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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은 잊어라..형형색색으로 단장한 홋카이도의 여름

김지윤 기자 입력 2022. 08. 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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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라벤더를 비롯해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한 홋카이도의 여름

흰 눈밭에서 “오겐키데스카”를 외치던 여주인공의 강렬한 외침 때문일까.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홋카이도 하면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설국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수북하게 쌓인 눈 아래 숨겨져 있던 홋카이도의 진짜 매력을 찾아내는 데 여름만큼 좋은 계절은 없다.

일본 북쪽에 위치해 한여름에도 평균 30도를 넘지 않는 비교적 선선한 날씨,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목가적 풍경, 보랏빛 라벤더를 비롯해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한 이곳의 여름은 일본의 여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일본인들 역시 최고의 휴양지로 홋카이도를 꼽는 이유다.

지난 7월, 팬데믹 이후 끊겼던 인천~홋카이도의 하늘길이 열렸다. 현재 일본 정부는 안전을 위해 인솔자를 포함한 단체여행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하나투어 등 국내 여행사들은 홋카이도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는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홋카이도 관광청 역시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곳곳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방역 청소를 마쳤다는 표시인 안심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위생 시스템에 각별하게 신경 쓰는 분위기다.

세련됨보다는 투박함으로, 성급함보다는 느림의 미학으로 대자연의 여유를 보여주는 홋카이도 여행만큼 엔데믹에 어울리는 여정이 또 있을까. JR홋카이도 노선을 따라 달린 3박4일간의 시간을 지면에 옮겼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찰나의 선물이다.

해질 무렵의 오타루 운하
과거를 품은 도시, 오타루

신치토세공항에서 JR 쾌속열차로 1시간20분쯤 달리면 오타루역이 나온다. 유리 램프로 장식된 화려함과 아늑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어쩌면 오타루가 지나온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 오타루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무역 항구도시였다. 1914년부터 9년에 걸쳐 완성된 운하 덕에 ‘북부의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번창했고 유동인구 또한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운하의 이용이 줄어들고, 삿포로의 도시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의 운명 역시 달라졌다.

쇠퇴하는 산업 앞에 오타루 사람들은 공존을 택했다. 쓰임을 다한 운하를 일부 매립해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고, 짐을 싣고 내리는 나룻배 역시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으로 개조했다. 늘어섰던 붉은 벽돌의 창고들도 카페 및 레스토랑 등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과거의 화려함을 현재의 낭만으로 대체시킨 셈이다.

오타루 중심 거리 풍경

흘러간 시간을 품은 오타루의 중심 거리에는 여전히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그중 ‘기타이치 유리 공방’은 ‘아름답다’는 의미의 감탄사가 각국의 언어로 쏟아지는 곳이다. 초대 사장이던 아사하라 히사키치는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던 1900년대 초반 생필품이던 석유램프로 수공예 붐을 일으켰다. 특히 1983년 문을 연 3호점은 말린 청어 등 생선의 가공품을 보관하던 창고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바다까지 연결된 통로가 그대로 보존돼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4만여개의 오르골이 전시·판매 중인 오르골당 본점
오르골당 본점

거리 끝자락에 자리한 ‘오르골당 본점’은 이 도시를 찾은 이들이 모두 집결하는 종착지다. 1912년에 세워진 이곳은 목재 골격의 벽돌식 건물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아치형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에 반사된 오르골들이 ‘보는’ 즐거움을, 초밥 모양을 본뜬 오르골을 비롯해 4만여개의 오르골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듣는’ 유쾌함을 선사한다. 운이 좋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의 오르골 모습도 직관할 수 있다. 다만 팬데믹 이후 대다수의 상점이 오후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쇼핑이 목적이라면 발길을 재촉해야 한다.

고즈넉한 낮과 달리 오타루의 밤은 화려하다. 어둠이 스며들 때면 운하 주변의 60여개 가스 가로등이 불을 밝힌다. 물에 반사된 불빛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듯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텐구산 전망대에서는 오타루의 야경을 ‘큰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 앞에 절로 감탄사가 쏟아지는 이곳은 홋카이도의 3대 야경 포인트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나무 덱과 벤치를 추가로 설치해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을 마련했다. 기존 포토존보다 더욱 시원하게 시내 전경과 오타루항을 배경으로 담을 수 있다.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이용되는 슬로프도 집라인, 열기구 등 다양한 체험 공간으로 활약 중이다.

Tip. 오타루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한 시내와 달리 텐구산 전망대까지는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텐구산 전망대로 향하는 9번 버스는 오타루역 앞에서 탈 수 있다. 1시간에 2~3편씩 운행하며 가격은 240엔이다.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후라노

섬 중앙부에 자리 잡아 ‘홋카이도의 배꼽’이라 불리는 후라노는 이번 여름에도 변함없이 보랏빛으로 채색됐다. ‘물감’의 정체는 라벤더다. 이곳 주민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달력 같은 존재다.

흔하게 넘실대는 라벤더 물결에도 독보적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은 ‘팜 도미타’다. 이곳의 인기는 1976년 당시 전국에 배포된 일본의 국철(JR그룹의 전신) 달력에 사진이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사진작가들의 ‘출사’ 코스로 자리 잡으며 입소문을 타게 됐고, 드라마 <북쪽의 나라>를 통해 방송되며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팜 도미타는 약 15만㎡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로 조성됐다. 한눈에 가득 담기지 않아 두 번, 세 번 돌아봐야 하는 광활한 정면의 꽃밭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거대한 영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라벤더를 강조하기 위해 작은 소품마저 보라색으로 표현한 섬세함도 인상적이다. 꽃밭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의상, 정원을 누비는 스쿠터 등 숨겨진 보라를 찾아보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팬데믹 이후에는 라벤더로 만든 손 소독 스프레이가 새로운 기념품으로 추가됐다. 비누, 방향제, 티백 등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라벤더의 절정은 7월20일 즈음이다. 타이밍을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맨드라미, 수선화, 튤립, 금잔디, 작약 등 남은 꽃들이 계절마다 ‘컬러 파티’를 벌인다. 모든 공간을 둘러봤다면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맛볼 차례다. 단, 아이스크림이 매우 빠른 속도로 녹아 흘러내리는 만큼 ‘인증샷’을 원한다면 촬영 장소 물색이 선행돼야 한다.

