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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을 걸고 사면을 결정합니다" [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미경 기자 입력 2022. 08. 06. 12:00 수정 2022. 08. 0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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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리를 걸어야 하는 비장한 결정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는 '좋고 나쁘고 추한' 사면들
영화 ‘the good, the bad, the ugly’의 포스터.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에도 ‘좋고 나쁘고 추한 것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위키피디아


“Presidential pardons: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대통령의 사면: 좋고 나쁘고 추한 것들)


광복절을 맞아 주요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면은 국가원수의 고유권한이지만 대통령이 쉽게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닙니다. 사면 대상자의 죄의 경중과 형량, 정치권의 분위기, 민심의 흐름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사면은 헌법 2조 2항에 기술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탄핵을 제외한 범죄행위에 대해 사면을 부여할 권한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미국 헌법을 만든 건국의 주역들은 사면 조항을 넣을지 말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다고 합니다. 사면 반대론자들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인 만큼 잘못된 판단을 우려했고, 찬성론자들은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일을 할 리가 없다고 봤습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재임 8년간 16명을 사면하는데 그쳤지만 현대의 대통령들은 사면권을 적극 사용해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씩 사면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국 언론은 서부영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한국 개봉명: 석양의 무법자)에서 유래한 ‘좋은 사면, 나쁜 사면, 추한 사면’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영화에서 악역이 더 주목받듯이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좋은 사면보다는 나쁘거나 추한 사면이 더 많아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미국에서 논란을 몰고 왔던 사면 결정들을 알아봤습니다.

“I do believe that the buck stops here.”(대통령인 내가 책임을 진다고 믿는다)

대국민 연설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면을 발표하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위키피디아


가장 큰 논란을 몰고 온 사면으로는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면이 꼽힙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사면을 받은 유일한 사례입니다. 1974년 8월 9일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났습니다. 이로부터 한 달도 안 돼 9월 8일 후임 포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닉슨 사면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기소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닉슨 대통령에게 모든 사법조치 가능성을 면제시켜주는 ‘선제 사면’이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사면의 이유를 사회통합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중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국가적 단결을 위해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사면 결정의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명언 “the buck stops here”를 인용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주변에 넘쳐나는 monday morning quarterback(월요일 아침의 쿼터백)을 물리치기 위해 이 명언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만 그 결정에 대해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일은 쉽습니다. 결정권자 주변의 잔소리 훼방꾼을 가리켜 monday morning quarterback이라고 합니다. 포드 대통령은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주변의 의견이나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God’(신)까지 거론하며 국민들의 자비심에 호소했지만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을 용서할지 말지 결정을 못한 국민들에게 사임 1개월 뒤에 나온 사면 결정은 너무 빨랐습니다. 포드 대통령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은 그가 재선에 출마했을 때 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도전자인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패해 2년 6개월의 단명 대통령으로 끝났습니다.

“Come back home.”(돌아와라)

지미 카터 대통령의 베트남전 징집 기피자 사면 결정이 실린 신문. 위스콘신 주 워소 데일리헤럴드 신문 캡처


카터 대통령은 1977년 1월 21일 취임 다음날 큰일을 벌였습니다. 베트남전쟁 징집 기피자 20여만 명을 대상으로 사면을 단행했습니다. 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면이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국가적 치유를 위해 사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사면 슬로건은 ‘come back home.’ 징집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기피자의 90%는 이웃나라 캐나다로 도망쳤습니다. 캐나다는 불법 입국자인 이들을 미국으로 송환시킬 수 있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모른 척 했습니다. 오히려 “징집 기피자들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국경수비대에게 내리면서 암묵적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캐나다로 건너간 18만 명 중 5만 명은 사면 결정 후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캐나다에 남았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사법적 처벌을 면제시켜주는 ‘full pardon’(완전한 사면)을 약속했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에서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징집 기피자들이 정상적인 사면 복권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국민적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참전군인 단체들은 대놓고 “비애국적 범죄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아직도 미국 사회에는 징집 기피자들에 대한 낙인이 존재합니다.

“She‘s minding her p’s and q‘s, but staying out of trouble doesn’t get you much.”(그녀는 극도로 조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무장단체에 납치돼 강도 행각을 벌였던 재벌 상속녀 패티 허스트가 감형 결정을 받고 출소할 때의 모습. 그녀가 입은 옷에 적힌 ‘pardon me’는 ‘용서해달라’ ‘사면을 받다’는 이중적 의미로 화제가 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재임 마지막 날에 밀린 숙제를 하듯이 몰아서 사면을 발표합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마지막 날인 2001년 1월 20일 140명을 사면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신문 재벌가 상속녀 패티 허스트였습니다.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은 젊은 여성, 돈, 섹스, 총, 은행강도, 세뇌 등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허스트는 1974년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의 아파트에서 19세의 나이에 극좌 무장단체(SLA)에 납치됐습니다. 이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가 SLA 대원들이 벌인 은행 강도 사건에서 그녀의 모습이 CCTV에 찍히면서 알려졌습니다. 허스트는 부모 앞으로 보낸 사진과 편지에서 자신의 이름은 ‘타니아’라며 자발적으로 SLA에 합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허스트는 미중앙정보국(FBI) 수배 명단에 올랐다가 이듬해 체포됐습니다.

허스트는 당초 주장과는 달리 법정에 서자 “강압에 의해 세뇌를 받았다”는 주장했습니다. 자신은 세뇌된 상태로 의지에 따라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납치자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사례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 35년이 법정 최고형이지만 판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가석방 조건을 채우기도 전에 카터 대통령의 감형 결정에 따라 복역 22개월만인 1979년 1월 석방됐습니다.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사면 결정에 따라 정식 복권됐습니다.

