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감독이 K드라마 연출.."원작인 K웹툰에 흥미 느꼈다"

나원정 입력 2022. 7. 14. 00:01 수정 2022. 7. 1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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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9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 BIFAN]

“지금까지 경력의 연장선이 아니라, 한국 배우·스태프와 함께 새로운 단계로 가볼 수 있었죠.” 정해인 주연 드라마 ‘커넥트’로, 일본 감독 최초로 한국 드라마 연출을 맡게 된 ‘장르물 귀재’ 미이케 다카시(62) 감독이 9일 밝힌 소감이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송강호)을 배출한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이어 또 한 명의 일본 거장이 K콘텐트와 함께했다.

신대성 작가의 네이버 웹툰 ‘커넥트’

미이케 감독은 코믹 수사물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 판타지 모험 ‘요괴대전쟁: 가디언즈’ 등 2편의 신작을 들고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를 찾았다. 그는 ‘커넥트’에 참여한 계기를 “한국식 웹툰이 원작인 점에 흥미가 생겨서”라고 밝혔다. 신대성 작가가 2019~2020년 연재한 원작 웹툰 ‘커넥트’는 한쪽 눈을 빼앗긴 채 깨어난 주인공이 자신의 눈을 이식받은 사람과 연결(커넥트)되면서 벌이는 미스터리 복수극. 일본에서는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만화 서비스 앱 ‘라인 망가’(이하 웹툰)를 통해 공개됐다.

미이케 감독은 미국식 만화 ‘코믹스’ 일본식 ‘망가’와 웹툰이 다른 점을 “스크롤 해서 보는 웹툰은 만화라기보다 다른 장르처럼 읽힌다”고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엄청나게 만화를 읽은 세대인데 웹툰은 달랐다. 배경이 거의 없고 선과 실루엣, 단순한 대사로 표현한 게 신선했다”고 했다. “웹툰의 요점은 생략이다. 대사도 적은데 그 안에 확실히 표현돼 있다”며 “인터넷으로 과금하는 방식이어선지 다음 편도 읽고 싶어지게 잘 만든다. 이런 방식을 영상물에 도입하면 지금껏 본 적 없는 걸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드라마는 올 초 촬영을 마쳤고,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OTT) 디즈니+를 통해 출시 일정을 조율 중이다.

정해인

주연은 정해인·고경표·김혜준이 맡았다. 미이케 감독은 “배우들은 모두 멋졌다”며 “언어가 통하는 일본 현장보다 더 순수하게 대본과 역할을 중심으로 교감했다”고 전했다.

‘커넥트’는 불법 장기 탈취 및 밀매, 타인과 신체 감각이 연결되는 초현실감, 수위 높은 폭력 장면이 펼쳐진다. 미이케 감독이 연출에 적임자로 꼽힌 이유다. 그는 공포·범죄·코미디·청춘물 등 장르를 넘나들며 100편 넘는 영화·드라마를 연출했다. 1991년 비디오점 대여를 위한 저예산 영화 브이(V) 시네마로 감독 데뷔했다. 하위문화 요소를 두루 갖춘 환상 장면, 신랄한 유머를 가미한 신체 훼손, 극단적 폭력 등 장르를 뒤섞은 독창적 스타일로 컬트 팬을 양산했다.

오디션을 통해 순종적인 아내를 얻은 남자가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공포영화 ‘오디션’(1999), 근친상간과 근친 폭행이 일상인 콩가루 가족 영화 ‘비지터 Q’(2001),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죽음의 공포가 퍼지는 ‘착신아리’(2003) 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역대 최고 공포영화’와 ‘가장 불편한 영화’에 동시에 꼽혔다. “제 모든 기준은 등장인물이죠. 그 정도 때렸으니 그만둬도 괜찮지 않나 싶어도 등장인물이 ‘한 대 더 때릴래’라고 해요. 그 속엔 제가 눈치채지 못한 욕망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고경표

이렇듯 각본을 쓰고 촬영할 땐 캐릭터에 빠져드는 탓에 그는 “무아지경이 돼 자기 자신마저 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과 닮은꼴로 회자한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 등 기상천외한 만화 원작을 기발하게 영상화하는 비결이다. 유명 만화가 키우치카즈히로의 소설을 영화화한 ‘짚의 방패’로 2013년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한국과 인연도 깊다. 아시아 3개국 감독의 단편 공포영화를 모은 ‘쓰리, 몬스터’(2004)에 박찬욱 감독과 함께 참여했다. 김지운 감독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을 황당무계한 뮤지컬 영화 ‘카타쿠리가의 행복’(2001)으로 리메이크해 그해 BIFAN에서 김지운 감독과 대담도 했다. 당시 그는 다수 작품을 중국·홍콩·필리핀 등 일본 밖에서 작업한 이유를 “일본 영화계가 다이내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꿈이 없기 때문”이라며 “다른 나라 공기를 호흡하며 다른 나라 스태프와 일할 때 더 좋은 효과를 끌어낸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일본이나 세계 영화 풍조에는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다”면서도 ‘비지터 Q’로 처음 BIFAN을 찾은 이후 21년간 6차례나 내한하며 목격한 K콘텐트의 가파른 성장에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 감독들의 잇단 한국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한국영화가 대단해져서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재능을 살려 재밌는 영화, TV 드라마까지 만든다는 인상입니다. 진화했다는 걸 실감합니다.”

부천=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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