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싸가지'는 합리적 토론 가로막는 치트키"

구자홍 기자 입력 2022. 8.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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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배틀 '나국대' 1, 2기 임승호·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박민영 “이준석 대표가 험난한 투사의 길 걷고 있지만…”
●임승호 “당 대변인이 왜 그런 얘기 하느냐고 비판해서야”

7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1층에서 진행된 도어스테핑에서 "전 정권이 지명한 장관들 중 이보다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라.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민주당도 그러지 않았느냐'는 (윤 대통령의) 대답은 민주당의 입을 막을 논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뽑아준 거 아니냐'는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은 "여당 대변인, 대통령의 '내로남불' 인사 비판"으로 비쳐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의 인사에 여당 대변인이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6월 15일 임승호 전 대변인은 "젊은 정치인을 향한 '싸가지 없다'는 공격이 정치 혁신을 막는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요지의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했다.

두 전·현직 대변인을 두고 '할 말을 속 시원히 한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당정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나 홀로 옳은 소리를 한다'며 불편해하는 시각도 공존한다.

두 사람은 '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나국대)를 거쳐 '선발'된 케이스다. 당대표가 '임명'한 대변인이 아니라 실력과 능력을 검증받아 '대변인'에 올랐다는 점에서 임명 대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언의 수위와 범위가 자유롭다. 두 사람은 바른정당 '청년 대변인'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당시에는 박 대변인이 1기, 임 대변인이 2기였다.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왼쪽). 임승호 전 국민의힘 대변인. [동아DB]

‘해야 할 말' '하고픈 말' 하는 당찬 청년들

패기와 열정으로 '해야 할 말' '하고픈 말'을 속 시원히 쏟아내는 당찬 청년 정치인 임승호, 박민영 두 전·현직 대변인과 함께 한국 정치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말'과 '글'로 국민에게 당의 뜻을 신속하게 전달한 두 사람이 속사포처럼 얘기를 쏟아내는 바람에 2시간 대담 분량이 3만8532자, 200자 원고지 225매에 달했다. 수많은 얘기 가운데 두 대변인이 한국 정치 발전과 정당 개혁을 위해 꼭 말하고 싶어 한 핵심 메시지를 발췌했다.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뽑아준 거 아니냐'는 박민영 대변인의 페이스북 글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민영 여당이나 정부를 비판하려 쓴 글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국민을 위해 더 잘하자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이다. '건전한 비판에 의한 자정능력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 대기만성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글 쓴 취지를 자세히 밝혔는데 그 내용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임승호 우리 같은 경우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용인하기 힘든 시점이 됐을 때 개인적 생각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 대변인이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런 얘기는 국민 지지를 받지 못했던 과거의 숨 막히는 의사결정 구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편을 무조건 편들려 비합리적 궤변을 늘어놓으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난다. 특히 중도층에 더더욱 그렇다.

여당 대변인이 쓴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당 운영이 민주적으로 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임승호 정당 전체가 혁신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나국대'라는 오디션 방식으로 대변인단을 선출한 것은 과거처럼 특정인이 내리꽂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주요 당직자가 선출되고 선발되도록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제도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박민영 ‘나국대'가 우리 정당 운영에서 굉장히 새로운 시도인 것은 맞다. 혁신적 당 운영을 위한 첫발을 내디딘 정도라고 할 수 있다.거대 양당의 경우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본회의 표결 때 일사불란하게 '당론 투표'를 하지 않나. 그런데 서구 자유주의 정당은 의원 개개인이 의제나 정책, 안건에 따라 소신껏 투표한다. 우리 정당 운영이 일사불란한 것은 장점이지만, 개개인의 창의성에 기반한 다양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준석, 정당 개혁에 굉장한 문제의식

대화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얘기로 흘렀다. 대담은 윤리위 개최 직전에 진행됐는데, 윤리위는 7월 8일 새벽 이 대표에 대해 '당원권 6개월 정지' 결정을 내렸다.

대선 때 이준석 대표의 행동으로 봤을 때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겠느냐고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있다.

임승호 이 대표가 국정을 뒷받침하고 싶어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 인과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혁신위 구성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이 대표에 대한 집중 공격이 이뤄졌다.

