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난 검찰 내 불가촉천민..성공한 내부고발자 되고 싶다"

하어영 2022. 7. 23. 0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인터뷰 : 새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부장검사
백지 구형 거부·성폭력 신고 등
10년 분투 검사게시판 글 모아
"세상 바꾸기 위해 판례 만들자"
검사·고발인·공익신고자 삶 살아
지난 17일 서울 중구 메디치미디어 출판사에서 임은정 검사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성공한 내부고발자가 되고 싶습니다.

임은정(48) 대구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여전히 끓고 있다. 그가 비등점을 넘어선 건 2007년 이른바 ‘도가니’ 검사 시절부터다. 2012년 9월 ‘박형규 목사 민청학련 재심 사건’, 같은 해 ‘윤길중 진보당 간사 반공법 위반 재심 사건’에서 검찰 지휘부의 백지 구형 지침에 반기를 들고 무죄 구형을 내리면서 흘러넘친 그의 말과 글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 미투 사건’, 같은 해 ‘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사건’ 고발, 2019년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 등 사건 은폐’ 고발, 인사거래 제안 폭로(2018년, 2019년) 등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끓어올랐다. 활화는 여전하다.

그는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으로서 관여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 총장이 자신을 업무에서 부당 배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찰·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전 총장 수사 방해 의혹’은 국민권익위원회(공익 신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불기소), 서울고등법원(즉시 항고) 등을 거쳐 대법원에 다다랐다. 그는 검사이면서, 공익신고자(부패신고인)이자, 고발인이다.

그리고 임 검사 말을 빌리자면 “전장이 하나 더 늘었”다. 이번엔 책이다. 제목부터가 <계속 가보겠습니다>다. 책 곳곳에서 그는 스스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를 뚜렷하게 내보인다. “(검찰) 실록을 쓰고 싶었다”는 말에 독자들은 어떻게 답할까. 지난 17일 서울 중구 메디치미디어 출판사에서 임은정 ‘작가’를 만났다.

세상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일

―지난 5월 옮긴 대구지검 생활은 어떤가요?

“2013년 ‘국가정보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당시 윤석열 국정원 수사팀장을 대구로 좌천시켰던 게 박근혜 정부 때잖아요. 저도 (대구에서) 구박받아라 그랬겠죠. 그런데 사실 편해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갈 땐 총장에게 충성도 높은 이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제게 적대적이었거든요. 대구 오니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현수막도 있었어요.(웃음)”

―이번 책에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검찰 고위직 실명이 담겼습니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요?

“2012년 무죄 구형을 하고 나서는 불가촉천민이 됐죠. 딱히 말이 없네요. 말해도 안 듣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조금은 편해지신 건가요. 검찰 내부 여론으로부터도?

“그건 좀 됐어요. 2018년인가, 검사게시판(인사거래 제안 폭로 당시)을 의도적으로라도 보지 말아야지 하다가, 무심코 들어가게 됐어요. 거기에서 제가 또 피를 흘리고 있더라고요. (비판하는 사람 중에) 아는 이름들이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공황장애가 올 뻔했죠. 아는 이가 돌아설 때 더 힘이 들었어요. 그러다 남편이랑 훌쩍 떠나 광주 5·18 묘지에 있는 송건호 선생님의 묘역을 찾았는데, 거기서 수상 이유(임 검사는 2020년 송건호언론상을 받았다)를 떠올리고 묘한 위로를 받았어요. 아, (5·18이나 독재정권 당시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그렇게 조금씩 게시판 속 ‘말’의 자기장에서 벗어난 거예요.”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게시판 글 올리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다 들고일어날 줄 알았어요. 동료들이 같이 봉화를 들 줄 알았죠. 너무 순진했던 거죠. 그러다가 (게시판 글만으로는) 안 되겠다, 세상을 바꿔야겠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판례를 만들자. 그렇게 점점 전장을 바꿔갔죠.”

그가 ‘게시판 투쟁’에서, 소송으로 방법을 바꾼 계기는 2014년 무죄 구형 징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백지 구형은 적법하거나 정당한 구형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받고서다.

―책 얘기를 좀 해볼까요. 검찰 (출신) 고위직 상당수가 실명으로 등장하네요. 일부는 익명이고요. 기준이 뭔가요?

“나름 ‘검찰 실록’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원래 저와 같은 연수원 30기 이상은 몽땅 실명으로 하려 했어요. 검사들은 공인이잖아요. 알알이 이름을 박아 잊히지 않기를 바란 것도 있죠.”