아티스트들의 수공예품을 판매중인 닌구루 테라스

팜 도미타와 함께 둘러볼 또 다른 ‘핫플’은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 내 위치한 ‘닌구르 테라스’다. 일본어로 닌구르는 요정을 의미한다. 이름만큼이나 깜찍한 이 공간은 일본의 유명 극작가인 구라모토 소가 후라노의 자연을 테마로 기획했다고 한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내는 나무 향이 마스크를 뚫을 만큼 강렬하다. 총 15개의 오두막에는 요정이 마법을 부리고 간 듯 완성된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이 가득하다. 상점에 따라 공예품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 곳도 있다. 단, 작가들의 초상권과 작품의 저작권 문제로 실내 촬영은 불가하다. 크고 작은 전구들이 하나둘 켜지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닌구르 테라스는 늦은 시각일수록 빛을 발한다.

치즈 공방 ‘후라노 치즈 팩토리’ 또한 새롭게 떠오른 명소다. 유제품이 유명한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공간이다. 후라노산 양파를 넣어 반죽한 치즈부터 레드와인을 더한 체다 치즈까지 종류별 치즈를 맛볼 수 있다. 쇼핑 외에도 치즈 제작 공정을 견학하고, 치즈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보는 체험 코스가 준비됐다.

팜도미타에서 바라본 노로코 열차
Tip. 삿포로에서 팜 도미타를 갈 때는 JR홋카이도의 ‘후라노 라벤더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2021년 보라색으로 새롭게 래핑한 이 열차는 무선 와이파이와 라운지 등 편의시설이 추가됐다. 이후 후라노역에서 비에이역으로 향하는 노로코 열차로 환승하면 라벤더밭역에 닿을 수 있다. 노로코 열차와 라벤더밭역은 여름에만 운영하는 임시 코스이므로 사전에 잘 확인해야 한다.
팜 도미타와 ‘양대 꽃밭’으로 꼽히는 시키사이노오카
여기는 ‘사진 맛집’, 비에이

비에이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마을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1970년대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통해 유명해졌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낮은 구릉과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들,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해 형형색색의 헝겊 조각을 이어붙인 것 같은 패치워크 로드가 이곳의 명소다. 후라노와는 미묘하지만 다른 채도의 매력이 이곳을 채운다. 때때로 제주의 중산간 지방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유가 있다면 비에이역 앞에 자리한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라이딩’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채로운 꽃으로 가득한 시키사이노오카.

비에이의 대표 관광지인 ‘시키사이노오카’(사계채의 언덕)는 팜 도미타와 ‘양대 꽃밭’으로 꼽히는 곳이다. 팜 도미타가 라벤더에 힘을 실었다면 이곳은 라벤더를 비롯해 해바라기, 코스모스, 튤립 등 다채로운 꽃과 액티비티로 승부수를 던졌다.

15㏊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 조성된 정원에는 구역별로 형형색색의 꽃이 무지개처럼 피어 있다. 무엇보다 햇살에 반짝이는 원색의 선명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너른 면적을 실감케 하는 것은 다양한 탈것들이다. 15분마다 운행하는 트랙터 버스 외에도 직접 운전이 가능한 4인용 카트, 꽃밭을 지나 상쾌하게 바람을 가르며 자작나무 숲을 일주할 수 있는 버기 체험 등이 이곳에서의 기억을 특별하게 만든다.

푸른색을 띄는 연못, 아오이이케

비에이의 또 다른 명소는 ‘아오이이케’(푸른 연못)다. 숲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에메랄드빛의 색감과 정적이 감도는 매혹적인 분위기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연못은 인공과 자연이 빚어낸 우연의 결과물이다. 1988년 도카치다케 분화 때 화산 재해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건설된 제방에 물이 고이며 지금의 연못이 만들어졌다. 푸른 색감의 원료는 이곳 토양에 포함된 알루미늄 성분이다. 강물과 섞이면서 생성된 콜로이드 입자가 태양빛을 만나 파란 물로 변한다고 한다. 연못의 색은 날씨, 계절, 시간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고사한 낙엽송과 백엽송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 또한 각도에 따라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참고로 숲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연못이 가장 푸르다.

Tip. 일본 내 운전이 서툴다면 순환 관광버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후라노역과 비에이역에는 팜 도미타, 시키사이노오카, 아오이이케 등 주요 장소를 순환하는 관광버스가 운영 중이다. 노선과 시간은 비에이 홋카이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홋카이도 레일패스
기차 여행을 마음먹었다면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눈여겨봐도 좋겠다. 현금 승차와 비교해 평균 40%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중 ‘삿포로-후라노 에리어 패스’는 4일간 신치토세공항을 기점으로 삿포로 도심과 오타루, 후라노와 비에이, 아사히카와까지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이다. 구간 내 보통열차는 물론 특급열차 및 쾌속열차도 탑승(자유석 한정)이 가능하다. 가격은 성인 기준 9000엔.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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