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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회사 대표에서 마약왕 '전세계'가 된 박왕열

임명찬 입력 2022. 08. 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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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옷차림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검은 뿔테까지.

사진 속 남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누군가의 모습입니다.

수산물 수입유통회사 대표를 지낸 이 남성은 2016년 필리핀에서 한인 3명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심지어 필리핀 감옥에 수감 중에도 국내에 수백억대 마약을 유통해 범죄자로서 체급을 키워나갔습니다.

유통회사 대표에서 흉악범으로 전락한 이 남성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 입니다.

#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생긴 일

2016년 10월 11일 새벽 동이 틀 무렵.

필리핀 팜팡가주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150억대 투자사기 혐의로 도피 중이던 박 모 씨와 심 모 씨 그리고 맹 모 씨였습니다.

도피생활 중이던 피해자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피해자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도피성으로 필리핀에 왔기 때문에 사람들 모르는 곳에 거주지를 잡았던 상황도 있어서…"

수소문 끝에 피해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교민을 찾아냈는데, 피해자들과 항상 함께 다니던 한 남성을 지목합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박왕열.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박왕열이라는 사람이 (피해자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가 나와서 긴급하게 이제 박왕열을 불러 달라고 해서 한인회에서 처음 만났죠."

# 박왕열과의 심리전

필리핀 한인회에서 진행된 첫 면담에서 박왕열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단체)] "자기 얘기로는 수산물을 이제 한국에 유통하는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 인터넷 검색해 보면 자기가 수산물 유통 사업했던 그런 것 자체를 볼 수 있다. 자기는 이 범죄하고 전혀 상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억울하다"

이미 알리바이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사건 나기 전날에 저녁에 갑자기 마닐라 쪽에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 지역에 이제 00이라고 패스트푸드점이 있는데 거기 앞에 태워다 달라라고 해서 본인이 태워다 준 게 마지막이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박왕열의 진술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습니다.

박왕열의 주장대로 라면 피해자들이 피살되기 전날 저녁 방문한 곳은 숙소에서 차로 2~3시간 거리.

이 정도 거리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면 어느 정도 옷을 갖춰 입었을 텐데 피해자들은 사탕수수밭에서 발견됐을 당시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출을 하면 속옷을 입고 나가잖아요. 그것도 가까운 데 가는 것도 아니고 마닐라 차로 2~3시간 걸리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데 과연 그럴까 이상하다. 거기서 사실 그게 시작이었거든요."

박왕열이 주요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의 수사망이 조여오자 박왕열은 결국 사건 발생 약 이틀 만에 도주합니다.

# 박왕열 검거의 숨은 공신은 여자친구?!

무려 3명의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살해된 사건.

한국에서 과학수사팀까지 필리핀으로 파견됐고 피해자들의 집을 조사하던 중 의외의 성과를 거둡니다.

누군가 먹고 버린 콜라 캔에서 박왕열과 피해자 이외의 또 다른 한국인 지문이 발견된 겁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그 당시만 해도 박왕열만 특정돼 있던 상태고 다른 공범 여부는 몰랐다가 방에서 이제 콜라캔에서 지문이 나왔는데 이렇게 돌출 지문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한 명이 더 있구나라고 해서…"

이 지문의 주인은 박왕열의 지인 김춘수.

하지만 김춘수 역시 범행 일체를 부인했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벽에 가로막힌 수사.

그러던 어느 날 수사팀은 도주 중인 박왕열이 여자 친구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박왕열 여자 친구의 SNS와 정보원들의 첩보를 종합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가던 중 결정적인 흔적을 찾게 됩니다.

박왕열 여자친구가 SNS에 올린 한 식당 사진 속 냅킨에서 상호 명을 발견한 겁니다.

상호 명을 추적한 결과 필리핀 마닐라의 한 콘도 레스토랑으로 확인됐고 결국 박왕열은 37일간의 도주극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 박왕열은 왜?

박왕열 검거와 함께 수사는 급물살을 탑니다.

그동안 입을 닫았던 공범 김춘수도 박왕열 검거 다음날부터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박왕열이 이제 검거가 되면서 김춘수 입장에서는 혹시 박왕열이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박왕열이 당시 생활고를 겪던 김춘수에게 "사람 하나를 처리해주면 1억 원을 주겠다"고 해 필리핀에 들어가 박왕열을 도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범행을 계획하고 실제로 피해자들을 총으로 쏜 건 박왕열이라는 주장입니다.