―검찰을 상대로 한 소송뿐 아니라, 강제퇴직 가능성이 있는 심층 적격심사도 받게 됐습니다. 여전히 일이 많네요.

“그래도 2016년 1월에 잘릴 뻔했을 때(1차 적격심사) 이미 생존 기술을 익혔달까요. 그때는 당장 어찌 될 것처럼 위축됐지만, 지금은 탈락하면 소송하면 되고…. 또 그게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검찰 바꿀 사람? 내부에는 없잖아요

그는 책에서 “전투에서 매번 지고 있는 듯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2019년 검찰은 ‘과거사 재심 사건 대응 매뉴얼’을 통해 과거 백지 구형에서 무죄 구형으로 업무 지침을 바꿨다.

―그렇게 스스로 올바르다고 해도, ‘방법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법도 해요.

“친한 동료였던 검사가 이런 말을 했어요. 돌부리가 걸린다고 포클레인으로 다 파려고 하느냐고. 제 말이 ‘과격하다’는 거죠. 그런데 사실 저는 차근차근 밟아가거든요. 감찰 제보 시스템, 검사 게시판, 부패 신고, 공익 신고…. 따져보면 지금껏 (방법이 있다면) 단계별로 왔지, 비약한 적은 없어요.”

―정계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죠.

“‘나가라’는 말이죠. 차라리 국회 가서 바꿔라.”

―그런 이야기도 백안시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검찰 밖에서 ‘검찰을 바꾸자’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안에는 없잖아요. 요즘도 여전히 검사들이 저한테 에스오에스(SOS)를 친단 말이에요. ‘김홍영 검사 자살 사건’ 때는 ‘당시 부장검사가 험한 말을 했다고 진술서를 썼더니 위에서 불러서 혼낸다’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검찰총장이 방문한다고 검사장이 로보트 태권브이 군무를 추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차장검사가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어떻게 좀 해달라’처럼 개별적으로는 모두 절실한 구조 신호들이죠. 참,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하나 좋아진 건 있었어요. 예전에는 임은정이랑 연락한 사람 색출 작업만 하고 모든 게 그대로였는데, 문 정부 때 그건 멈추더라고요.”

―이번 정부 들어서 다시 바뀌진 않았나요?

“공포 분위기야 검찰은 원래 그랬으니까, 윤석열 정부로 바뀌었다고 더 심해질 것도 없죠. 어떤 후배는 저한테 ‘글에 댓글 하나 못 써서 미안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 사직인사에도 댓글을 못 쓰고 있다’ 그러더라고요.”

―그 속에서 원고를 마무리했네요. 느낌이 어땠나요?

“10년, 열심히도 썼다?(웃음)”

―모아 놓은 글을 보니 글 자체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검사)게시판에 천일야화를 쓴다고 결심했어요. 게시판에 재미난 얘기를 풀어놓으면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사람들의 말과 생각이 살아날 것이다. 그 전에는 검사게시판에 볼 게 없다는 말이 많았거든요. 그러니 검사들이 볼만하게 쓰자, 화두를 던지자, 파문이 일면 댓글도 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할 테니까. 딱 한달에 한번 쓰자, 그렇게 생각했죠. 그게 2012년 4월입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까지 간 건가요?

“스스로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요. 언론 인터뷰도 승인을 받아야 했던 시절에 제 글을 책으로 써야겠단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잘 버텼고, 앞으로도 잘 버텨보자”

검사의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이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것도 2018년이다. “그게 사소해 보여도 많은 피 흘림이 있었다”는 임 검사 말처럼 신고제 변경은 서지현 검사 미투 이후 임 검사와 안미현 검사(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폭로) 등이 함께 이뤄낸 성과다.

―최근에는 마음속에 담아 둔 말이 있나요?

“제목과 똑같긴 한데요, 가야 하니까 갈 것이다, 나는 검사니까. 감당할 수 있어서 감당하는 건 아니었어요. 감당해야 하니까 감당하는 거거든요. 글이 자꾸 감정으로 넘치는 게 그래서인가 봐요. 그릇이 안 되는데, 감당해야 되니까.”

―‘가다 보니’ 변화는 있었죠?

“무엇보다 요즘은 검사들이 (방식과 지향이 다를지 몰라도) 게시판을 정말 많이 쓰잖아요. 그렇게 보면 표현의 자유는 정말 신장됐네요. 생각보다는 빨리 변하니 감사하긴 하지만 개인으로는 좀 많이 고달프죠.”

―앞으로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요?

“성공한 내부고발자가 됐으면 해요. 지금까지도 잘 버텼고. 앞으로도, 잘 버텨보자.”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