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판단오류로 빠진 25가지 이유: 멍거 '오판의 심리학'①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먼저 찰리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을 통해 멍거의 투자철학을 살펴봅니다.
'오판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Human Misjudgement)은 '가난한 찰리의 연감'에서 찰리 멍거가 가장 공들여 작성한 부분이다. 약 1시간15분 분량의 1995년 하버드대 강연이 출처인데, 아쉽게도 오디오만 있고 당시 녹화된 영상은 없다.
멍거는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전에 행동재무학을 열렬히 옹호했으니 행동재무학과 심리학에 대한 관심도를 알 만하다.
특히 '가난한 찰리의 연감' 2005년 확장 개정판에 실린 '오판의 심리학'은 하버드대 강연에 다른 강연과 새로운 자료를 추가해서 작성된 버전이다. 여기서 멍거는 어떻게 인간이 합리적 또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패턴 인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오판의 원인이 되는 25개 경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25개 경향에 대해서 3편에 걸쳐서 한번 살펴보자. 먼저 1편에서는 △보상과 처벌 경향 △선호/애정 경향 △반감/혐오 경향 △의심 회피 경향 △불일치 회피 경향 △호기심 경향 △칸트적 공정성 경향에 대해 알아보자.
페덱스가 야간 환적작업에 대해 시간급을 지급할 때는 도무지 정시에 환적을 완료할 수 없었지만, 환적 업무 단위로 급여를 지급하고 모든 비행기 환적이 완료되면 모든 직원이 퇴근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업무 효율이 크게 개선된 사례다. 이처럼 인센티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멍거는 제록스가 복사기 중 신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구식제품 판매가 많은 점을 의아하게 여겨 조사해보니, 구식제품 판매시 영업사원들이 받는 인센티브가 훨씬 많았다는 사례도 소개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에게 영감을 준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에서 "만약 사람을 설득하려면 이성이 아니라 이익(이기심)에 호소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이 부분에서 멍거 어록에서 가장 재밌는 표현 중 하나가 나오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임금을 주는 시늉만 했기 때문에 우리도 일하는 시늉만 했다"는 소련 근로자의 발언이다. 보상의 영향력을 무시한 소련의 결말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보상은 강력한 동기 부여 요소(motivator)이기 때문에 멍거의 표현대로 인센티브가 야기한 편향(incentive-caused bias)이 발생하기 쉽다. 이와 관련해서 멍거가 말하는 컨설팅 대응 방법도 재밌다. 특히 적잖은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 기반 조언(commission-based advice)일 경우다.
평생 동안 멍거는 "이 문제는 더 많은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조언으로 끝나지 않는 경영 컨설턴트의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며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1) 전문적인 조언이 조언자(컨설턴트)에게 유리할 때는 특별히 조심하라.
(2) 조언자를 다뤄야 할 때는 조언자가 하는 사업의 기본적인 요소를 배우고 이용하라.
(3) 객관적인 검토 후 들은 내용의 대부분을 적당하다고 느껴지는 수준까지 더블 체크하고 불신하고 대체하라.
멍거는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이 인센티브가 야기한 편향을 대리인 비용(agency cost)으로 설명해왔다고 부연했다. 또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성공은 이 편향의 악영향을 막기위한 경제적 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와 보상 설계는 멍거가 오판의 심리학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할 정도로 중요하다.
(1) 좋아하는 대상의 실수를 무시하게 되거나 그의 소망에 순응하게 된다.
(2) 좋아하는 대상과 약간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람, 물건 또는 행동을 선호하게 된다.
(3) 사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가 호감을 가지는 사람, 물건, 아이디어의 나쁜 점은 모두 옆으로 제쳐 놓고 무시하거나 왜곡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1) 싫어하는 사람의 미덕, 장점을 무시하게 만든다.
(2) 싫어하는 대상과 약간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람, 물건 또는 행동을 싫어하게 된다.
(3) 증오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모두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의 장점은 애써 무시하고 더구나 그에게서 배우려는 사람은 드물다.
반감/혐오 경향 때문에 서로 증오하는 두 그룹을 중재하기는 극히 어려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다. 왜냐면 한 쪽의 역사적 팩트가 다른 한 쪽의 역사적 팩트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반감/혐오 경향으로 인한 사실 왜곡 때문에 두 국가가 생각하는 역사적 팩트는 대부분 다르다.
이처럼 의심 회피 경향은 우리의 조상인 선사시대 인류의 환경에 부합하는 특징이다. 또한 의심 회피 경향은 대개 혼란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촉발되기 쉽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의심 회피 경향과 변화를 싫어하는 불일치 회피 경향이 결합될 때 현대인의 인지 과정에서 큰 오차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갈파한 것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도 대개 아이디어의 본질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존에 있는 오래된 아이디어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최고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지성으로 칭송받는 그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멍거는 케인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사고(mind)는 난자처럼 작동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자가 하나라도 난자에 진입하고 나면 난자는 자동 차단 장치가 가동돼 다른 정자의 진입을 막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 역시 위와 똑같은 결과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사람들은 처음 내린 결론에 집착하는 편향(first conclusion bias)이 있는데, 여기에 가장 잘 대처한 사람 중 한 명이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자신의 가설을 부정하는 증거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자신을 훈련했는데, '진화론'처럼 자신의 가설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더 그랬다.
다윈이 한 행동의 반대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증거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다.
멍거는 호기심이 정규교육 과정이 끝난 후에도 우리에게 재미와 지혜를 줄 수 있는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미국 교외지역에서 자동차 한 대만 주행할 수 있는 교량이나 터널에 아무런 신호가 없어도 서로 양보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가 차선변경을 위해 끼어들 때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양보한다. 입장이 바뀌었을 때 다른 운전자도 자신에게 양보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선착순(first-come-first-served) 원칙 역시 마찬가지다. 줄을 서거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도착한 순서대로 하는 게 가장 공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앞서 온 사람의 뒤에 서서 기다린다. 바로 공정성 공유(fair-sharing)다.
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오히려 적대적인 반응을 야기할 수 있다. 식당에서 우리의 음식이 늦게 나올 때보다 우리보다 늦게 온 손님의 음식이 먼저 나올 때 더 화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 살펴본 7개 경향처럼 '오판의 심리학'에서 다룬 25개 경향은 일상 생활이나 경제적 선택에서 우리의 선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내용들이 많다. 다음 번에도 계속해서 나머지 경향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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