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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설] 동맹 강화 외치며 펠로시 안 만난 윤 대통령

입력 2022. 08. 05. 00:10 수정 2022. 08. 05.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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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한국 국회 정부 관계자는 영접하지 않았다. [연합]


휴가 이유로 통화만 한 건 납득 안 돼


중국 반발 의식한 눈치보기 아닌가


엊그제 서울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동아시아 순방은 의례적 방문 일정이 아니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강력 반발을 무릅쓰고 대만을 방문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조한 뒤 곧바로 한국과 일본 방문길에 올라 동맹국과의 결속을 다졌다. 대중 견제와 대북 압박은 물론 반도체 협력 등 한국의 경제적 이해와 직결되는 발언을 했다. 미국의 외교 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된 외교 일정인 셈이다. 대만에 앞서 찾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모든 방문국에서 카운터파트인 국회의장은 물론 국가 정상과 만나 국제정세와 경제안보 현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대면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예외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외쳐 온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펠로시 의장의 공항 도착에 한국 국회와 정부 관계자가 아무도 영접하러 가지 않은 사실까지 보태져 외교 결례 논란까지 일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윤 대통령의 휴가다. “일 같은 건 덜 하시고 오랜만에 푹 쉬고 있는 상태”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처럼 대통령도 휴가를 방해받지 않고 쉴 권리가 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부부동반으로 연극을 관람했다. 하지만 휴가를 포함한 대통령의 모든 일정은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돼야 한다. 대통령의 휴식과 주요 외빈과의 외교 일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전화 통화를 마련한 것은 아무런 일정을 갖지 않기로 했던 당초 결정이 부적절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왕 휴가 일정을 쪼개기로 했다면 왜 대면 회동을 하지 않고 전화 통화에 머물렀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실의 미흡한 응대는 펠로시 방한이 미·중 갈등의 상징인 대만 방문 직후에 이뤄지는 바람에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란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곧 중국을 방문하기로 한 마당에 중국과 껄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 만일 그랬다면 당당한 외교를 표방해 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에 맞지 않을뿐더러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외교 실책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한국을 찾은 미국 의전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통령 예방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다. 설령 중국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이다. 자칫 한·미 동맹에 묘한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쌓이면 윤석열 정부도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점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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