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유일 교황대사' 장인남 대주교,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서믿음 2022. 7. 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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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남 바오로 대주교(사진·72)가 네덜란드 교황대사에 임명됐다.

19일 교황청 공식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따르면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 대주교를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낙점했다.

2002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명으로 방글라데시 주재 교황대사와 아만치아 명의 대주교로 재직했다.

장 대주교의 첫 교황대사 인연은 방글라데시에서 맺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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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장인남 바오로 대주교(사진·72)가 네덜란드 교황대사에 임명됐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교황대사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현재까지도 유일한 교황대사다.

19일 교황청 공식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따르면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 대주교를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낙점했다. 교황대사는 바티칸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에 파견돼 해당국과의 친선 관계를 증진하고, 지역교회에 대해 교황에게 보고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장 대주교는 1949년 충북 청주의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북한 평양교구 출신으로, 1·4후퇴 때 월남했다. 특히 어머니는 천주교 전국 여자 회장 출신이다. 미국 선교사들을 도와 전쟁고아 80명을 돌보며 구제에 힘썼다. 두 아들(첫째 장인산, 둘째 장인남)은 사제의 길을 택했다.

대건신학대학(광주가톨릭대)을 나온 장 대주교는 1976년 12월 17일 사제품을 받고 청주교구 교현동본당 보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을 거쳐 로마에서 유학했다. 이후 1985년 교황청 라테라노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교황청 외교관 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황청 외교관 직무는 1985년 엘살바도르 교황대사관 2등 서기관(몬시뇰 직위)으로 시작했다. 이후 에티오피아 교황대사관 1등 서기관, 시리아 교황대사관 1등 서기관, 프랑스 교황대사관 2등 참사관, 그리스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 벨기에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을 차례로 지냈다.

2002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명으로 방글라데시 주재 교황대사와 아만치아 명의 대주교로 재직했다. 장 대주교의 첫 교황대사 인연은 방글라데시에서 맺은 셈이다.

2002~2007년 방글라데시 교황대사, 2007~2012년 우간다 교황대사를 거쳐 2012년 8월 태국, 캄보디아 교황대사와 미얀마, 라오스 교황사절로 임명됐다.

2017년 교황청과 미얀마가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에는 미얀마 교황대사를 겸직해 왔다. 교황대사로 임명되면서 10년여만에 동남아를 떠나 네덜란드로 향하게 됐다. 장 대주교는 이미 지난 6월 말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외교사절 신임장)을 받은 바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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