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의 ESG인사이트]실사구시의 땅에서 ESG의 나무는 자란다

2022. 7. 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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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다음과 같은 사계(史界)의 통설이 존재한다. 인조반정(1623) 이후 남명 조식의 실용 사상이 쇠퇴하고, 퇴계·율곡의 주자학적 이상론과 명분론이 득세하면서 조선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남명의 사상은 크게 경의지학(敬義之學)과 지행합일(知行合一)로 요약될 수 있다. 전자는 ‘늘 깨어 있는 생각과 그것의 실천’을 강조하며, 후자는 ‘학문과 실행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는 것’을 말한다. 퇴·율의 주자학이 폐쇄적이었던 반면, 남명은 성리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노장사상, 불교, 천문, 지리, 병법, 의학, 잡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개방적이었다. 여러 사가들은 남명의 이러한 실천유학을 퇴·율의 이론 유학과 비교하며 칭송한다.

남명은 을묘사직 상소문으로 역사에 이름을 깊이 새기기도 했다. 명종 10년 1555년 조정에서 남명에게 단성 현감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사직으로 응답하며, 오히려 목숨을 건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에서 그는 어린 명종을 섭정한 문정왕후와 그 동생인 윤원형의 실정(失政)과 사대부들의 부패를 죽을 각오로 비판했다. 왜군의 침략에 철저히 방비해야 함도 강조했다.이런 이유에서였을까. 남명이 죽고(1572) 20년 후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남명 문하생들은 경상우도를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홍의장군 곽재우, 내암 정인홍, 송암 김면 등을 위시해 50여명의 의병장들이 남명 문하에서 배출됐다. 남명이 제자들에게 병법, 전술 등을 강조해 가르쳤기 때문이다.

남명은 또한 당시 학술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퇴계와 4차례에 걸쳐 서신을 주고받으며 주자학적 고담준론을 호되게 비판했다. 남명이 ‘퇴계에게 보낸 서신(與退溪書)’을 통해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학자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담론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러다 도리어 남에게서 사기나 당하니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에서 16세기를 치열하게 살다 간 남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아 온 ESG 분야에서는 그의 실사구시적 유산을 발견하기 어렵다. ESG투자와 경영에서도 퇴·율 학파의 이상론과 명분론에 영향을 받았을까? 뜬구름 잡는 구호와 슬로건들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지구를 살리자’,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을 만들자’ ‘깨어 있는 자본주의여!’라는 거대담론의 애드벌룬들이 즐비한 반면, 그것을 투자와 경영의 현장 속에서 체현하려는 구체적 논의와 실천은 부족하다. 그러니 기업경영과 투자의 현장에서 ESG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우선 ESG투자는 ‘위험’과 ‘수익’이라는 투자의 큰 얼개 내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에서는 ‘취한 위험’ 대비 ‘창출한 수익’의 크기를 가장 중요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험조정 수익률(risk-adjusted return)이라 하고, 투자의 황금률로도 삼는다. 지구 환경 및 사회적 선(善)에 부합하는 ESG투자라도 앞선 제1원칙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다. 시민운동이고 공익활동에 그치는 것이다. 원금을 지속적으로 까먹는 투자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원칙과 일렬 정돈된 구체적 방법론들이 결여된 ESG당위론은 비현실적 뜬구름 잡는 얘기에 속한다.

ESG경영도 유사하다. ESG경영 역시 ‘손익계산’, ‘재무상태’, ‘현금흐름’이라는 세 개의 기둥을 벗어나 그 실행을 논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업은 ‘자본금 대비 수익(ROE)’, ‘자산 대비 수익(ROA)’을 추구해야 생존이 가능한 결사체인 까닭이다. 예컨대 탄소 배출 감축(E)과 종업원 복지 증대(S)라는 지상과제가 아무리 훌륭한 당위와 명분을 갖더라도, 경영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벗어나 운위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라는 경영의 대전제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혈액을 잃으면 인간이 죽듯이 자본을 잃으면 기업도 죽는다. 이미 사망한 기업 앞에서 ESG경영을 논하는 것은 진혼가를 부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지난 2년여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ESG투자와 경영의 현주소다. 기업 경영자들은 경영자대로, ESG관련 시민단체들은 그들대로 ESG의 대의명분과 당위성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뿐, 실사구시적 실행과 성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업 홍보의 한 수단으로,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이념과 존재감 부각의 도구로 ESG를 활용하고 있다. ESG는 가성비 좋은 홍보수단이자 명분있는 사회운동 의제인 까닭이다. 이러니 ESG워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ESG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의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악마는 대의와 명분이 목소리를 높일 때는 숨 죽이고 있다가, 실행과 실천의 때가 도래하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일의 효과보다는 역효과를, 작용보다는 부작용을 침소봉대하며 일머리를 뒤흔든다. 따라서 악마의 디테일과 싸우려면 구체적 실행전략과 전술이 현장의 눈높이에서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악마에게 판판이 깨진다. 공자 왈, 맹자 왈 대신 임진왜란을 예측하고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 창검술과 활쏘기 등 각종 병법을 미리 준비했던 500여 년 전 남명의 예지와 혜안이 뇌리에 맴도는 이유다. 기후전쟁과 양극화와의 전쟁이 서부영화 하이눈의 기차소리처럼 들려오고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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