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에 몸살 '창원 팽나무'.."수호신 보호해 주세요"

박기원 2022. 8.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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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팽나무


■ 창원 동부마을 팽나무, 드라마 방영 뒤 '인산인해'

경남 창원시 대산면 낙동강 변에는 500살 넘은 팽나무가 삽니다.

긴 시간 잦은 풍파를 이겨낸 이 나무는 보존 가치도 뛰어나 2015년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됐습니다.

주민들은 해마다 10월 초하루, 팽나무 아래에서 기원제를 지냅니다.

이 팽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동부마을 팽나무가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된 뒤 평일에도 하루 2천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고 있다.


팽나무 아래 동부마을에는 30여 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삽니다.

유명 드라마의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고요한 마을은 삽시간에 관광지로 변했습니다.

팽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추진되면서, 하루 4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농사용 도로는 주차장이 됐고, 평일에도 마을은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큰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자랑인 '수호신'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행여나 마을 '수호신'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활동가가 동부마을 팽나무의 뿌리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나무 전문가 "팽나무, 잎 마름 현상…뿌리 손상 우려"

취재진은 노거수 전문가 박정기 씨를 만났습니다.

동부마을 팽나무가 입소문을 타기 한참 이전인 2015년부터 이 나무를 발굴하고, 경남지역 보호수를 연구·보존해온 나무 전문가입니다.

팽나무가 드라마에 나온 뒤부터는 사흘 간격으로 팽나무를 찾아 건강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팽나무의 잎 마름 현상.


박 씨는 동부마을 팽나무 잎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넓게 펼쳐진 나뭇잎의 10% 정도가 누렇게 변했습니다.

팽나무 곳곳에는 잎이 아예 다 떨어져 비어버린 잔가지까지 보입니다.

박 씨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 잎이 누렇게 변하는 것은 뿌리가 물과 양분을 충분하게 흡수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창원시가 관광객 편의를 위해 팽나무 주변 풀을 다 베어냈는데, 이 같은 갑작스런 환경 변화가 팽나무의 생육 환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박 씨의 추정입니다.

관광객이 팽나무의 뿌리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모습.


현장에서 만난 식물 보호 분야 문화재수리 기술자는 사람의 발걸음에 의해 흙이 다져지는 이른바 '답압'을 우려합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을수록 그 압력으로 토양이 단단해지고, 수분이 흙으로 침투하지 못해 가지가 시들게 됩니다.

이렇게 토양이 단단해질 경우 나무의 생육 환경이 최대 5배까지 나빠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 기술자는 "답압이 발생하면 잔뿌리가 단락이 일어나 나무 전체의 영양분이나 수분을 빨아들이는 것에 장해를 받게 되는데, 그런 것은 장기적으로 피해가 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년 내 나무가 고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팽나무를 찾은 많은 관광객이 새로 돋아난 뿌리 '개척근'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습니다.

길게 뻗어 나간 뿌리를 밟지 못하도록 매트를 깔아 두었지만, 이 관람 동선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관람 동선을 따라 매트를 깔아놓은 모습.


전문가들은 창원시의 관리 문제도 지적합니다.

팽나무가 유명세를 타자 창원시는 주변에 임시 홍보관을 만들고 창원의 관광지도와 특산품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팽나무 뿌리에 올라서는 것을 제지하거나, 관람 동선을 통제하는 인원은 없습니다.

나무 보호를 위해 올라가지 말 것을 경고하는 최소한의 표지판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문화재청, 30분 조사 뒤 "관광객 훼손, 사실 아니야"

민원이 잇따르자 창원시와 문화재청은 지난 3일 현장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런 뒤 조사 당일 "관광객에 의한 나무 훼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잎이 마르는 현상은 지난해에도 있었다는 주민 진술이 있었고, 사람의 발에 의한 압력 '답압' 피해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문화재청은 훼손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팽나무 주변에 보호 울타리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또,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진딧물 등 병충해를 없애기 위한 방제도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경남 창원시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하지만 전문가들의 우려는 여전합니다.

이날 창원시와 두 기관이 팽나무 아래에서 검증을 벌인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입니다.

팽나무의 생육 상태와 훼손 여부를 면밀히 검증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라는 겁니다.

당시 문화재청의 검증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박정기 씨는 "토양 경도계를 사용해 흙의 압력을 측정해 분석하는데도 수일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문화재청의 이러한 발표가 관광객에 의한 팽나무 훼손을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 관광지 이전에 마을 수호신 "뿌리 위에 올라가지 마세요"

문화재청은 이르면 이달 말 동부마을 팽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한 첫 위원회를 엽니다.

주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건 천연기념물 지정만이 아닙니다.

100년, 200년 뒤에도 팽나무가 지금처럼 변함 없이 자신들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윤종한 동부마을 이장은 "팽나무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마을 주민들의 수호신이고, 동네 주민 모두 이 나무에 의지해 살아왔다"며 관광객들에게 "뿌리 위에서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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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 기자 (pra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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