는 게 핵심이다. 세대 갈등이 심각하고 국민 저항도 크다. 먼저 기금 운용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돈을 잘 굴려 노후자금을 키우는 건 누구나 환영할 일이다. 평균수익을 1∼2%만 높여도 고갈 시기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 캐나다국민연금기금(CPPIB)을 벤치마킹해 기금 운용의 지배 구조를 바꿔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떼 총리실에 두고 최고 전문가를 확보해 성과를 내야 한다. 이렇게 할 일을 해야 보험료 인상도 설득할 수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노동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노동 부문은 국가경쟁력의 가장 아픈 고리다. 한국은 노사 관계가 최악인 나라 중 하나인데 해외기업들이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성노조의 파업은 생산·수출 차질과 물가 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 단기적인 충돌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무노동 무임금과 같은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새 정부가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경고하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는데.

“민간시장 중심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새 정부 국정운영 철학과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나 정치권에서 직접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금리 상승기에 예대마진이 커지는데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다.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내야 경기 악화 때 발생하는 부실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을 수 있고 그래야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외환시장 불안이 심상치 않다.

“환율 급등은 수급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 규모인 103억달러에 달했고 조만간 경상수지도 악화할 거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도 올 상반기에만 19조원이나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강달러 기조가 확고하다. 외환 당국이 수급을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럴 때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맞교환) 체결은 시장 안정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은.

“근본 해결은 성장과 고용을 확대해 가계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채무를 조정하는 것인데 그 방법으로 상환유예, 금리조정, 부분 탕감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조치가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신용체계의 골간을 흔들어선 곤란하다. 신용 회복 프로그램은 시장의 공정성, 원칙을 훼손하지 않게 짜야 한다.”

―새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여소야대의 국회를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협치와 소통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정치 협력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정치권을 움직이는 건 국민의 소리다. 정책 추진력은 국민과 시장의 신뢰에서 나온다. 그런 신뢰는 설득력 있는 정책, 인사, 협치, 소통 등에서 쌓인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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