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F-21 첫 비행에 안보라인 무관심..'낙하산 젯밥'에만 관심?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2. 7. 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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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강 미티어 공대공미사일 4발을 달고 이륙하는 KF-21


세계 3대 에어쇼 중 하나인 판버러 국제 에어쇼가 현재 영국 햄프셔카운티에서 진행 중입니다. 판버러 에어쇼의 그제 핫이슈는 단연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첫 비행이었다고 합니다. 에어쇼의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부스는 축하 인사받느라 북적였다는 전언입니다. "한국의 위대한 업적", "판버러를 뒤흔든 놀라운 비행", "올해 항공업계의 최대 뉴스"라는 외국 파트너들의 판버러발 메시지를 받은 국내 방산업체 임직원들도 많습니다.

그제 비행 시험이 끝난 뒤 한참 동안 경남 사천 KAI 본사 주변 교통이 마비됐습니다. 각지에서 첫 비행을 구경하러 간 사람들이 많았던 데다, 지나가던 차량들까지 사진 촬영하느라 멈춘 것입니다. 이륙, 비행, 착륙의 매 단계마다 내외신 매체들은 뉴스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비행 시험 성공 축하와 분석, 조종사 인터뷰 등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20년간 품었던 초음속 전투기 독자 개발의 꿈이 무르익는 순간, 국내외가 떠들썩했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의 안보라인은 잠잠했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차관, 안보실장과 차장, 방사청장, 공군 참모총장, 국방과학연구소장 중 누구 하나 최초 비행 시험 현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창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출고식이 열린 전투기여서 지금 정부는 애착이 없다"는 소문이 사실로 굳어질 판입니다.

이제는 "정권의 안보 유력자들이 KF-21 '제사'보다 KAI 낙하산 사장 '젯밥'에만 관심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수 후보들의 경쟁과 부침 끝에 한 '올드보이'가 유력 낙하산으로 떠오르는 등 낙하산 경쟁의 열기는 참 뜨겁습니다.
 

안보라인 무관심의 이유는

KAI 직원들이 항공기 유도로에서 시험 비행에 나설 KF-21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첫 걸음 같은 KF-21의 첫 비행을 긴장하며 지켜봤습니다. KAI 개발진은 다양한 실패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현장에 나섰을 것입니다.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세계 항공업계의 큰 사건이어서 판버러에어쇼의 눈도 경남 사천으로 쏠렸지만 우리 안보라인은 전원 불참이었습니다.

"왜 무관심했냐"고 물었더니 국방부는 "방사청으로부터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고를 받아 장관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방사청이 어떻게 보고했는지는 방사청에 직접 문의하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국방부가 보고를 제대로 못 받아서 장관이 불참했다면 안보실 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행 종료 6시간 후인 밤 10시 반쯤에야 대통령실의 비행 축하 메시지가 나왔는데, 그 이유가 짐작됩니다.

"국방부에 어떻게 보고했냐"고 방사청에 물었지만 방사청은 하루가 지나도록 대답을 못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가 환호하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큰 걸음 앞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눈과 귀를 가린 셈이니 방사청의 난처한 처지를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AI 내부 행사여서 소장이 불참했다", "그제 소장은 삼척으로 업무 출장을 갔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KAI와 함께 개발한 KF-21의 첫 비행을 KAI 내부 행사로 치부하는 인식이 놀랍습니다. 삼척에 얼마나 중요한 업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결과적으로 안보라인의 총체적 판단 미스 같습니다. 정부가 약간의 응원만 보태도 KF-21의 해외 마케팅과 신뢰도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안타깝습니다. KF-21이 스스로 대히트를 쳤으니 KAI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낙하산 사장 작전은 열심

KAI 직원들이 첫 비행에 성공한 KF-21을 환영하고 있다.

현 정부 안보라인은 윤석열 대선 캠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캠프 출신들이 안보라인 다수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아직도 제 몫을 못 찾은 캠프 출신들 중 여러 명은 KAI 낙하산 사장 자리를 탐내고 있습니다. 정부 지분이 26%라는 이유로 KAI의 사장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낙하산입니다. 수억 원 연봉에 3년 임기가 보장되는지라 경쟁이 치열합니다. KF-21 첫 비행에 대한 무관심과 확연히 대비됩니다.

KF-21이 첫 비행을 하던 그제도 낙하산 쟁탈전은 벌어졌습니다. 4~5명의 유력자를 제치고 70대 올드보이의 이름이 안보라인 주요 인사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기존 유력자들은 크고 작은 부적격 사유가 있었고 항공우주 전문가가 아니란 점에서 퇴장하는 가운데 KAI 임원 경력의 새로운 유력자 A 씨가 나타난 것입니다.

A 씨는 10여 년 전 KAI를 퇴사했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KAI 사장으로 재기를 꾀한 적 있는 인물입니다. 해외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10여 년 전 KAI를 떠났다가 정치의 끈을 잡고 내려간다면 이 역시 낙하산이다", "KF-21을 알 리 없는데 KF-21 개발의 가장 중요한 국면을 지휘할 수 있겠나"라며 우려했습니다. 국내 방산업계의 한 임원은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3개 정부 연속으로 KAI 낙하산 사장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 A 씨의 정치 수완이 대단하다", "3년 전 A씨가 누구의 지원을 받아 KAI 7대 사장에 도전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안보라인의 무관심 속에 KF-21은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4년간 2천200회 이상 비행하며 전투기 성능을 가다듬는 KF-21 개발 마지막 단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시작은 멋졌지만 2천200회 비행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살얼음판입니다. KF-21 개발과 마케팅에 정통한 전문가가 KAI를 이끌어야 KF-21의 최종 성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차차기 사장은 낙하산이 맡더라도 이번만은 낙하산을 접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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