자신은 옆에서 돕기만 했을 뿐 전반적인 책임은 모두 박왕열한테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박왕열은 피해자들을 어떻게 알게 됐고 왜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걸까?

박왕열과 피해자들의 첫 만남은 박왕열의 친누나를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박왕열 친누나가 한국에서 피해자들이 하는 일(유사수신), 그 일을 했답니다. 회원이었겠죠. 그러다 보니까 동생이 필리핀에 있다. 이렇게 해서 피해자들이 이제 필리핀으로 오게 된 거고…"

박왕열은 도피 중인 피해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억대의 투자금을 받아 카지노 사업 등을 벌였지만 수입은 변변치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박왕열에게 투자 수익금 배분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박왕열은 딴마음을 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투자를 그냥 단순히 돈을 대 다오가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일정 부분 뭐 수익금이 발생하는 거를 얘기를 했을 거고 이제 그 과정에서 왜 그게 잘 안 되냐 뭐 이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해요 박왕열이 그래서 그러한 부분하고 돈 강취 목적 이런 게 같이 맞아떨어져서 범행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결국 피해자들의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박왕열이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간절히 원했던 피해자들의 돈은 어떻게 됐을까?

# 150억? 7억?‥사라진 돈의 행방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벌인 투자사기 규모는 150억대.

그리고 박왕열이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받은 돈은 드러난 것만 7억 원 상당입니다.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100억이 넘는 돈이지만 피해자들이 살해된 뒤 이 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범인은 잡혔지만 범행 동기였던 돈은 사라진 겁니다.

[이지훈 경감/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그때 수사팀이나 저나 이 살인 사건이 사실 거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이거에 매진했던 상황이고, 그래서 지나가는 얘기로는 이미 다 소진을 했다. 어느 다른 나라에 이거(돈)를 감췄다. 이런 떠도는 얘기만 있을 뿐이고 사실 그 부분(돈의 행방)은 확인된 바는 아직 없죠."

피해자들이 다 살해된 지금 사라진 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키는 결국 박왕열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수감 중인 박왕열이 어떻게 이 큰돈을 관리할 수 있을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교민들은 박왕열의 숨은 조력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든 상관없이 그 사람이 돈이 있으면 주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 조력자로 의심되는 사람 중 박왕열 수감을 전후로 갑자기 형편이 좋아진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고 합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박왕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형편이 많이 좋아진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어! 저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현금이 많아졌지, 어떻게 저렇게 건물을 지어 올리지 이런 사람들이…"

검거 된 이후 박왕열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의심은 더욱 짙어지게 됩니다.

# 2번의 탈옥‥"조력자와 돈의 힘"

박왕열이 검거된 직후인 2016년 말쯤.

박왕열은 한 교민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투자금으로 맡겨 놓은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갇혀 있어야 할 박왕열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건데 이를 목격한 교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수용돼 있는 도중에 그 집을 직접 찾아와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습니다. 내가 투자했던 금액에 대해서 왜 회수를 안 해주냐 이렇게 하니까 이제 그쪽에서는 비쿠탄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 집까지 와가지고 초인종을 누르냐 해서 떠들썩했었습니다."

심지어 박왕열은 3년의 수감 생활 동안 무려 2번이나 탈옥에 성공합니다.

한국어 외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박왕열이 24시간 총을 든 무장 경찰들이 지키는 감옥에서 무사히 탈옥을 한 겁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탈출할 수 있었던 거는 이제 돈이죠. 필리핀 현지 공무원들이 다들 형편이 어렵다 보니까 거기서 용돈도 좀 집어주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재소자로 보는 게 아니라 수입원으로 보기 때문에… 그리고 도움을 주는 한국 사람들이 있겠죠. 박왕열한테 돈을 제공받는 스폰 받는 사람들이 있겠죠"

숨은 조력자와 돈.

이를 발판으로 박왕열은 수감 생활 중 마약 유통에까지 손을 뻗게 됩니다.

