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자리 누가 물려받지?"..'친한파' 미망인 설까지 나오는 이유
'세습 왕국'으로 알려진 일본은 정치에서도 직을 대물림하는 일이 흔합니다. 일본에서 정치를 할 때 필요한 것으로 언급되는 지방·간방·가방 등 소위 '3방'(후원회 등 조직 기반·가문 등 지명도·정치자금)은 세습이 아니고선 갖추기 어려운 조건 입니다.
특히 집권 자민당은 다른 정당들에 비해 세습 의원 비율이 3~4배에 달할 정도로 세습 비율이 높은 정당입니다. 아베 전 총리는 물론 그의 절친 아소 다로, 현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 역시 지역구를 물려받은 케이스죠. 이 때문인지 아베 가문과 그의 지역구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자리를 친인척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베 전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 사이에는 자식이 없습니다. 아키에 여사의 불임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정계 거물을 다수 배출한 아베 가문에서 아키에 여사는 갖은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아키에 여사와 그의 시어머니 요코 여사의 관계가 아직도 서먹한 이유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2016년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키에 여사는 불임 치료와 출산 압박으로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 기시 노부오 현 방위상의 자식을 아키에 여사가 입양해 후계자로 삼는 방안도 떠올랐습니다. 현재 기시 방위상에겐 아들이 둘 있는데 장남은 일찌감치 부친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비서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 입니다. 결국 눈길은 차남에게 돌아가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아키에 여사가 긍정적으로 반응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키에 여사는 과거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전 총리가 후계를 위해 양자 입양을 제안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를 입양해 그 한 명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식이 없다고 꼭 입양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죠. 아베 전 총리 생전에도 양자 입양을 거부했던 아키에 여사가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상황에서 시댁 가문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 다 큰 성인을 양자로 기꺼이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 보입니다.
아키에 여사는 유력 정치인의 아내이자 재벌가 출신치고 서민적이며 사교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으로 도쿄 금융가에서 선술집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SNS 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최근 미국 CNN은 그녀에 대해 미국식 영부인처럼 대중적인 역할을 하며 남편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았다고 평가 하기도 했죠.
한편으로 총리 부인으로서 언행이 경박하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모리토모 스캔들 등 직접 관련된 의혹도 있어 일본인들의 평가가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핏줄 하나 없는 그녀를 동정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 세습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일본 사회 분위기와 동정표 효과 등 정황상 아키에 여사가 실제로 출마할 경우 당선은 거의 확실시돼 보입니다. 야마구치현의 아베 후원회 사람은 슈칸 겐다이에 "아키에 씨가 출마 한다면 전국적으로 주목 받는 건 물론이고 아베 전 총리를 지원하던 지역 기업들이 진심으로 선거운동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 정계 유력 인사 부인 중 대표적인 한류팬이자 친한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 연령대 여성들이 그렇듯이 일본에 처음 한류 열풍을 가져온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한류에 빠졌다고 합니다. 김치를 손수 담가 먹기도 하며 한일 문화 교류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최근까지 페이스북에 한국 뮤지컬을 관람한 후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우익들로부터 한국계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키에 여사의 가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규슈 사가현에서 도자기를 팔던 상인이 나오는데, 해당 지역이 한반도와 교류가 많았던데다 일본에서 도자기를 취급하는 집안은 조선계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한국계설이 있는건 아키에 여사 뿐이 아닙니다. 아베 전 총리도 도래인(渡來人), 즉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가문의 후예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언급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뿐 아니라 친조부 아베 간 역시 도래인으로 추정되고 있죠. 대표적인 일화가 아베 전 총리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1974년 조선 출신 도자기 장인 심수관의 후손에게 "우리 가문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넘어왔다"고 고백했다는 일화 입니다. 2006년 주간 아사히는 아베가에서 40여 년간 머물며 아베 형제를 키워낸 구보 우메라는 여성이 아베 전 총리의 부친 신타로가 가끔 "나는 조선인이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죠.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일본 경제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뛰어난 리더쉽으로 집권 기간 비교적 정국을 안정시켰고 외교적으로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 노선을 지켰다는 등의 긍정적 의견이 있습니다. 반면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진 우익 정치인이자 세습된 지위를 보장 받은 '도련님'에 불과하며 전후 최장 재임 기간에 비해 업적은 빈곤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죠. 일본 최대 포털 야후 재팬에서 진행 중인 '아베 전 총리와 관련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여론 투표에서는 과반수가 모리토모, 가케 학원 스캔들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그를 탁월한 정치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훨씬 강한 듯합니다. 일본은 현직 총리에 변고가 생겼을 때에만 국회의사당에 조기를 게양하게 돼 있지만 이례적으로 그의 사망 후 조기를 게양했고 올가을엔 전후 총리중 2번째로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한 일본인 지인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것을 보고 꽤나 놀랐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미국, 인도, 호주, 대만 등 일본과 친밀한 몇몇 나라들은 국가가 직접 나서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기도 했죠.
※토요일 연재되는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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