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진 외교장관 8월 방중..본격 시험대 오른 대중국 외교

김민정 기자 입력 2022. 7. 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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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쏠리는 박진 장관 방중

이달 초 강제징용 민관협의회 출범과 4년 7개월 만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 일정으로 한동안 대일 외교에 쏠려 있던 관심의 축이 이제 대중 외교로 옮겨 가는 모양새입니다. 이른바 '칩4 동맹' 등 우방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진 외교장관이 8월 방중 일정을 공식화했습니다. 박 장관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만난 왕이 중국 외교부장으로부터 8월에 중국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여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있었고, 그 제의를 받아 들였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달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담당국에선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정하기 위한 실무 협의에 돌입했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성사된 회담이라, 어떤 의제가 어떻게 논의될지 큰 관심사입니다. 이달 초 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짧게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양측 모두 '뼈 있는' 한 방 없이 탐색전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한 달 만에 열리는 '본 게임'에선 어떤 대화가 오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논의하나?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 상황을 감안해 박 장관의 방중이 베이징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정의용 전 장관도 지난해 4월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바 있습니다. 특히 박진 장관은 산동대 명예교수로 재직한 경험을 들어 산동성에 인연이 있음을 취임 직후 왕이 부장과의 화상 통화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G20 외교장관회담에서는 두 장관의 공통 관심사로 등산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때문에 중국 산동성에 장관급 회담을 할 장소가 있는지, 또 근처에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 있는지 찾는 데 당국자들이 부심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장소보다 중요한 건, 당연히 의제입니다. 크게 세 가지 의제가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상호 간 우호 협력 ▲한반도 문제 ▲글로벌 현안 등이 큰 범주입니다. 중국 전문 외교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우호 협력 분야에선 사드 보복과 코로나 이후 축소된 항공편 증편 등을 통해 양국 간 인적교류를 확대하자는 내용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를 이유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 했던 한중 간 2+2 전략대화를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재가동하는 문제도 주요 안건이 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두 번째 한반도 문제, 즉 북핵 문제인데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예고하고 있는 데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무력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입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선 국장급 북핵 문제 담당자인 북핵외교기획단장이 장관과 동행했는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차관급인 한반도교섭본부장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을 들여 외교전을 펼치겠단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는 세 번째, 글로벌 현안이 될 공산이 큽니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신냉전 체제 형성, 그에 뒤따르는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들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 돼 있기 때문입니다. IPEF 참여 결정에 이어 나토 정상회의 참석, 그리고 이른바 '칩4' 참여 여부를 고심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조금씩 수위를 높여 오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대만이 포함된 반도체 공급망 동맹 성격의 '칩4(미국 일본 한국 대만)'는 '하나의 중국'과 '반도체 굴기'라는 중국이 강조해 온 핵심이익과 뗄 수 없는 사안이라, 참여를 결정할 경우 중국의 거친 반응이 예상됩니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우리에게 이 칩4에 참여할지 여부를 다음 달까지 알려 달라고 통보한 걸로 알려집니다. 비슷한 시기 예정 돼 있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칩4를 염두에 둔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토록 예민한 사안임을 의식해서 인지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칩4와 관련된 일체의 언급을 삼가며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고수했습니다.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가입을 제안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8월이 답변 시한이란 보도에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외교 전략, 과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금부터의 대중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중 전략 경쟁에 동조하라는 미국의 압박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반작용 사이에서 우리가 발휘할 '외교적 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양쪽 사이 '줄타기'가 어려운 신냉전 질서 속에, 우리 신 정부는 이미 '가치 동맹'의 깃발을 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 등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일찌감치 택한 것입니다.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질서에 적극 올라타는 대신 중국의 반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과제로 남았는데, 이를 위해선 우리가 국익을 기반으로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외교적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고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예컨대 나토 회의에 참석한 것도 북핵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으로선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 북핵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협력을 받고자 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며 "장관회담에서 지속적인 설명으로 우리의 명분을 알리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이동규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이슈브리프 <신정부의 대중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이 대중 견제 목적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 확대와 한미일 안보협력의 경우에도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임을 강조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서의 중국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명분을 지렛대 삼아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이렇게 쌓은 외교적 명분이 나중에 중국의 압박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한중 FTA 2단계 협상과 황사,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같은 환경 문제 등 한중이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을 적극 발굴해 두 국가의 접촉면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왜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할까요. 중국의 반발이 우리 국민에게, 시장에게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우리 전체 수출의 25%, 수입의 23%를 차지합니다.) 핵심 광물이나 공급망에 대한 중국 의존도도 높습니다. 이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연착륙하려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우리가 중국에 전적으로 수입을 의존해야 하는 품목들 가운데 일부를 실수인 척 통관 지연시키고 공급망을 혼란 시켜 일종의 '비공식적 무역 제재'를 가하면 우리로선 엄청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상시 열려 있는 외교 채널을 통해 우리 외교당국이 이미 중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소통과 설명에 나선 걸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장관이 마주 앉는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중요성이 클 것입니다. 신 정부의 외교가, 박진 장관의 외교가 한중 관계에서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외교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지난 방일에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다는 평가와 의지가 없는 일본을 상대로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는 평가가 교차했던 박 장관이, 과연 이번 방중에선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김민정 기자compas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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