허스트가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고 순조롭게 사면 결정을 받은 것에 대해 “재력 덕분”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허스트를 기소했던 검사는 그녀에 대해 “mind p‘s and q’s”라고 비판했습니다. 영어에는 알파벳이 나오는 속담이 많습니다. 알파벳에서 p와 q는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기 쉽습니다. ‘p와 q에 신경을 쓴다(mind)’는 것은 ‘극도로 언행을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허스트가 사면 결정을 받기 위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범죄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 명언의 품격

트럼프 대통령은 4년의 재임기간 중 237명을 사면했습니다.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문제는 사면 대상자의 대부분이 부정을 저지른 자신의 측근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가운데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사면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 수전 앤서니(1820~1906)는 미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전 앤서니 사면을 발표하자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여성 운동계로부터 “사면 결정 고맙지 않다” “취소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친 것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여성표 공략을 위해 수전 앤서니 사면 결정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소 요청에 스타일만 구기게 됐습니다.

“I shall never pay a dollar of your unjust penalty.”(불공정한 벌금형에 단 1달러도 낼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을 받은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 수전 앤서니. 수전 B 앤서니 박물관


여성계는 “사면은 범죄 사실을 인정한다는 가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습니다. 수전 앤서니는 1872년 대통령 선거에서 뉴욕 선거구에서 투표를 했다가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당시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의 10대 재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대 수전 B 앤서니’ 재판에서 그녀는 여성의 투표권에 대한 열변을 토했습니다. 당시 개정된 수정헌법 14조에 의거해 “그 어떤 주의 법률도 시민의 투표권을 방해할 수 없다”며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주재한 판사는 수전 앤서니의 투표 행위가 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액수였던 100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했습니다. 그녀는 불공정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로 “I shall never pay a dollar of your unjust penalty”라고 응수했습니다. 이 발언은 여성의 참정권 쟁취 노력을 상징하는 명언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수전 앤서니가 세상을 떠나고 14년 뒤인 1920년 성별에 따라 투표권이 거부돼서는 안 된다는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됨에 따라 여성 참정권은 인정됐습니다.
●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이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올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수십억 광년 전 우주의 심연을 담은 사진들을 속속 보내오고 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우주의 신비를 담은 각종 사진들을 보내오고 있다. 사진은 별이 폭발하는 슈퍼노바의 개념도. NASA 홈페이지


“Supernova: a dying star‘s last hurrah.”(슈퍼노바, 소멸하는 별의 마지막 대축제)


제임스웹 망원경의 사진 중에 30~40억 광년 전 은하계의 모습을 담은 슈퍼노바 사진도 있습니다. 슈퍼노바는 생명력이 다한 별이 폭발할 때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를 말합니다. 미국 언론들은 “사라지는 별의 마지막 대축제”라는 감성적인 제목으로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hurrah‘는 즐겁고 신날 때 쓰는 감탄사입니다. ’만세‘ ’힘내라‘는 뜻입니다. “허라” “호라” 등으로 읽고, ’라‘에 강세를 둡니다. 사촌 격으로 ’hooray‘가 있습니다. “후레이” “허레이”라고 읽고, ’레이‘에 강세를 둡니다. 미국인들은 어감상 명확하게 들리는 ’hooray‘를 선호합니다. “hip hip hooray”(힙 힙 후레이)는 스포츠 경기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응원 구호입니다. 응원대장이 “hip hip”하고 선창하면 나머지 부대가 “hooray”라고 추임새를 넣습니다. ’hurrah‘는 글로 쓸 때, ’hooray‘는 말로 할 때 적절한 감탄사라고 보면 됩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8년 2월 14일 소개된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인의 언어에 대한 내용입니다.

2007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찰스턴 공군기자 연설에서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조직원들을 “folks”(찬구들)라고 잘못 말해 논란이 됐다. 찰스턴 공군기자 홈페이지


▶2018년 2월 14일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80214/88668040/1

미국 정치인들은 말을 잘합니다. 불시에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려운 이슈를 술술 풀어가며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힙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말 잘하기로 소문난 미국 정치인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중에는 알게 모르게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 정치인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언어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거죠.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인의 언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리얼 폴리틱스‘라는 미국 유명 정치매체가 정치 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no brainer”(별거 아니야)

워싱턴 특파원 시절 정치인들이 힘든 결정을 내린 뒤, 마라톤협상을 타결한 뒤 “It’s a no brainer”라고 말하는 걸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은근한 자기 과시입니다. “당신한테는 어려울지 몰라도 나한테는 일도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때와 장소를 잘 구별해서 써야 합니다. 예컨대 셧다운(정부 폐쇄)으로 국민들에게 온갖 불편을 야기한 뒤 뒤늦게 협상을 타결하고 나서 여야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들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별거 아니면 왜 빨리 못했어.‘

“look!”(이것 봐)


미국인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주변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싶을 때 ”look!“이라고 운을 뗍니다.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look‘이라는 표현은 품격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TV 정치 토크쇼에서 패널들이 정신없이 말싸움할 때 서로 ”룩“ ”룩“ 하면서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이 단어를 쓰면 얼마나 유치해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연설의 달인‘이라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1시간 기자회견 동안 ”look!“을 26번이나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약 2분당 1번꼴이었습니다.

“folks”(친구들, 동지들)

정치인이 국민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전략이죠.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대통령 할 것 없이 모두 연설이나 대화할 때 수없이 ”folks“를 외쳤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단어는 적에게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대통령들은 너무 즐겨 사용하다 보니 때를 가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를 일으킨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가리켜 ”folks“라고 해서 논란이 됐습니다. ’원수가 어느새 친구가 됐던가.‘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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