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반도체 우수사원'의 극단 선택..필리핀 공장에서 무슨 일이

손하늘 2022. 7. 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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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석 달 전, 중견 반도체 기업의 과장급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취재진에게 회사 내부회의 때 녹음한 음성파일을 들려줬습니다.

손하늘 기자의 단독 취재 내용 보시겠습니다.

◀ 리포트 ▶

지난 4월 14일 밤 10시 반.

순찰차 6대에 탄 경찰관들이 충남 천안시 태조산으로 출동했습니다.

산책을 간다며 집을 나선 30대 후반 남성이 문자로 유서를 보낸 뒤 전화기를 껐다는 아내의 신고를 받은 겁니다.

추적 결과 포착된 마지막 위치는 산 중턱.

경찰은 가장 가까운 주차장부터 수색했습니다.

[황하국 경위/천안동남경찰서 원성파출소] "(휴대전화) 위치값이 저 산 중턱에 있었어요. 차를 끌고 나갔다는 것에 착안해서, 여기 기지국에서 제일 가까운 주차장인 여기로 왔죠. 여기에 그 차가 있는 거예요."

차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남성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목숨을 건졌습니다.

천안의 중견 반도체 업체에서 근무하던 김 모 과장(가명)이었습니다.

경찰과 가족의 설득에 마음을 돌린 김 과장은 왜 이 같은 선택을 했는지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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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근무한 김 과장은 매년 우수 사원으로 평가받았고, 입사 5년 만에 필리핀 법인에 부임했습니다.

[필리핀법인 홍보 영상] "혁신을 위한 해답, 바로 OOO 반도체입니다."

현지 직원 8백여 명을 총괄하는 제조파트장을 맡았는데, 부임 후 6개월 이상 지난 뒤부터 상사인 법인장의 폭언이 시작됐습니다.

생산실적이 부진하다며, 수십 명이 모인 회의에서 책상을 치고 소리를 지른 겁니다.

[강 모 법인장 (지난 2019년 9월)] "아이 XX, 그게 정상이냐고 XX. 너 진짜 왜 그러는 거야, 왜 6시에 끝났냐고. 왜 그걸 받아주냐고. 나는 이해를 못하겠네 진짜. 너 XX 일 누구한테 배웠어?"

대부분의 회의가 영어로 진행되다 보니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 매번 회의를 녹음해온 김 과장.

녹취된 욕설과 고성이 수두룩했습니다.

[강 모 법인장] "아니 창고가 모자라면 XX, 내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매일마다 저런 얘기 하면 뭐 하냐고. 오늘은 뭐 할 거냐고. 넌 생산이어서 XX, '생산기술이 잘못했어요' 이러면 끝이야?"

법인장의 폭언은 점점 일상이 돼 갔습니다.

[강 모 법인장] "넌 뭔데 인제 오니? <법인장께서 회의 참석하지 말라고 하셔서…> 내가 언제 회의 참석하지 말라고 그랬어 XX. 팀장 밑으로 참석하지 말라 그랬지. (회의) 왜 안 했어! <미팅 다 취소하신다고 그래서…> XX, 그게 내가 주문한 미팅이야 그게?"

[김 과장(가명)/직장괴롭힘 피해자] "(저는) 그 사람 감정의 배설통이었어요. 본인의 감정을 저한테 배설한 거죠."

필리핀 현지 직원들도 수시로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법인장의 폭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강 모 법인장] (필리핀 직원 보고 중) " 죽을래? 이 XXX들아? 야 이 XX, 아이 XX" (필리핀 직원 보고 중) "아이 XX, 내가 다른 체임버를 묻잖아 XX. 넌 무슨 뜻이냐고 XX. 아이 XX, 무슨 일이냐고" (필리핀 직원 보고 중) "XX!"

폭언에 그치지 않고, 보고서나 볼펜을 던지는 등 폭력적 행위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 과장/직장괴롭힘 피해자] "손에 잡히는 대로 각티슈라든지 아니면 두꺼운 보고서나 연필, 볼펜, 그런 것들을 뭐 집어던지거나 책상을 발로 차거나…"

한 번은 현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법인장에게 김 과장의 가족이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질책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강 모 씨/당시 필리핀법인장] "그렇게 대놓고, 법인장이 왔는데 와서 인사는 못할지언정, XX는데다가. <네.> 인상 딱 쓰면서 어? 고개를 휙 돌리고 말이야,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죄송합니다.>"

결국 김 과장은 주재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 5개월 만에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뒤 배치된 부서에서도 직속 팀장으로부터 고성과 욕설을 듣는 등 고통을 겪다 공황장애 판정까지 받았습니다.

[김 과장 아내] "아이들이 놀다 보면 소리 좀 지를 수 있잖아요, 그러면 굉장히 힘들어해요. 집 앞에만 나가고 혼자 있고 귀 막고 있고…"

전직 법인장 강 씨는 취재팀에 "욕설과 폭언을 한 사실을 인정한다"며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김 과장이 근무시간에 졸거나 거짓말하는 등 불성실하게 일해 업무를 개선 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김 과장이 겪은 어려움은 가정 내부 사정 등 여러 문제가 겹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MBC뉴스 손하늘입니다.

영상취재: 김재현 / 영상편집: 안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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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 김재현 / 영상편집: 안준혁

손하늘 기자 (sonar@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88737_35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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