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벗어난 책임으로부터 공무원을 해방시키자

한겨레 입력 2022. 8. 3. 19:35 수정 2022. 8. 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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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공직자의 책임은 막중하다.

과장이 있는 추정이지만, 공무원은 건축물이 붕괴할 수 있음을 미리 감지하고 그 자리에서 온 힘으로 붕괴를 막아야 하는 게 우리나라 정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 그 실마리를 제공한 책임자를 가려내야 하는 게 이들 전문직 공무원인데, 막상 이들은 사고가 났을 때 조사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자로 등장한다.

그래야 공무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소신과 능력을 바탕으로 적극 행정과 탄력성 있는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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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정면 | 사람터건축사사무소㈜ 대표

어느 나라든 공직자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책임으로부터 ‘해방’이라는 명제가 어찌 가능한가? 이는 그 책임이 지닌 한계와 범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필자는 40년 동안 직간접으로 건축 허가에 관여해왔고, 지금도 그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998년부터 10년은 미국에서 같은 업무에 종사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두 나라 행정 절차를 비교할 수 있었다. 또 두 차례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며 상식에 입각한 정책을 말하는 여러 전문가와 공직자들 의견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불가사의한 일이 건축직 공무원이 건축물의 적법성은 물론, 구조상의 안전과 방재 성능, 단열 성능 등을 모두 확인하고 승인한다는 점이다. 작은 규모의 건축물도 두세명이 1개월 정도는 작업해야 하는 일인데, 공무원 한 사람이 15일 안에 해당 도면과 서류를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해당 분야 전문 집단에 ‘협의’를 돌려 그들의 의견을 듣긴 한다. 하지만 이런 합의를 통한 결론도 준비한 도면·서류가 관계 법규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것에 그친다는 게 큰 문제이다. 관계 법규에 적합하면 그 건물은 안전한가? 또 그들은 수많은 법규 조문을 옆에 두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설계자보다 더 완벽하게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모든 법규 조문은 그 의미와 목적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기술하고 있는가?

소방 관계자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간혹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말하며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 입장에서는 이 경우가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 허가 과정에서 경험하는 매우 바람직한 반응이고, 설계자로서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는 설계자로서 ‘책임’이며 ‘의무’인 사용자 안전을 위한 내용이어서다.

언론과 국민은 어떤 종류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그 탓을 공무원에게 돌린다. ‘허가권자’라는 게 그 이유이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는 왜 사고 운전자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한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가? 그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무엇 때문에 건축이나 건설과 관련이 있는 공무원들은 이런 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과장이 있는 추정이지만, 공무원은 건축물이 붕괴할 수 있음을 미리 감지하고 그 자리에서 온 힘으로 붕괴를 막아야 하는 게 우리나라 정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 그 실마리를 제공한 책임자를 가려내야 하는 게 이들 전문직 공무원인데, 막상 이들은 사고가 났을 때 조사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자로 등장한다. 수사 기관이 이와 관련해 알고 있는, 아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법률’에 정한 것뿐이다. 사실 이 법률은 모든 공사 과정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지 않으며 모든 건축 재료나 공법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조사는 언제나 법률 논리에 빠질 뿐이고, 그를 바탕으로 의미 없는 법률만 더 만들어지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실제 책임을 가져야 할 전문가들이 책임을 갖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 업무는 그 절차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일로 한정해야 한다. 공무원은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소신과 능력을 바탕으로 적극 행정과 탄력성 있는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일선 공무원들이 더는 이 말도 안 되는 제도의 희생자나 순교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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