# 마약왕 '전세계'의 탄생

박왕열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이후 수감 생활을 하던 중 한 남성을 만나 마약 유통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합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김형렬.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리며 실질적인 국내 마약 공급의 최상선으로 알려진 일명 '사라 김'입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우리가 보기에는 흉악범이고 하지만 또 그 안에 들어가면 다 인간적으로 다들 오랜 기간 동안 할 일이 없으니까 (김형렬이)자기 얘기하면서 네가 이런 네트워크가 된다면 이거(마약 유통) 한 번 해봐라 이렇게 해서 더 새로운 그런 불법적인 걸 배우게 되는 거죠. 박왕열이가 거기서 배운 거…"

엠빅뉴스는 취재 과정에서 박왕열이 김형렬을 만난 지 얼마 안 돼 국내로 마약유통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뜯어진 다리미 바닥에 담겨 있는 여러 개의 흰색 가루 봉지.

수감 중이던 박왕열이 국내로 유통하려다 적발된 마약입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박왕열이가 비쿠탄 수용소에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 교민들을 통해가지고 마약을 한국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다리미 밑에 마약을 깔아가지고 한국에 전해줄 사람을 구했는데…의심스러워서 열어보니까 마약 같은 게 있으니까 제보를 한 겁니다."

지금까지 박왕열은 2019년 10월 두 번째 탈옥 이후 검거되기까지 약 1년 동안 텔레그램에서 전세계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며 국내에 수백억대 마약을 유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촬영된 날짜는 2018년 8월.

1년 이상 빠른 시점입니다.

박왕열이 국내로 마약을 들여온 시점과 규모가 알려진 것 이상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박왕열이 들여온 마약은 국내 유통조직 총책인 일명 바티칸 킹덤을 통해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 박왕열이 마약왕 전세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사탕수수밭 사건 이전에는 박왕열이라는 존재도 없었고, 필리핀 내에서 그냥 한국 손님을 카지노에 소개해 주고 돈이나 챙기는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 저희들도 깜짝 놀랐죠. 마약 관련해서 가장 필리핀에서 탑이다 이럴 정도로 유명세를 타니까…"

살인범, 마약왕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박왕열을 필리핀 감옥의 VIP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동활 대표/필리핀112(교민보호단체)] "사망하신 분들이 한국에 100억 대 사건을 치고 이제 필리핀으로 도망갔다. 박왕열이 그 사람들을 살해하고 이제 교도소나 이제 수용소로 들어갔기 때문에 박왕열이는 여기서는 이제 아주 돈이 많은 그런 재소자가 됐기 때문에 관리자들이 그 사람에게 잘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어떻게 하면 그 돈이 이제 나한테 좀 올 수 있지 않겠나…"

필리핀 감옥에서 거물이 된 박왕열.

여차하면 세 번째 탈옥을 시도할 수도 있어 보이는 상황.

국내로 송환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입니다.

# 박왕열은 언제쯤 송환될까?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공범 김춘수는 국내에서 징역 30년 형이 확정돼 수감 중입니다.

하지만 박왕열은 아직 필리핀에 있습니다.

최근 필리핀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징역 60년 형이 확정됐지만 아직 불법 무기 소지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에 맺고 있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르면 박왕열은 현지에서 선고된 형의 집행이 모두 종료된 뒤에야 데려올 수 있습니다.

6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송환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필리핀 정부가 임시 인도 조치에 합의해 준다면 송환의 길은 열리지만 지난 6년간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인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

필리핀 감옥에서 2번이나 탈옥하고 이 기간 동안 국내로 수백억대 마약을 유통한 사람을 우리 법정에 세울 수조차 없는 거냐고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 정부에 묻고 있습니다.

[故 심00 씨 아들] "이게 저희 아버지랑 그 사업하신 분들만 이제 속한 게 아니잖아요. 마약이 관련돼 있으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나라 국민한테 피해가 간 거잖아요. 살인 사건만 가지고는 법 때문에 안 되면 (마약 유통으로)우리나라에 피해를 줬으면 이제 데려와야지 이것도 외교적으로 안 된다고 하면 진짜 뭐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건지 아니면 법무부가 왜 이렇게 행동력이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실화야?] 필리핀 사탕수수밭 그놈 '전세계' 박왕열의 탄생 https://www.youtube.com/watch?v=vbgj3eON-EU

(임명찬chan2@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95702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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