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있는 시간

서울문화사 2022. 7. 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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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차 한잔. 이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한 칸 다실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브랜드 '한칸다실'의 이주영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머무는 곳이 한칸다실”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문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뭔가요?

운이 좋게도 차 관련 일을 시작한 이후 주로 화려하고 좋은 공간에서 일했습니다. 덕분에 이미 고가의 가구와 차 도구에 눈이 익숙해져 있었죠. 막상 독립하려고 보니 고가의 다구와 공간을 갖추지 않으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차를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편안함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공간이나 물질적인 개념을 떠나 편안하게 머물며 차를 마시는 곳, 그곳이 한칸다실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한칸다실이라는 브랜드명은 허균의 ‘누실명’이라는 다시(茶詩)의 실제로 작은 공간에서 향을 사르고 차를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 글 중 “내 마음 고요하고 이 몸 편하거니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라는 글귀에서 시작했습니다.

한칸다실의 차 이름은 마음의 방학, 참새의 말 등 따뜻한 이름이 특징입니다. 티 네이밍은 어떻게 정하나요?

차를 마시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 등을 그때그때 사진이나 글로 남겨둡니다. 티 네이밍을 정할 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이름을 붙이기도 하죠. ‘참새의 말’, ‘우엉의 근본’ 같은 경우에는 찻잎의 특징이나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본 다음에 사람들에게 이 차를 통해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차의 이름에 녹였어요. ‘마음의 방학’은 일이 많아 정신없을 때 차 친구와 함께 우리나라에 있는 차 산지를 여행했었는데, 그때 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아! 정말 마음이 쉬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방학이라고 짓게 됐어요. 보통은 저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나 차를 마시며 생각한 이야기, 감정들을 네이밍 작업을 통해 차에 담아냅니다.

처음 차에 빠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조용한 공간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고궁이나 성당, 절, 전통찻집, 한옥에 가는 것을 좋아했죠. 그곳에는 항상 차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를 좋아하게 됐어요. 차를 배우기 시작한 후 처음부터 엄청 빠지진 않았어요. 다도 전공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그때가 30살 무렵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기 낳고 할 때라 조금 동떨어지고 뒤처진 느낌이 들기도 해서 휴학하고 좀 쉬기도 했죠. 회사 이직도 잘 안 되고, 뭘 해도 안 되는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그때 대학원 동기 언니 아버지 댁에서 언니 아버지가 직접 우려낸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울컥해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죠. 이때 차가 사람을 위로해준다는 걸 알게 됐고, 차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생각으로 지금까지 차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차와 함께 하는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사실 일하는 시간, 평일, 쉬는 날 등 차를 마시는 루틴은 모두 달라요. 시간과 장소는 가리지 않아요. 바쁠 때는 티백이나 잎차를 큰 티팟에 넣고 우려 큰 머그잔에 따라 마시기도 해요. 시간이 나거나 쉬고 싶을 때는 혼자 조용히 앉아 한 가지 차를 골라 좋아하는 다기에 천천히 우려 몇 시간이고 마셔요. 생각을 정리할 때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멀리하고 차만 마시죠. 요즘엔 물 끓이는 소리가 좋아 음악도 끄고 차만 마시기도 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지켜보거나 찻잎을 넣고 따뜻한 물을 넣었을 때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아! 맛있겠다’ 하는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하죠. 제게는 그 시간이 가장 힐링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탁자에 올려놓은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한칸다실은 패키지에도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습니다. 패키지 디자인의 콘셉트는 뭔가요?

한칸다실의 로고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로고 역시 ‘찻잔 하나만 있으면 내가 머무는 곳이 한칸다실’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너무 어렵고 무겁게 소개되는 차를 귀엽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백이 많고 귀여운 이미지를 생각하게 됐죠. 아이패드 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인 수수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로고를 먼저 만들었어요. 지금도 그 결을 이어나가고 있죠. 최근에 만든 집 모양의 상자는 다실을 모티브로 하되, 비어 있는 방이나 시골의 작은 오두막을 생각했어요.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이란 만화책의 한 페이지에 있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역시 여백이 많고 조용한 느낌을 주려 했고, 어릴 때 받았던 과자 박스나 선물 상자 같은 따뜻한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좋아하는 차와 그 이유는 뭔가요?

보이차 중 보통 30년 이상 지난 차, 노차라고 불리는 차를 좋아해요. 세월을 품고 있는 맛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중 대추 향(조향)이 나는 차를 좋아합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맛이 나는 차를 선호하는 편이죠. 술로 비유하자면 도수는 높은데 향은 풍부하고, 맛은 깔끔한 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름 차를 즐기는 한칸다실만의 팁을 알려주세요.차갑게 마시면 좋은 차도 추천 부탁합니다.

저는 차가운 면 요리를 좋아해 여름에 특히 배앓이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열치열이란 말이 있듯 일부러 성질이 따뜻한 차를 찾아 마셔요. 중국의 흑차 중 비 내리는 날 숲에서 나는 흙 내음이 느껴지는 육보차를 마시죠. 우리나라 차 중에서는 배를 따뜻하게 하는 쑥차가 좋아요. 여름에 온더록스 잔에 각 얼음을 먼저 넣고, 진하게 우린 백차를 담아 위스키처럼 마시는 것을 즐깁니다. 여름철 갈증 해소에도 좋고, 열을 내리는 효과도 있어요. 단, 몸이 찬 이들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이들은 캐모마일 같은 디카페인 허브차를 차갑게 우려 마시는 것도 좋아요.

차 입문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칸다실의 클래스에 대한 소개도 부탁합니다. 

차에 입문하면 다구부터 사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 산 다구는 나중에 잘 안 쓰게 돼요. 차를 많이 마셔보되, 다구는 기본 아이템만 갖추고 천천히 사도 됩니다. 차를 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아직 낯선 것뿐이지 꼭 잘 알아야 차를 마시는 건 아니니까요. 차는 취향이고 기호 식품 중 하나입니다. 차에는 정답이 없어요. 유행에 따르거나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차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차 맛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 마시는 시간을 나를 돌보며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칸다실의 티 클래스는 ‘취미다도’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월 주제를 정해 그 계절에 어울리는 차를 중심으로 ‘느긋한 마음’, ‘자기만의 방’ 등 부제를 붙여 한칸다실에서 전하거나 함께 하고 싶은 메시지를 슬쩍 담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방식이 있다면, 수강생들과 되도록 옆으로 앉아 진행하려고 해요. 자신만의 차, 나만의 시간을 위한 차 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차 시간이 됐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찻집에 갔을 때나 집에 친구를 초대했을 때 차를 우려낼 수 있도록 차 도구 설명과 사용법, 잎차를 좀 더 맛있게 우리는 방법 등을 안내하는 실용적이고 즐거운 티 클래스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에디터 : 서지아 | 진행 : 류창희(프리랜서) | 사진 : 김정선, 각 브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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