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왕따·시각장애 여중생, '현실판 우영우'로..그를 바꾼 '1진들'

이승환 기자 입력 2022. 7. 26. 09:20 수정 2022. 7. 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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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의 클로즈업]김예원 변호사 "법으로 돕고 싶었다"
'성착취·노동착취' 당한 장애인 피해자 무료 변호 '분투기'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가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6.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장애는 올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요약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매일 서울 도심 출근길 지하철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이동권 요구 시위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일상에 전면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ENA 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주인공 우영우는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천재 변호사다. 극중 소시민을 대변하는 우영우가 현실 사회에서 가능할까 논쟁이 붙고 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39·사시 51회)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 법조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의료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은 그는 장애인 당사자면서 장애인 인권 최전선에 서 있다. 장애인 피해자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그를 두고 한 언론은 "거침없이 외치는 변호사"라고 평가했다.

대형 로펌의 공익 재단 출신인 그는 '거침없이' 장애인 인권 실태를 폭로해 왔다. 온 동네 이웃에게 성 착취당한 발달 장애인, 15년간 노동 착취당한 발달 장애인,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발달 장애인이 김 변호사가 변호했던 이들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생에게 왕따를 당했어요.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없어 소위 '노는 친구들'과 친해졌더니 선생님들이 '인생 망친다'며 만류하더군요. 저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편견을 극복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하고 부조리하다고 느껴졌어요."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우영우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장애인 인권 변호사의 삶을 들려줬다.

◇"한 번도 분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 여러 언론 인터뷰 기사를 봤더니 "장애인 인권 실태에 분노하는 변호사"라고 정의할 수 있겠더군요. ▶ "살면서 한 번도 분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고 사법시험 합격 후 2012년부터 2년간 법무법인 로펌의 공익재단 동천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지요. 그때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을 많이 처리했어요. 미신고 시설에 갇힌 장애인을 구출하는 일이었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0번째로 잘사는 나라인데 장애인 피해자들은 마치 중세 시대에 사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어요."

- 동천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공익 변호사로도 활동하셨고요. 그런데 동천을 나와 장애인권법센터를 꾸린 이유가 있었을까요? ▶ "로펌 사건 특성상 시간이 꽤 지난 상태에서 접수됐어요. 무슨 말이냐면 초반에 제대로 조처했더라면 심각해지지 않을 사건이 많았던 거죠. '초기 대응'을 하지 않아 결국엔 피해자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사건으로 악화한 거죠.

그래서 아예 현장을 직접 뛰자고 결심했어요. 로펌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일하는 게 아니라 직접 전화받고 사건 접수하고 상담하며 해결하자는 것이죠. 동천을 그만둔 후 2014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7년 장애인권법센터를 아예 설립했지요."

- 세 자녀의 어머니로 알고 있습니다. 무료 소송 지원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수임료를 받을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제가 맡은 사건 중엔 인신매매를 당해 15년간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노동력이 착취된 남성 지적 장애인 사건이 있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여성 지적 장애인을 성 착취한 사건도 있고요. 자신보다 50살 어린 장애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친딸을 성폭행하고도 '피해자가 나를 꾀었다'고 어이없는 얘길 하는 가해자도 있었습니다.

10년 전에도, 7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이런 유형의 사건을 접했습니다. 문제는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거지요. 피해자가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데 그들에게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 다만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강연이나 저술활동, 정부 발주 연구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어요."

이날 김 변호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장관 표창을 받았다. 시각 장애인의 웹 접근성을 높기 위해 관련 법규를 제정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시각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이끌어 다음해 3월 '곽정숙 인권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곽정숙 인권상은 척수장애인으로 평생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한 곽정숙 전 의원(1960~2016)을 기리는 상이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먀련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및 피해 생존자 농성장' 주변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명분으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 410호(1987년 폐지)에 따라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돼 장애인, 고아 등 3000여명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강제노역과 학대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8.11.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2009년 제5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2018년 법무부 장애인차별시정심의위원회 위원, 2019년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2020년 대검찰청 검찰인권위원회 위원,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김 변호사는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학대 피해자를 자신의 거주지에 초대하곤 했다. 피해자가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소통을 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를 향한 심리적 장벽이 없다"며 "성격상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앞서 사례로 제시한 장애인 착취 사건은 얘기만 들어도 끔찍합니다. 기자로서 그런 사건 피해자를 취재할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막막하더군요. ▶ "생각만큼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당사자인 피해자의 얘기에 집중하면 돼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면 막막할수록 답은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해자를 어떻게 응징할까 분노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매우 소박한 얘기를 해요."

