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찬밥 더운밥 안 가린다" 펀딩으로 큰 플랫폼 기업 '위기'

김예린 2022. 8.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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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확장 위주 스타트업들 펀딩 골머리
CB·BW 등 창업자 불리한 투자 방식도 'OK'
"펀딩 없이 흑자 내는 기업들 눈여겨 봐야"

[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펀딩(투자금 유치)으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내실 다지기가 아니라 마케팅 및 인수합병(M&A)으로 외형만 불려 온 스타트업의 경우, VC들의 까다로워진 투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밸류를 대폭 낮춰 투자받거나 이조차 안 돼 불리한 조건을 내걸고 펀딩에 나서는 상황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단기차입·CB·BW발행까지 고려

IB 업계에 따르면, 메쉬코리아는 360억원의 대출금 상환 및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은 물론 부채 상환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리파이낸싱까지 어떤 형태든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면 받아들인다는 분위기다. 왓챠 역시 지분(구주) 매각과 M&A를 검토하는 한편 수십억원 규모 단기성 자금 조달을 위해서 투자자들을 모집 중인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리얼트립의 경우는 지난 4월부터 1000억원 규모 투자 유치를 추진해 지난 6월 VIG파트너스의 크레딧 투자 부문인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으로부터 500억원 규모를 투자받았다. 혹한기 적지 않은 규모로 투자를 유치한 점은 유의미하지만, 마이리얼트립이 발행한 BW를 VAC가 인수하는 메자닌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CB와 BW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불리한 형태여서 펀딩이 어려운 상황에서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채를 조달하는 방식이기에 이자를 내거나 상환해야 하므로 재정적으로 취약해진다.

CB의 경우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 가능한 방식으로, 상환기일 회사 상황이 좋아지면 주식으로 전환하되 반대일 경우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상환해야 한다. BW의 경우는 사채 원금에 더해 신주까지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되다 보니, 돈은 돈대로 갚고 지분도 희석돼 가장 불리한 방식으로 꼽힌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이 투자받을 때는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전환우선주(CPS) 방식을 쓰지만, RCPS의 경우 사실상 상환권은 무의미해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전환권을 노린다고 보면 된다”며 “이런 이유로 최근 VC들은 CPS 방식도 많이 활용하는데, RCPS와 CPS 모두 전제는 투자한 회사의 지분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고 전했다. 이어 “CB와 BW는 투자자 입장에서 봤을 때 피투자기업이 돈은 필요해 보이지만 성장성은 확신할 수 없어 보다 안정적으로 회수하고자 택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울며 겨자 먹기’ 투자유치 이유는

불리한 조건 감수하면서까지 펀딩에 나서야 하는 배경에는 펀딩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외형을 확장했던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정해진 평가가 깔려 있다. 커머스는 물론 배달 및 배달대행, 여행, OTT, 등 각 분야 플랫폼마다 고객 유치와 거래액 규모 확대를 위해 프로모션과 광고 등 마케팅에 과한 비용을 투입해왔다. 그 결과 마켓셰어(MS)와 거래액이 늘면서 매출 규모가 확대됐고, 이를 근거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며 유니콘 및 예비 유니콘 타이틀을 단 플랫폼들이 수두룩 생겨났다.

그러나 올 초 금리 인상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유동성이 말라가자 투자시장 분위기가 급랭하기 시작했다. 연초 본격화한 옥석 가리기가 3분기에 이르러 실제 투자 유무에 영향을 미치면서 플랫폼 기업 자체의 밸류에이션 거품이 꺼지고 밸류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아예 업계 독보적인 1등이거나 내실 다지며 영업이익 흑자를 내는 기업들 정도만 투자를 받고 있고 이마저도 가까스로 이뤄지는 상황이다. 단순 몸집 부풀리기에 한창이던 플랫폼마다 가차 없이 수익성이라는 도마 위에 오른 것. BW와 CB 등 펀딩을 위해 어떤 형태와 조건도 감수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일부 스타트업 역시 투자 조건이 악화하자 번번이 투자 미루는 모양새다. 펀딩 없이 자체 현금 흐름으로 생존해나가는 기업들이 오히려 조용한 상황으로, 이들의 성장세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물류업계 스타트업 대표는 “애초에 협의했던 투자 조건이 악화하고 VC 요구 사항이 늘었다. 기업가치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워 지분 희석보단 투자유치를 미루고 아껴쓰자는 분위기”라며 “지금 펀딩에 나서는 곳들은 유동성 위기에 놓인 곳으로 사업구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규 주주 유치에 실패해 기존 주주들이 떠안는 사례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기존 주주들만 후속 투자에 참여하는 이유는 기업이 너무 유망해 신규 투자자에게는 투자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경우, 도저히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기 힘들어 기존 주주들이 재투자하는 것 등 두가지가 꼽힌다.

그러나 최근처럼 펀딩 기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상황에서는 후자일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토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토스의 투자에 참여한 리스트를 보면 광주은행은 SI,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이고 재무적투자자(FI)들의 경우 대부분 기존주주들이 참여한 형태로 사실상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펀딩에 실패해 매각설에 휩싸이는 기업이 늘면서 법무법인도 스타트업 투자보단 회생 관련 자문을 강화하는 추세다. 조원희 변호사는 “스타트업들의 투자계약서 관련 질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투자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회생절차 준비 및 채권 상환 등 절차들에 대해 자문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예린 (yeap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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