박민영 이 대표는 정당 개혁에 굉장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조금 급진적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맞는다. 새로운 길을 내고 아스팔트를 깔아주지 않으면, 누군가 투사가 돼 앞서 나가지 않으면 뒷사람들이 편하게 따라올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에서의 임요환이냐, 이용호냐에 비유할 수 있다. 최초와 최고가 있다고 했을 때 (이 대표는) 임요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만들어놓은 플랫폼에 어느 정도 편승한 입장에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며 앞장서 험난한 투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 대표를 비판할 수만은 없다. 이 대표의 투사적 모습은 존중하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정당 개혁에 대한 이 대표의 절박함과 국민이 체감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정당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지만 국민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민생과 경제다. 국민이 중시하는 관심사를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지 못하면 민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

시대적 담론 이해하고, 해법 제시해야

국민의힘이 지난해 이준석 대표 선출로 다소 급격한 변화를 선보였다면, 민주당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 이후 86세대에서 97세대로 세대교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박민영 86세대와 97세대는 민주화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어 담론이 중복된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 아저씨 나이가 10년 젊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86세대가 헤게모니를 강하게 휘어잡고 있지 않은 국민의힘이 앞으로 개혁될 가능성은 훨씬 크다. 20대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을 잠시 지도부에 세웠다고 세대교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10년, 20년 젊은 사람을 앞장세우는 것이 세대교체가 아니다.

임승호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50대, 60대라고 하더라도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나 젠더 갈등 같은 시대적 담론을 잘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청년 정치인이든 중진 의원이든 양당 모두 나이와 상관없이 그러한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박민영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중요하다. 기존의 청년 정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래가 아니라 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선출과 선발이 아닌 임명으로 청년 정치인이 발탁되다 보니 세대 담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임명권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모순적 구조에 놓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국대라는 '선발' 방식을 도입한 것은 청년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물꼬를 튼 의미가 있다. 18세부터 39세까지 청년 당원 비율이 30% 이상 차지하게 된 것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86세대는 강력한 응집력를 발휘했다. MZ세대는 어떤가.

임승호 86세대가 오프라인 중심 세대라면 MZ세대는 온라인 중심 세대다, SNS를 통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언론 환경이 조성돼 있다. 과거와 같은 계파 중심으로 정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박민영 MZ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파편화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성이 강해 86세대처럼 똘똘 뭉쳐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개인기로 승부를 겨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조직화는 덜 돼 있을지 모르지만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훨씬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피력할 수 있다. 파편화된 의견을 어떻게 하나로 잘 모을 것이냐가 1차 과제라면, MZ세대가 중시하는 담론을 어떻게 정치권에서 적극 수용하도록 할 것이냐가 2차 과제다.

MZ세대라고 2030을 하나로 묶어놨지만, 그 안을 보면 젠더 갈등이 있다. 대선 때도 지방선거 때도 남녀에 따라 여야 지지율이 갈렸다.

박민영 젠더 갈등의 발단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 극단적 사회운동인 래디컬 페미니즘을 민주당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때부터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고 '유죄 추정의 원칙'에 기반한 법제를 도입했다. 젊은 남성을 적대시하는 민주당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나. 민주당은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일반화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2030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을 담론화해 국민의힘 쪽으로 이끈 게 이준석 대표다. 남성들은 권리가 박탈된 만큼 의무가 경감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고, 여성들은 성평등 시대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권리가 충분히 신장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일반화와 단순화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이 젠더 갈등 해소 방법이다.

합리적 토론 문화 걸림돌 '싸가지론'

임승호 먼저 화합을 얘기하는 쪽이 이길 거라고 본다. 20대 여성이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한 게 아닌 것처럼, 국민의힘을 지지한 20대 남성들도 최근 국민의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상대 젠더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의 해소다. 청년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본질적 삶의 문제는 젠더 갈등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다. 젠더 갈등이 노동과 연금 등 여러 중요한 이슈를 가리고 있다. 젠더 갈등은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다. 상대를 향해 화합을 먼저 얘기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쪽에 더 많은 지지가 모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젠더 갈등 못지않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세대 갈등도 첨예하다. 정치권에서 툭하면 터져 나오는 '싸가지' 논쟁이 대표적인데.

임승호 예의와 싸가지는 다르다. 나라마다 있는 문화와 관습에 따른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싸가지'는 일종의 치트키 같은 것이다. 반박할 게 마땅치 않을 때 들고나온다. 옳고 그름에 대해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선이자 선배로서 조언한다며 '싸가지'를 들고 나오면 제대로 된 토론과 협의를 할 수가 없다. 합리적 토론 문화를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가 '싸가지론'이다.

박민영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나 운영 과정이 모두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합리적 시스템을 시작하는 단계다. 그런 점에서 개혁과 혁신으로 당대표와 주요 당직에 새로운 가치와 담론을 이해하는 이들이 많이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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