- '소박한 얘기'라면 어떤 얘기일까요? ▶"'혼자 살고 싶다', '이사가고 싶다', '편하게 있고 싶다'고 하지요. 요컨대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겁니다. 숨통이 트여야 제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안전한 주거 공간을 마련해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기 시작해요. 법적인 절차는 그때부터 하는 거죠. 일단 디딘 땅이 평평하고 단단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인터뷰하던 김 변호사는 올 초부터 이어지는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를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의 집회는 그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이번 집회는 출근길 지하철로 몰리는 시민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전장연의 집회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 집회가 반드시 옳은 것인지, 가장 효과적인 방식인지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나 시위 내용만 놓고 보면 그들은 21년째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21년을 참았으니 이제는 다닐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죠. 100% 예산을 투자해 지원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법으로 정한 국가계획의 절반만이라도 실천해달라는 요구입니다."

- 해외에서도 장애인들의 이동권 요구 시위는 있었지요. ▶ "1980~90년대 영국에서는 전장연과 비슷한 방식의 시위가 열렸어요. 당시 경찰들이 시위대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해 불편하다'고 하자 시위대는 '당신은 하루만 다니지 못하는 거다. 나는 40년 동안 다니지 못했다'고 했어요. 시위는 원래 불편한 것입니다."

◇'회복'이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 김 변호사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전교생 따돌림을 당해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다. 그러다 '너희만큼 잘 놀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겨 자신을 주도적으로 고립시켰던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김 변호사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자신의 편견을 돌아보는 계기였다는 의미다.

- 모범생이었는데 소위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친구들은 제가 시각장애인인데, 목소리가 크고 씩씩하게 구니 좀 '나댄다'고 느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따돌림당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 학교는 저한테 안정을 주는 유일한 공간이었거든요. 그런 곳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너무 억울하더군요.

먼저 다가가 아이들과 친해지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어요. 그들 중엔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많았고 학대 피해자도 많았어요. 자기 삶이 미치겠으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면 재밌고 현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탈선한 거죠."

- 주변에서 만류하지 않았나요? ▶ "하루는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어요. '너 성적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쟤네들과 어울리지 마''인생 망치고 싶어'라고 혼냈어요. 저는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편견을 극복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리니 뭔가 부조리하고 이상했어요. 요즘 '왕따''1진'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돼서 말씀드리기 좀 조심스럽기는 해요. 제가 경험했던 친구들만 놓고 말씀드리면 외롭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순수한 아이들이었어요."

- 그때부터 변호사가 꿈이었나요? ▶ "저는 계속 한쪽 눈으로 살았잖아요. 처음에 그 이유를 몰랐어요. 어머니의 출산 과정에서 의료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중학교 때 알았지요. 그런데 공소시효가 있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었어요. 계속 원망만 하고 살 것인가, 여러 생각이 드는데 법이란 게 꽉 막힌 것 같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해요. 반드시 변호사나 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법으로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ENA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유튜브 갈무리) © 뉴스1

- 실제로 변호사가 돼서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셨습니다. 그들의 억울함을 푸는 것만큼 상처를 '회복'시키는 일 또한 중요한 문제인데요. ▶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요. 어린 나이에 너무 고통스러워 학교 상담 선생님을 겨우 찾아가 도와달라고 사정했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나중에 약속 잡고 다시 오라'며 돌려보내더군요.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상담과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요. 그렇지만 누군가가, 너무나 힘든 자신의 편이 되는 것만으로 회복이 될 수 있어요."

- 피해자들에게 회복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이지요.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 있어요. 주민 센터에서 지원하는 네일아트를 배우는 것일 수도, 종이접기를 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 경험을 한 피해자들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며 행복해하고 삶의 활력을 느끼기 시작해요. 회복이란 망가진 인생을 치유해준다는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도 존중받는 상태를 의미해요."

- 그들의 회복이 김 변호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피해자들을 법률 지원하고 그들의 회복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저 역시 회복되고 있어요. 저에게 일은 회복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이동하는 길에 그는 주변 환경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판이나 경사로 보조판이 하나 없네요. 장애인들이 어떻게 다니겠어요. 이런 게 보이니 제 성격이 안 좋아지죠!" 김 변호사는 비록 의료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세상을 보는 시야는 그 누구보다 넓고 깊었다. 그의 뒷모습에선 '이 불편한 세상을 이대로 둘 것이냐'는 외침이 메아리 치는 듯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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