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카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허윤경 2022. 7. 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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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의 눈으로 본 카페 논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

[허윤경 기자]

 직원들이 백록담 일대 환경 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 제주도청
 
1일 금요일, 육지 친정에 가기 위해 내가 사는 제주도에서 택시를 탔다. 아버지뻘 되는 기사님은 과묵한 편이셨다. 마스크를 끼고 있기도 했고 이런저런 의미 없는 가십을 늘어놓는 기사님보다는 훨씬 좋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역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자마자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앵커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진 소식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들 50여 명이 백록담 일대에서 대대적인 환경 정비작업을 실시했다. 이날 5리터 쓰레기종량제 비닐봉지 400여 개, 마대 3개 등 5톤 정도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참지 못하고 먼저 기사님께 말을 건넸다.

"와, 5톤이요? 아니 한라산까지 가서 왜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걸까요?" 
"저거 저거 다 관광객들이 먹고 난 쓰레기 버리는 거 마씨. 입도세를 받아야 해. 저거 쓰레기 치우는 거 다 도민들 세금으로 하는 건데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한라산 전체가 아니었다. 며칠에 걸친 작업도 아니었다. 단 하루, 백록담 일대에서 수거한 쓰레기가 5톤이라니! 가구 같은 대형 폐기물일 리 만무했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자고 한라산까지 장롱이나 소파 같은 대형폐기물을 짊어지고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5톤에 달하는 쓰레기의 정체는 대부분 한라산 탐방에 나선 관광객들이 먹고 버린 생수병이나 사발면 용기 등 생활쓰레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러 힘들게 한라산 정상까지 오른 사람들이 멋진 경치를 두 눈에 가득 담은 후 돌아서서는 그곳에 쓰레기를 버려둔다는 현실이 모순으로 가득해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카페에 몰리는 구름 인파... 카페 오픈이 잘못은 아니지만 

며칠 전엔 또 이런 소식을 들었다. 가수 이상순씨와 이효리 부부가 제주도에 카페를 냈다는, 그런데 그 카페에 벌써 구름 같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는. 이 소식을 접한 날, 남편과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여보, 이효리랑 이상순 동복에 카페 오픈했다는데?"
"동복? 그 작은 마을에? 또 난리가 나겠구먼."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오픈 이틀 만에 카페 휴업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곧이어 이상순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으로 새로 오픈한 카페에 예약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카페 주인인 본인과 아내인 이효리씨는 카페 출입을 하지 않을 것이며 마을 주민들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댓글은 이상순씨를 응원하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1년 넘게 온 정성을 다해 가게를 준비했고, 진심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그의 본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의 말처럼 사업을 전문으로 했던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상대할 성격도 아니라서 스무 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열게 된 사정도 다 알겠다. 이번 논란은,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자신이 '이상순', 자신의 아내가 슈퍼스타 '이효리'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원래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두 사람은 요즘 '뉴페스타'와 '서울체크인'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내밀한 부분까지 궁금해하는 대중들에게, '카페'라는 공간은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효리네 민박>에 출연했던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모습.
ⓒ JTBC
 
그들이 애월읍 소길리에서 제주 동쪽으로 이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관광객들로 인한 사생활 침해와 이웃 피해였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가 되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보면 주민들이 통행해야 할 인도는 카페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줄로 막혀버렸고, 담 없이 인도와 맞붙어 있는 집에 살던 사람들은 졸지에 맘 편히 출입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평범한 개인이 카페를 창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시댁이 위치한 동쪽 촌 마을 초입에 원래는 소품 가게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초밥집으로 바뀌었다. 그 조용한 동네에 그렇게 작은 가게가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어느 순간 '하, 허, 호' 번호판을 단 렌터카들이 가게 주차장을 점령하다 못해 마을 입구 일대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차를 아무 집 담 옆에도 세우고, 대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길이 좁아지니 운전하기가 어려워진 나는 아예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들리는 바로는 마을 사람들과 가게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입소문과 달리 SNS 홍보는 속도가 빠르고 확산 범위도 전국구로 넓다. '어디가 좋다더라' 하고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찾아가는 바람에 잘 영업하던 가게가 이웃 상권에 미운털이 박혀 쫓겨나듯 이사를 가야 하고(제주도로 이전하기 전 '연돈'의 사례), 조용했던 마을 전체가 상업 지역으로 변하기도 한다(제주 애월 한담 일대).

누군가는 말한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으면 주변 상권도 살아날 것이고, 관광객이 쓰는 돈으로 제주도 같은 관광지가 먹고사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다른 가게의 출입문을 막아서고, 소음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할 뿐 다른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통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또한, 제주를 비롯한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관광업에 종사하진 않는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처럼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그 지역의 일부일 뿐이다. 관광객들은 한두 번 명소에 놀러 갈 뿐이지만 늘어나는 관광객들로 인한 쓰레기 문제나 환경 파괴, 유명세에 따른 주민 갈등 문제들이 고스란히 관광지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제주도 다르지 않다.

나의 행복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 

이미 서울 삼청동, 성수동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대형 카페 체인이 조천에 생긴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조금 걱정했다. 한적한 동네에 대형 카페가 들어오면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망가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해당 카페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했고, 넓은 주차장까지 있어 주민과의 마찰이나 잡음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는 듯하다. 

오픈 과정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자, 발 빠르게 이틀간의 휴업을 결정하고 예약제로 카페를 운영하기로 한 이상순씨의 결단력 있는 대처는 훌륭했다.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와 권리는 분명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한라산에 오르는 것도, 카페나 가게를 오픈하는 것도 그곳을 방문하는 것도 모두 개인들의 자유 의지로 행하는 행동임에 틀림없고 누구도 그것을 막아설 수 없다.

다만 한라산에 오르며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이 그릇되었음을,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고통을 받을 수도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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