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공간? 역사공간?..관람 열기 속 靑 보존·활용 방안 '아직'

김예나 2022. 7. 1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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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두 달 됐지만 청사진 안 나와..문체부-문화재청 견해차에 우려도
관람객 몰리며 규정 위반 행위 잇따라.."조사하기도 전에 훼손 위험"
"개방 효과는 이미 확인, 다음 단계 고민해야..관람객 수 제한 시급"
청와대 본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대한민국 역사의 상징적 공간인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과도한 관람 열기가 자칫 역사적 공간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1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5월 1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청와대를 방문한 관람객은 125만 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약 1만9천 명이 청와대를 찾아 역대 대통령의 업무와 거주 공간을 직접 본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려들 정도로 관심이 뜨겁지만, 현재 청와대 관람은 본관, 영빈관, 관저, 상춘재 등 주요 건물과 경내 녹지를 둘러보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청와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방침이나 방향이 제시되지 않은 탓이다.

현재 청와대 권역은 문화재청이 대통령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임시로 관리 중인데, 향후 계획과 관련해선 경내 대통령 기념식수, 노령 수목 집중 관리 등 일부 내용만 내놓았을 뿐이다.

청와대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할지,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할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 각 시설물이나 주변 일대에 대한 조사나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관저 둘러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람객들이 밀려들면서 시설물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실제로 지난 16일 찾은 청와대 권역에서는 관람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지난 6월 공개한 '청와대 관람 등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수박, 참외 등의 과일류를 반입할 수 없다고 돼 있으나 일부 관람객은 벤치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씨를 뱉었고,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안내문을 무시한 채 잔디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거나 연못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학계 안팎에서는 경복궁 후원이라는 역사적 공간이자, 최고 권력자가 사용한 정치 공간인 청와대가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위락시설인 '창경원'처럼 단순한 유희의 장소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내 견해차로 활용 계획 마련이 지지부진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임시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과 관계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를 어떻게 활용할지, 누가 관리할지 등을 두고 엇갈린 견해를 보여 조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가 문화예술성과 상징성, 자연이 매력적으로 작동하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박 장관은 '대통령실, 문화재청 등 관련 부처 및 민간 전문가들과 정밀하게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문화재청은 같은 날 청와대 관련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로 했다가 연기했다.

문화재청이 사전에 공지한 내용에 따르면 이 자료에는 청와대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상시관리 강화, 기초조사·연구, 문화재 지정·등록 본격 추진 등의 향후 계획이 담길 예정이었다.

청와대 본관 둘러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문화재청이 공개한 설문 조사가 문체부와 미묘한 입장 차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1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관람객 1천 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9%(복수 응답)는 '대통령의 삶과 역사가 살아있는 현재 모습 그대로 원형 보존'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답은 15.2%에 그쳤다.

한 학계 관계자는 "'문화'라는 단어를 쓸 때 문체부는 활용에, 문화재청은 문화유산과 보존에 방점을 찍는다. 청와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이 자칫 섣부른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개방'이라는 상징적인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는 미래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청와대는 경복궁 후원과 연결되는 데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공간"이라며 "여러 조사를 바탕으로 정비 계획을 세워 지속성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복궁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건축역사학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 역시 "청와대가 열린다는 상징성이 컸는데 이 부분은 충분히 즐겼다. 이제는 청와대가 국민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관람 방식에도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청와대는 온라인 사전 신청을 통해 관람을 받고 있는데, 하루 최대 4만9천 명까지 가능하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본관 등 주요 시설을 보기 위한 대기 시간이 1시간 이상인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헌 교수는 "지금까지 청와대와 관련한 내용이 조사된 적이 거의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관람객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거나 아예 차단해서 향후 활용·관리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창모 교수는 "지금처럼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관람객이 몰리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향후 관리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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