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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식량 안보 초비상]팬데믹·기상이변에 전쟁 겹쳐, 지구촌 밥상 물가 폭등..식량 무기화 우려 커져

김나윤 입력 2022. 08. 06. 00:01 수정 2022. 08. 0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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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접경 지역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러시아군의 집중 폭격에 불타고 있는 밀밭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식량 가격이 연일 요동치면서 글로벌 식량 수급도 심각한 위기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종 원자재 수요가 늘면서 수급 불균형 현상이 빚어졌고 여기에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지구촌 밥상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먹거리 확보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더욱이 폭염과 가뭄·태풍 등 최근의 잇단 기상이변으로 글로벌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미국·유럽과 러시아의 갈등 등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등 주변 여건 또한 심상찮은 상황이다.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에 이어 이젠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 현안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불안정한 국제 식량 시장은 세계 각국의 식량 안보에도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은 줄고 가격은 크게 오르면서 각 나라들도 식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특히 최근의 글로벌 식량난이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자국의 식량 안보 사수를 위한 치열한 물밑 경쟁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대로 가다가는 전 지구적으로 코로나 후유증 못지않은 식량 안보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작년 1억9300만명 ‘심각한 식량 불안정’

식량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전통적 군사동맹으로 맺어진 세계 안보 지형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지난달 14일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인도 등과 지구촌 식량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각국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만든 ‘I2U2’라는 국가 협력체까지 결성한 이들 국가는 이날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1순위 의제로 식량 안보를 택해 주목을 모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외교안보 이슈가 아닌 글로벌 식량 문제를 첫 논의 대상으로 삼은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최근의 식량 위기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I2U2는 회담 후 성명을 통해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의 식량 공급 안정화를 위해 인도 전역에 식량 공원(food park)을 조성하고 물 소비를 최소화해 식량 생산량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 20개국(G20) 회원국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기후 포럼(MEF) 화상 정상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당시 백악관은 “기후변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장기적인 식량 안보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며 식량 공급 안정화를 위한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했다.

이처럼 전 세계가 식량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지구촌 식량 안보 이슈가 기존 국제 질서까지 흔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난 5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2022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심각한 식량 불안정’ 단계에 접어든 인구는 53개국 1억9300만 명으로 집계됐다. 더 나아가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수급난까지 더해지면서 1억8000만 명가량이 추가로 식량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로 식료품 부족과 이로 인한 물가 폭등이 심화되고 있는 스리랑카의 경우 시위가 잇따르고 정국이 혼돈에 빠지면서 결국 정권이 축출되기도 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중 하나인 이집트는 올해 들어 밀 수급에 난항을 겪게 되면서 국내 밀 가격이 2월 초에 비해 60% 넘게 급등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은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페루·스리랑카 등에서 발생한 식량 위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최근의 식량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우려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분배의 불균형이다. 각국의 잇단 봉쇄 정책과 물류 시스템 마비 등으로 글로벌 수급망이 깨지면서 지구촌 전체가 식량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릿고개라고 불리던 1960~70년대의 경우 농업 생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주요 곡물량 자체가 부족해 문제가 생겼다면 최근의 글로벌 식량 위기는 물류 대란 등으로 식량에 대한 접근 장벽이 높아지면서 발생한 것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더욱이 이번엔 인플레이션 등 적잖은 경제적 후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식량 안보 위기 국면이라고 진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량 대외 의존도 높은 중견국들 위태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런 상황은 이미 국제 곡물 시장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 등 특정 국가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면서 식량 쏠림 현상이 단시간 내 가속화됐다. 세계화 흐름 속에서 무역 개방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주요 국가들도 식량 자급 노력 대신 대외 교역을 통해 식량 확보에 나서는 방식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7~2008년 식량 위기 당시 전 세계가 지금과 같은 고물가 압박을 경험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국제 식량 무역 체제를 재정비하고 각국의 식량 비축 여력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하지만 당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안정화되면서 식량 위기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중장기 대책을 제대로 논의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식량 안보 위기가 경제 규모가 작은 신흥 개발국가나 식량 대외 의존도가 높은 중견국가들부터 위태롭게 한다는 점도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국민 소득의 대부분이 먹는 데 쓰이는 저개발국가의 경우 미국·유럽 등 선진국보다 식량 부족에 따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른바 ‘식량 안보의 불평등성’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와 관련, 영국 가디언은 지난 1일(현지시간) 세계은행(WB)의 식량 안보 보고서를 인용해 레바논의 지난 6월 식량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332%나 급등했다고 전했다.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로 곡물 저장 및 유통 시스템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량 수급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레바논 외에 짐바브웨(255%)와 베네수엘라(155%)·튀르키예(94%)·이란(86%) 등도 식량 고물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식량 가격 상승률이 5% 이상인 저소득 국가는 93.8%로 사실상 대부분의 신흥국이 포함됐다. 반면 고소득 국가 중엔 78.6%만 가격 상승률 5%를 넘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런 가운데 주요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는 전쟁 5개월여 만에 곡물 수출을 재개했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주요 곡물을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이 지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항에서 첫 출항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러시아가 흑해 항로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합의하면서다. 하지만 합의 다음날 곧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항구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갈등이 끊이지 않아 곡물 수출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먹거리 수출 제한, 국제관계 재편 조짐도

국제사회는 글로벌 식량 안보 위기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제 농업시장 조사 업체인 우크라그로컨설트는 우크라이나가 이번에 합의한 3개 수출 항구를 8월부터 연말까지 최대한 가동해도 곡물 교역량을 전쟁 이전 수준(2500만t)까지 끌어올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롭 보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서방의 러시아 추가 제재 등 국제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식량 시장 안정화를 논의하기엔 이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더욱이 지구촌 식량 위기가 앞으로 2~3년 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면서 일부 식료품 수출국들도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선제적으로 식료품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에 나서면서다. 지난 4월 인도네시아가 식용유 원료 물질인 팜유 수출을 전격 중단하기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식량보호주의 움직임이 국제 통상 질서의 변화와 함께 먹거리를 둘러싼 새로운 국제관계 재편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오랫동안 정치·외교·안보 중심으로 짜인 국제 네트워크가 2010년 이후 반도체와 에너지 위기 앞에서 흔들리게 되면서 기존의 안보 동맹 노선에 속하던 국가들도 점차 자국의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기 시작했다”며 “이젠 밑바닥 경제라고 할 수 있는 식량 문제마저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향후 식량 이슈가 정치 무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반면 일각에선 작금의 식량 안보 위기가 오히려 기존의 동맹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강대국들의 기싸움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과 에너지가 상대방에 대한 주요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이라며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식량 안보 이슈가 신냉전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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