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조선업..파업에 인력 부족·원자재값 부담 '삼중고'
글로벌 수주 호황에 모처럼 분위기가 살아난 한국 조선업이 암초를 만났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으로 노사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데다 인력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손실이 커지면서 조선사마다 비상이 걸렸다.

▷노조 파업에 선박 인도 무기한 연기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는 지난 7월 7일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작업장 점거, 직원 폭행, 설비 파손, 작업 방해 등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법질서를 바로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피해가 대우조선해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전체 조선업으로 확산해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조선업 호황의 기회가 불법 파업으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전날인 7월 6일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한 데 이어 기자회견까지 열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호소한 셈이다.
대우조선 직원들도 발 벗고 나섰다. 7월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하청지회의 불법 파업 폭력행위를 막아 대우조선을 살려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배포했다. 이들은 “대우조선은 대주주를 포함한 채권단 지원과 직원, 협력사 등의 희생으로 살아남았고 이제 경영 정상화를 통해 국민의 혈세로 지원된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파업이 지속되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우조선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여론전에 나선 것은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근로자들은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등을 요구해왔다. 임금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선하청지회장 등이 6월 중순부터 옥포조선소 1독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원유 운반선 난간에 올라 고공농성 중이다. 부지회장 A씨는 운반선 바닥에 설치한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스스로 출입구를 막아놨다.
이 여파로 1독에서 건조 중인 배 4척의 인도가 무기한 연기됐다. 대우조선 측은 “진수 지연으로 하루 매출 260억원, 고정비 6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6월 말까지 누적 손실이 2800억원을 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예정대로 인도 일정을 지키지 못하면서 지체 보상금도 갈수록 불어나는 중이다. 대우조선 측은 지난 6월 말 기준 지체 보상금을 400만달러(약 52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만약 7월 말까지 파업이 이어지면 지체 보상금만 2000만달러(약 260억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당연히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9547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올 들어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1분기에만 4701억원 손실을 기록해 5분기 누적 영업손실만 2조원을 넘어섰다. 1분기 부채비율도 523%로 치솟는 등 재무구조도 불안하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재료비 인상 등의 여파로 대우조선은 1분기 컨센서스를 넘어서는 대규모 손실을 냈다. 실적도 좋지 않지만 1분기 자본총계가 1조7000억원 수준에 그쳐 자본에 포함된 영구채(2조3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가 부담에 흑자전환 요원
대우조선뿐 아니다. 다른 조선사들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당장 수주 실적만 놓고 보면 상황이 나쁘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전 세계 발주량 2153만CGT 중 45.5%(979만CGT)를 수주하면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수주금액도 265억달러로 전체의 47%를 차지하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상반기 기준으로 수주 실적이 중국을 따라잡은 것은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원유 운반선(PC),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원유 운반선 3척 건조 계약을 체결하면서 6개월여 만에 올해 연간 수주 목표액인 174억4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대우조선도 올 들어 59억3000만달러 선박을 수주해 올해 목표치의 66%를 달성했다.
문제는 눈앞의 일감을 소화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조선업 불황을 겪으면서 설계, 연구개발(R&D) 인력을 대폭 줄였다. 설계 직원은 2015년 1만8643명에서 지난해 5236명으로 70% 이상 감소했고, R&D 인력도 같은 기간 1772명에서 1283명으로 30%가량 줄었다. 2015년 4319억원에 달했던 조선 3사의 R&D 비용은 지난해 2163억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현장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연말까지 조선소 현장에 용접공, 도장공을 포함해 9500여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정작 인력 채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5월 기준 조선 3사의 직영, 사내협력업체 기능직 인력은 6만3227명으로 연초 대비 102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 특성상 근무 강도가 높은 데다 지방에 위치해 구직자를 끌어오기가 만만찮다. 오랜만에 조선업 호황을 맞았지만 언제든 불황이 찾아오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는 점도 문제”라고 귀띔한다.
수주가 늘지만 곧장 실적 호조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조선업계 특성상 수주는 2~3년 후에야 실적으로 반영되는 만큼 당분간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다.
후판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인상도 변수다. 철강사들이 지난해부터 후판 가격을 세 차례 인상하면서 지난해 초 t당 60만원대였던 후판 가격은 최근 120만원대로 두 배가량 뛰었다.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비용의 20%가량을 차지한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향후 후판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도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기간 내 흑자전환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한국조선해양은 1분기 연결 기준 3964억원 영업손실을 냈고 삼성중공업도 949억원 손실을 기록해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김종훈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원자재값이 하락하지 않으면 연내 조선사들이 흑자전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가뜩이나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같은 ‘빅이벤트’조차 무산된 처지라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 초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에 불허 결정을 내렸다. 집행위는 “이번 M&A로 최소 60%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사가 탄생한다. 두 기업의 결합이 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형성해 경쟁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조선업 재편을 준비해온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동안 봉쇄됐던 중국 상하이 일대 조선소가 재가동되면 또다시 저가 물량 공세가 판을 칠 수 있다. ‘빅2’ 조선사 합병이 무산된 데다 노조 파업 등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수주마저 줄면 턴어라운드 시기가 한없이 지연될 우려도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 분석이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8호 (2022.07.20~2022.07.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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