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국 공무원, 구조해달라".. 박지원, 감청 확보하고도 배제 의혹

김형원 기자 2022. 7.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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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서훈 무슨 혐의인가

국가정보원은 6일 대검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박지원 전 원장에 대해선 서해 공무원 피살 당시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를, 서훈 전 원장에 대해선 귀순 어민 강제 북송 당시 ‘합동 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를 적시했다. 국정원은 최근 고강도 내부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혐의들을 포착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내부 직원들의 증언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은 박지원·서훈 전 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이 같은 일탈 행위들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이 밝힌 박 전 원장 혐의는 첩보 관련 보고서의 무단 삭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20년 9월 정보 당국은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 달라’는 취지로 북한군에 구조 요청했다는 감청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계획된 월북’보다 ‘표류’ 쪽에 힘을 실어주는 첩보 내용이다. 당시 국정원이 이 같이 이씨 월북 가능성과 배치되는 대목들을 보고서에서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공용 전자 기록을 손상한 혐의도 받는다. 해수부 공무원과 관련한 전자 기록에도 손을 댔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선 “이씨를 월북자로 몰아가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가 조직적으로 첩보를 ‘취사선택’했는지 여부가 혐의 입증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공무원이 피살되던 날 문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종전 선언’을 강조하는 녹화 연설을 했었다.

당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감청 자료를 근거로 ‘이씨는 월북자’라고 판단했다. 북한군 상급부대에서 “월북했느냐”고 묻자, 현장 병사가 “월북했다고 합니다”라고 답변하는 대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월북은 반(反)국가 중대 범죄”라며 “적극적으로 막아도 감행할 경우 사살하기도 한다”고 썼다. 같은 당 황희·김철민 의원은 유족들에게 “월북을 인정하면 보상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반대로 국방부에서 감청 내용을 보고 받은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7시간의 방대한 감청 기록에서 ‘월북’이라는 단어는 딱 한 번 나온다’면서 “이는 우리 정부가 ‘월북 몰이’했다는 단서”라고 반박하고 있다.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11월 2일 나포한 귀순 어민에 대한 합동 조사를 강제로 서둘러 종료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합동 신문이 사흘 만에 종료된 배경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는 취지의 서 전 원장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 탈북자 합동 신문에 수주~수개월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 사건은 숱한 의혹을 남겼다. 합동 조사 과정에서 북한 어민들이 수차례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정부가 “귀순 진정성이 없다”며 북송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살해 현장인 소형 어선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북측에 넘겨졌다. 당시 국정원은 ‘증거인멸’ 우려에도 귀순 어민이 타고 온 오징어잡이 어선의 소독을 의뢰했다.

귀순 어민 2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11월 5일 문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그러면서 같은 날 “귀순 어민·선박을 북측에 인계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셈이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코드에 맞춰서 ‘신속한 조사’를 재촉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무리하게 강제 북송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두 사건은 모두 ‘하노이 노딜’(2019년 2월) 이후 경색된 남북 대화 재가동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잔인성을 부각하거나,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요소들은 무조건 숨기고 보자는 정서가 팽배했다”며 “이 과정에서 당시 국정원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정원 측은 “지난 6월부터 자체 조사단을 꾸려서 내부조사한 끝에 고발 조치하기로 한 것”이라며 “국민에게 정보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정원 차원의 진상 규명 의지가 반영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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