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운영 '해적학술지' 확인..한동훈 처형과의 관계는?

이명주 입력 2022. 7. 13. 15:00 수정 2022. 7. 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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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대상 ‘논문 장사’ 학술지 발견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저널 원고 제출을 독려합니다. 원고의 최초 제출 시기는 반드시 학생 저자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어야 합니다.” 

한 온라인 학술지가 내세운 논문 투고 요령이다.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논문 제출 비용은 미화 100달러다. 이 학술지 이름은 ‘저널 오브 에이아이 어플리케이션스(Journal of AI Applications)’ 줄여서 JAA라고 부른다. 

지난 6월 홈페이지가 폐쇄되기 전까지 이 학술지에는 5건의 논문이 실려 있었다. 이 중, 4편이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 학생들이 썼다. 글 주제는 음악, 심리학, 환경, 생물학 등 다양했다. 

학생들의 글 4건은 논문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 요약(초록), 서론, 연구 방법론, 결론, 고찰은 물론 참고문헌 표기도 없다. 더구나 학생들 스스로 연구해 쓴 게 아니었다.

먼저 ‘예상 밖의 물고기와 오징어 서식지’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게재된 글은 ‘사이언스 데일리’라는 온라인 매체가 두 달 전 2월 18일 보도한 기사를 베꼈다. 단어와 문장 구조 등을 조금씩 바꿔놨다. 표절률은 97%다.

지난 3월 게재된 ‘뇌졸중 환자를 위한 음악치료’라는 글도 ‘사이언스 데일리’에 실린 기사를 요약했다. 표절률은 57%다. 원 기사는 2020년 3월 나왔다. 학생은 “최근 연구(A recent study)”라고 쓰고 2년 전 기사를 옮겼다. 

또 지난 2월 JAA에 출판된 ‘지구 온난화로 선인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라는 글은 뉴욕타임스 기사를 베꼈다. 표절률은 89%다. 이 글은 원래 ‘팬데믹타임스’에 실렸는데 JAA 학술지에도 같은 내용이 게재됐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명백히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베낀 학생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처조카 진 모 군이다. 진 군의 부모 측은 “해당 저널을 처음 알았으며, 논문으로 출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10대 사망 증가’라는 글은 지난 4월 미국 CNN이 보도한 기사를 요약했다. 보도를 절반 분량으로 줄였는데 내용은 기사 그대로다. 표절률은 56%다.   

▲ 저널 오브 에이아이 어플리케이션스(JAA)에 올라온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 학생들의 글 4편 (JAA 화면 갈무리)

편집위원들 승낙 없이 불법 도용한 해적학술지로 밝혀져

언론 기사를 베낀 학생들의 글을 출판한 학술지 JAA의 정체는 뭘까? JAA는 홈페이지에 편집위원 명단을 공개했다. 모두 11명. 국내외 유명 대학의 이공계열 교수들이다. 

JAA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표절 논문’을 심사했을까? 교수 11명에게 확인했다. 11명 중 5명이 답변을 보내왔다. 답변은 비슷했다. 

편집위원은커녕 이 저널을 모릅니다.
- - 미국 UCLA 공과대 교수

저는 질의한 모든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교수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 JAA라는 저널을 몰랐습니다. 편집위원에 동의하지 않았고, 제 이름을 명단에 올리도록 허락한 적도 없습니다.
- - 타이완 국립쳉공대학 학과장

저는 학술지 편집위원이 아닙니다. 편집위원에 이름을 올리도록 허락한 적도 없고, 편집위원 요청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 -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공과대 학장

임의로 자기네들이 갖다 붙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저널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이리저리 그냥 구글 찾아가지고 관련 사람들 집어넣어 가지고 다른 일반 저자들을 현혹시키는 저널이 아닐까 싶습니다.
- - 성균관대 교수 

JAA는 대학 교수들을 학술지 편집위원이라고 속이고 학생들을 상대로 ‘논문 장사’를 해온 ‘해적학술지’로 드러났다.

타이완 국립쳉공대학 공과대 학과장으로 있는 버나드 리우 교수는 “비도덕적인 범죄에 내 이름과 신분이 도용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런 약탈적 학술지의 낮은 퀄러티나 도덕성이 몹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해적학술지는 한국인 구 모 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OO 씨, 해적학술지 운영하며 학생 대상으로 논문·스펙 컨설팅  

뉴스타파 취재 결과, 구 씨는 해적학술지 JAA 운영 외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문 지도와 비교과 활동 즉 ‘스펙쌓기’ 컨설팅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구 씨는 ‘리서치 앤드 퍼블리케이션 센터(Research and Publications Center 줄여서 RNP)’라는 ‘스펙 컨설팅’ 업체를 운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RNP 홈페이지 연락처와 JAA 해적학술지의 연락처가 같았다. 

