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법으로만 풀 수 없는 난제들

2022. 7. 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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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인구가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매우 우울한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영국 런던의 기온이 1659년 이래 36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한다. 아마 이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 전망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것인가? 현재 상황의 전개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있는 것일까?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이나 현상의 원인 탐색과 해결 방안은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각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외부 환경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시스템적 사고(system thinking)’라고 부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만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논리와 방식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 하청노동자, 탈탄소화, 반도체 …
원인과 결과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대안 찾는 사례 수두룩
새의 눈으로 숲 봐야 망치지 않아

선데이 칼럼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성은 그냥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 구조를 만들어 내고 전문화를 추구한다. 직업의 종류가 증가하는 것이나 제품의 부품 개수가 늘어나는 것(자전거→자동차→항공기→우주선), 애플 아이폰 생산에 400개 이상의 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 90년 이후 현재 전 세계 50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회의에 불러야 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는 것 등이 그 예다.

복잡한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쉽지 않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간단한 문제는 최적 사례의 경험을 곧바로 적용하면 된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같은 문제처럼 보여도 과거에 비해 맥락이 다르거나 문제의 속성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커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관성 때문에 이 방식은 가장 많이 선호된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추가적인 조사나 분석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는 해법이 쉽지 않다. 많은 경우에 전문 지식의 도움이 필요하며 몇몇 좋은 사례 등을 통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정부나 민간 조직에서 많이 활용되는 전문가-위원회 방식이다. 하지만 각 영역 간 칸막이 사고방식을 극복하거나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신인의 참여를 독려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불확실하거나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는, 이른바 복잡계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구성 요소와 비선형 관계 때문에 인과 관계 규명이 어렵다. 문제와 맥락(배경)을 분리해 내기도 어려워서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치 않으며 어떤 정보나 지식이 필요한지 알기도 어렵다. 다행히 해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유효 기간이 제한적이다. 유능한 관료조직이 변화의 장애물로, 추격형 성장 방식이 혁신기반 성장의 장애물로 변한다. 극도의 불확실성으로 미래 전망이 어려움에 따라 우선순위가 적절한지 알기 어렵다. 확실한 해법이 없는 이 상황에서는 지나친 단순화 오류를 피하고 새롭게 나타나는 사례들을 잘 관찰하고 학습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며 정책은 유연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보면 시스템의 경직성은 증가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문제가 현 정부의 문제로 그대로 반복된다. 기후변화, 고령화, 양극화 등 모두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이제는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된 시기이다. 진짜 어려운 구조적 문제만 남은 상황이지만 지금은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데 시간과 자원을 너무나 많이 낭비하고 있다. 국가 어젠다에 미래는 없다.

‘매슬로의 망치’로 알려진 도구의 법칙은 자신이 익숙한 전문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인지 편향을 지칭하는 말이다. 1966년에 아브라함 매슬로는 “만약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도구가 망치라면, 모든 것을 마치 못처럼 취급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귀를 열고 더 나은 대안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소명이라며 자기만 옳다고 우긴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어지는 단순한 상황이라면 법전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들은 이미 해결된 지 오래다.

하청노동자의 삶의 절규를 단순히 법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한다. 그 사안에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지난한 역사, 노동의 이중 구조, 전통 제조업의 주기적 불황 등이 모두 섞여 있는 데 그냥 불법이라고 낙인 찍는다. 러시아의 가스 수출 제한 압박으로 인한 탈탄소화 지연과 기후변화 심각화로 인한 탈탄소화 가속 경향이 정면충돌하여 미래가 불확실한데 원자력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삼성과 SK는 국내에 반도체 전문학과가 없어서, 세제 혜택이 없어서, 공장 부지가 없어서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인가? 미국에 삼성반도체 공장이 완공되고 나면 현재의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대안을 제시한다.

상황이 바뀌어 과거의 해법이 바로 현재 상황의 원인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고민 없이 과거 정책으로 회귀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새의 눈으로 숲을 본다면 단순하게 망치만을 고집해 미래를 망치는 일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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