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워지는 지구에 양산을 씌워주면 어떨까?

이정호 기자 2022. 7. 1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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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계 '우주 양산' 연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제시한 ‘우주 양산’ 상상도. 모기장처럼 생긴 장애물이 지구에서 160만㎞ 떨어진 우주에 배치돼 전달되는 햇빛 일부를 차단하는 방식이다(큰 사진). ‘우주 양산’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작은 거품을 브라질 영토 면적만큼 이어붙인 것으로,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작은 사진). MIT 제공
지구에 직접 변화 가하지 않고서
온난화 예방할 수 있는 기술 주목

#. 질주하는 열차 창밖으로 북극이나 남극에서 볼 수 있는 끝없는 설원이 펼쳐져 있다. 이 땅에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자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는 극지방이 아니다. 온 지구가 이런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이렇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던 인류가 대기 중에 특수물질 ‘CW-7’을 분사했는데, 이것이 강력한 빙하기를 불렀다.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이 의문의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몇몇 객차를 제외하고 탑승자 대부분은 헐벗고 굶주린다. 이들에게 열차 안은 생존할 수 있는 구원의 장소이자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지옥이다.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얘기다.

<설국열차>에서 인류가 CW-7을 대기 중에 뿌린 행동은 ‘지구공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에 속한다. 지구공학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같은 장기적인 대응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기후변화를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바다에 이산화탄소 증가 수치를 완화할 물질을 방출하고, 대기 중에 햇빛을 튕겨내는 알갱이를 살포하자는 아이디어가 대표적이다.

일견 해볼 만한 일처럼 보이지만,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런 개입이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공학 실행을 위험한 시도로 본다.

그런데 최근 미국 과학계에서 지구공학 효과를 내면서도 지구 기후에는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 새로운 개념을 제기했다. 지구로 쏟아지는 햇빛을 가릴 ‘우주 양산’을 띄우자는 제안이다. 지구의 열기를 식히면서도 대기나 땅, 바다 어디에도 인위적인 물질이 접촉하지 않게 하려는 방식이다.

태양·지구의 중력 균형 지점에
실리콘 거품 소재 ‘차광막’ 설치
햇빛 1.8%만 줄여도 획기적 효과
“비상 대책…탄소 저감 지속해야”

■ 지구-달 4배 거리에 차광막 ‘두둥실’

과학기술전문지 ‘파퓰러 메카닉스’와 ‘사이언스 얼럿’ 등은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우주에 태양광 차단막을 설치해 지구의 기후변화 효과를 완화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MIT 연구진 기술의 핵심은 지구에서 160만㎞ 떨어진 ‘제1 라그랑주 점(L1)’에 햇빛을 가리는 우주 양산을 펼치는 것이다. 160만㎞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2배다.

우주에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5군데 있다. 제1 라그랑주 점은 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제1 라그랑주 점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에 태양을 늘 바라볼 수 있다. MIT 연구진이 제1 라그랑주 점에 햇빛을 가리는 우주 양산을 띄우려는 이유다.

중력 균형점에 설치하면 공전 등의 변화에도 항상 일정한 위치에서 안정적인 자세로 햇빛을 꾸준히 차단할 것으로 예측한다.

MIT 연구진은 우주 양산의 소재를 실리콘으로 형성된 거품이라고 설명했다. 거품을 다수 생성해 서로 다닥다닥 이어붙인 뒤 태양과 지구 사이에 띄운다는 전략이다. 연구진은 우주 공간과 비슷한 0.0028기압과 영하 50도 환경에서 실리콘 소재의 거품을 생성하는 실험도 했다고 밝혔다.

■ 햇빛 1.8% 줄여 온난화에 ‘반격’

연구진은 우주 양산을 브라질 영토 면적만큼은 키워야 기후변화 완화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계산했다. 브라질 영토는 남한보다 85배 넓다. 현실화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대 크기의 인공 물체가 우주에 등장하게 된다.

이 기술로 연구진은 지구로 날아드는 햇빛 가운데 1.8%를 줄이는 게 목표다. 이 정도만 햇빛을 줄여도 기후변화의 양상을 완전히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예측한다. 만약 이 수치까지 햇빛을 차단하지 못해도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이들은 기대한다.

연구진은 우주 양산 기술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일상적인 대책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만든 문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사용할 비상대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해온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노력 등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연구진을 이끈 카를로 라티오 MIT 교수는 ‘파퓰러 메카닉스’에 “앞으로 햇빛 차단을 현실화할 기술 개발에 나서겠다”며 “지구공학을 실제로 적용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가장 큰 효과를 내면서도 환경에 피해가 없도록 할지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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