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학생의 시험 기간, 그리고 언론

한겨레 입력 2022. 7. 28. 18:10 수정 2022. 9. 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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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최근 캠퍼스 사망 사고와 관련한 <한겨레> 보도가 화제다. 사건과 관련해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묘사를 한 언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 국내 언론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만들고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결과다.
지난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마련된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의 추모 공간에 메모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열린편집위원의 눈] 위지혜 | ​이화여대 재학생

하버드대학교는 새벽 4시 반에도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하버드대학교만 그럴까. 한국도 그렇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에는 학교를 떠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한 강의당 많게는 60쪽까지 되는 파워포인트(PPT) 파일만 10개다. 400쪽짜리 전공서적, 밀려서 듣지 못한 녹화 강의까지 있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강행군을 한다. 그래도 진로와 관련된 과목들이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도서관에 도착할 때면 다짐한다.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정말 신나게 놀자고. 이 다짐은 힘든 시험 기간을 버티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새벽 5시가 되면 책상에 잠깐 엎드리거나 소파에 기대 쪽잠을 잔다. 그리고 시험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 벼락치기를 한다. ‘시험만 끝나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리라!’라는 달콤한 다짐과 함께. 한국의 많은 대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모습 아닐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최근 인하대학교 캠퍼스 사망 사고도 이런 배경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개인에게 집중할 특별한 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캠퍼스 사망 사고와 관련한 <한겨레> 보도가 화제다. 사건과 관련해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묘사를 한 언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다를 바가 없었던 처음 보도의 제목을 곧바로 수정했다. 국내 언론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만들고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결과다. 성폭력 사건 보도에 관한 한겨레만의 고민이 담긴 긍정적인 조처다.

묘사만큼 중요한 게 프레임이다. 범죄의 어떤 요인에 집중하는지에 따라 대중의 인식, 해결 방안이 달라진다. 언제나 그렇듯,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 책임 프레임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여성에게 초점을 맞춰 피해를 당하기 전 행동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예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몸을 간수하지 못했다’는 피해자 책임론으로 연결되고, 여성은 ‘음주’라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스스로 자제하도록 만든다. 대신 범죄자에게는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2차 가해다. 개인적 요인에만 집중하는 것은 관련 대책을 논의할 때도 사각지대를 만든다. 해당 사건과 다른 양상을 띠는 사건들은 정책적 관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인하대 캠퍼스 사망 사고 이후 논의되는 야간 캠퍼스 출입 통제, 대학 내 음주문화 개선 등은 캠퍼스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구조적 접근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언론이 주목하는 ‘젠더갈등 프레임’은 이러한 접근을 방해한다. 여성혐오적 사회구조 문제를 지적하는데도 젠더갈등만 강조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것은 위험하고, 젠더갈등을 경계해야 한다는 기사가 인용 보도 형태로 쏟아졌다. 지금껏 많은 언론은 성폭력 가해자를 사이코패스나 소아기호증 등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 격리해야 할 존재처럼 묘사해왔다. 이런 묘사는 성폭력 범죄는 특이하고 낯선 사람만이 일으킨다는 왜곡된 관념을 재생산한다. 근본적으로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바꿔야 하지만, 젠더갈등 프레임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과 사회적 갈등 등 또다른 대립을 걱정할 뿐 제대로 된 논의를 어렵게 한다. 일부 언론은 여성혐오 문제를 일부 20대들의 인터넷 싸움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갈등 자체는 크게 부각해 불필요한 담론을 확대재생산한다. 납작해진 공론장 위에서 성범죄 예방에 필요한 논의들이 바로 서기는 어렵다.

그런 만큼, 문제적 프레임에 맞선 한겨레 기사들은 적절한 제목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인하대 피해자 ‘행실’이 왜 나오냐…2차 가해 분노한 여성들'(7월19일) 기사는 ‘피해자 책임 프레임’을 꼬집는다. ‘2022년 인하대에서도 ‘여자라서 죽었다’’는 <한겨레21> 기사는 다시 성폭력의 구조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다. 여러 방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들을 갈망하며 기대한다. 더 많이, 적극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윤리적이면서도 정확한 지적, 내가 기억하는 한겨레는 그렇게 한국 사회의 성범죄 담론을 바꿔왔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8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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