▲ JAA에 나온 운영자의 연락처(위)와 RNP에 나온 운영자 연락처(아래)가 똑같은 이메일 주소다. (JAA와 RNP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문 컨설팅을 홍보하는 Research and Publication Center(RNP) (RNP 화면 갈무리)

3,100달러 내면 10~20장짜리 논문 지도와 학술지 출판 보장

RNP의 주 고객은 JAA와 마찬가지로 중·고등학생이다. 학생들의 논문 출판을 알선하며 학생들의 논문 지도를 두 단계로 나눠 영업하고 있다. 

먼저 3,100달러 컨설팅 패키지를 선택하면 멘토가 10~20장 분량의 논문을 지도하고 학술지 출판도 보장한다고 홍보했다. 또 1,500달러 패키지의 경우 멘토가 3~5장짜리 논문을 지도하고 학술지 출판을 보장한다고 했다.

▲ RNP의 $3100달러 짜리 '논문 패키지'는 멘토가 10~20장짜리 논문을 지도하고 학술지 출판을 보장한다고 소개했다. (RNP 화면 갈무리)
▲ RNP의 $1500달러 짜리 '논문 패키지'는 멘토가 3~5장짜리 논문을 지도하고 고등학생 수준 학술지 출판을 보장한다고 소개했다. (RNP 화면 갈무리) 

논문 멘토 명단도 해외 교수들 명의 불법 도용

그렇다면 논문을 지도하는 ‘멘토’는 누굴까? RNP에 올라온 멘토 명단을 확인했다. 국내외 대학 교수와 박사 학위자 16명이 나온다. 

16명 중 10명이 JAA 편집위원 명단과 겹쳤다. 특히 JAA 편집위원에 이름과 신분을 도용당한 것으로 확인된 교수들의 이름이 멘토 명단에도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미국, 타이완, 싱가포르의 대학 교수들이 JAA(편집위원)와 RNP(멘토) 두 군데 모두에서 명의와 신분을 불법 도용당한 것이다.  

논문 컨설팅 업체 RNP는 또한 별도 웹페이지를 만들어 해적학술지 JAA를 소개하고 있다. 구 씨는 RNP를 통해 만든 학생들의 논문을 자신이 운영하는 해적학술지 JAA에 게재하는 방식으로 논문 컨설팅에서 출판까지 동시에 이뤄내는 형태로 ‘논문 장사’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RNP 비교과 활동으로 ‘팬데믹타임스’ 소개

RNP는 또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교과 활동 멘토링(Extracurricular Mentoring)’ 서비스도 제공했다. RNP는 비교과 활동으로 ‘팬데믹타임스(The Pandemic Times)’를 소개하고 있다.  

팬데믹타임스는 2020년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 학생들이 만든 온라인 매체다. 한동훈 장관의 딸과 처조카 3명이 팬데믹타임스의 창립자, 편집장으로 등록돼 있다. 팬데믹타임스는 한 장관의 처형 진 모씨가 실제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데믹타임스의 기자 참여를 접수받는 연락처에 진 씨의 영어 이름이 있는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다.

구 씨가 운영한 스펙 컨설팅 업체인 RNP가 비교과 활동으로 한 장관의 처형 진 씨가 운영하는 팬데믹타임스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팬데믹타임스에서 활동한 학생들이 쓴 4편의 글이 구 씨가 운영하는 해적학술지 JAA에 실렸다. 진 씨와 구 씨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 RNP가 제공하는 '비교과 멘토링' 중 신문 출판 활동으로 팬데믹타임스를 소개하고 있다. (RNP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는 해적학술지 JAA와 논문 컨설팅 업체 RNP의 운영자로 알려진 구 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팬데믹타임스를 어떻게 알았는지 ▲팬데믹 타임스 기자로 활동한 학생 4명의 글을 JAA에 출판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동훈 장관의 처형 진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 물었으나 답변은 받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또 한동훈 장관의 처형 진 씨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 팬데믹타임스와 JAA, RNP는 어떤 관계인지 ▲조카를 포함해 학생들의 글이 JAA에 게재된 경위가 뭔지 ▲JAA와 RNP의 운영자인 구 씨를 알고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현재 팬데믹타임스와 JAA, RNP 홈페이지는 모두 폐쇄됐다. JAA에 실렸던 학생들의 논문 4건도 모두 없어졌다.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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