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유지 노력 없이 "이혼 못해줘!"..이젠 안 통해
원심 깨고 예외 기준 첫 제시
이혼 소송에서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당사자의 언행이나 태도 등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라도 상대 배우자가 ‘말’로만 이혼을 거부하고 실제 관계 회복에는 힘쓰지 않는다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대법원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아내인 B씨와 갈등을 겪다 2015년 이혼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정 파탄의 원인이 A씨에게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법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A씨는 이후에도 별거 상태를 유지했고, 자녀는 B씨가 돌봤다. 대신 A씨는 양육비를 B씨에게 보냈다. B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담보 대출금도 꾸준히 갚았다.
A씨는 2019년 다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씨가 앞선 소송 이후에도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 B씨가 이혼 의사가 절대로 없음을 밝히는 점을 근거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다. ‘유책 배우자’가 낸 이혼 청구라도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유책 배우자’가 낸 이혼 청구라도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상대 배우자도 이혼을 원하는 경우’, ‘상대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이 흘러 유책 배우자의 책임이나 상대 배우자의 고통이 크게 경감된 경우’ 등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유책주의’의 예외 사유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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