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통 고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던 폭포

이돈삼 입력 2022. 8. 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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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핫플레이스' 동구리 호수공원과 배롱나무 절집

[이돈삼 기자]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지는 화순 만연사. 사철 아름다운 절집이다.
ⓒ 이돈삼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걷는다.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호숫가에 설치된 운동기구와 한몸이 되기도 한다. 데이트를 하는 젊은 연인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엄마도 행복해 보인다.

여름 한낮의 풍경도 싱그럽다. 녹음이 우거져 괜찮다. 봄날엔 벚꽃과 철쭉꽃으로 화사했던 길이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버무려진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멋스럽다.

밤에는 별천지를 이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 호수에서 보름달이 떠오른다. 달 속에선 토끼 두 마리가 절구방아를 찧는다. 수변도 황홀경을 선사한다.

알록달록 옷 갈아입은 동구리 호수공원
  
  동구리 저수지와 수변길 풍경. 여름 한낮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걷기에 좋다.
ⓒ 이돈삼
  
  석봉미술관과 주변 풍경. 화순 동구리는 자연과 문화가 버무려진 마을이다.
ⓒ 이돈삼
 
화순 동구리 호수공원 이야기다. 평범하던 저수지가 공원으로 변신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다. 전라남도 화순군이 연못분수와 바닥분수를 설치했다. 주변의 논밭을 사들여 들꽃을 심고 쉼터도 만들었다. 황량하던 제방이 알록달록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호수 앞에 화순군립 석봉미술관도 들어섰다. 기획전시실과 석봉전시실, 도서관,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상준 남화토건 대표가 미술관을 지어주고 소장작품을 기증했다. 화순군은 부지를 제공했다.
  
 동구리 호수공원에서 만나는 '박연' 비. 박씨가 처음 만든 못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이돈삼
 
미술관에서 나와 걸음을 만연사 방면으로 옮긴다. 잔디밭에서 오래된 비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박연(朴淵)'이라고 새겨져 있다. 박연이 누구지? 비석 뒷면이 깨끗하다. 작은 안내판도 없다.

전후 사정을 알아봤다. 동구리 저수지(만연지)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던 비석이란다. 비석의 글씨는 화순현감을 지낸 신수무가 썼다. 신수무는 1616년부터 3년 동안 화순현감을 지냈다. 그가 주민을 동원해 연못을 만들고,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다른 얘기도 있다. 부자 박씨가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가꿨다. 연못에 개구리가 많이 살았다. 밤이면 개구리의 합창이 끊이지 않았다. 날마다 잠을 설치던 박씨가 연못을 메워버렸다. 박씨가 만든 못이라고, '박연'으로 불렸다고 한다. 비석도 박씨 문중에서 세웠다는 얘기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정약용의 동상. 젊은 날 화순에서 살며 공부했던 인연으로 세웠다.
ⓒ 이돈삼
 
'박연' 비에서 가까운 데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동상과 시비도 서 있다. 옛날에 절집 동림사가 있던 자리다. 만연산과 무등산 일대는 청년 정약용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정약용은 풍산홍씨와 혼인을 하고, 16살 때 화순에 왔다. 만연사 동림암에서 글공부를 하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1777년 아버지 정재원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면서다. 약용은 동림사에서 형 약전과 함께 공부했다. 약용은 <맹자>를, 약전은 <서경>을 읽었다고 한다.

'서양(옛 화순)에 마음 닦는 암자들 많지만/ 동림사가 단연 그윽하고 상쾌하구나/ 오래된 숲과 골짜기 정취 좋아하여/ 잠시 아침저녁으로 부모봉양 미루고 지낸다네/ 투명한 개울에 걸쳐놓은 징검다리 너머/ 느릿느릿 걸어 푸른 산자락에 올랐어라/ 쌀알 같은 잔설은 응달진 비탈에 남았고/ 언 이파리 상수리나무에 높이 붙어 있네/ 뒤돌아보자마자 세상 번뇌 흩어지고/ 산문 안에 드니 맑은 생각 피어나네'

시비에 새겨진 '동림사에서 독서하다'의 내용이다. 정약용이 쓴 글을, 소설가 정찬주가 옮겼다. 정 작가는 쌍봉사 건너편 산골 '이불재'에서 살고 있다.
  
 화순5.18사적지 표지석. 80년 당시 시위대가 총기를 획득했던 곳이다.
ⓒ 이돈삼
 
만연사 주차장에 5․18사적지 표지석도 세워져 있다. 80년 당시 화순경찰서 무기고의 총기가 숨겨졌던 자리다. 지역청년들이 무기를 찾아내 시위대에 전달했다. 광주 시위대의 든든한 뒷배였던 다이너마이트는 화순광업소에서 나왔다.
동구리(洞口里)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한다. 동서로 수만리와 이십곡리, 남북으로는 신기리와 광주 용연동을 접하고 있다. 지명은 '동개'에서 유래됐다. 동개는 '동구밖' '동네입구'를 뜻한다. 만연사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가리킨다.
  
 만연사 대웅전 앞의 당간지주 사이로 본 절집 풍경.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요사채가 어우러진다.
ⓒ 이돈삼
  
 만연사 돌담에 핀 능소화. 요사채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 이돈삼
스님을 닮은 크고 우람한 배롱나무

나한산 만연사(羅漢山 萬淵寺)는 고려 때 만연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나한산은 만연산의 옛 이름이다. 한여름에 피는 배롱나무로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절집이다. 대웅전 옆 배롱나무가 핫플레이스다.

배롱나무는 크고 우람하다. 위쪽에 진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 아래에는 붉은 연등을 매달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꽃을 피운다.

배롱나무가 스님과 닮았다. 스님은 허물을 벗는 수행을 견뎌내고서 깨달음의 꽃을 피운다. 넓은 그늘은 중생에게 주는 선물이다. 절집의 요사채에 능소화도 곱게 피어 있다. 그 자태가 요염하다. 
 
 만연산 치유의 숲. 숲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청량해진다.
ⓒ 이돈삼
 
만연사 계곡의 만연폭포도 유명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경통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무더위를 피해 찾는 사람도 많았다.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도 장관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물맞으러 다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만연폭포에 서린 전설도 애닯다. 만석이와 연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만석이 전쟁에 나간 사이, 부모의 강압을 이기지 못한 연순이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한다. 그날 밤 만석이가 돌아왔다. 연순이는 신방을 뛰쳐나왔고, 두 사람은 저승의 사랑을 기약하며 폭포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동구리 저수지와 어우러지는 마을 풍경. 새로 지은 현대식 주택과 한옥이 많이 보인다.
ⓒ 이돈삼
 
만연산 치유의 숲도 좋다. 치유의 숲 센터도 만들어져 있다. 혈압과 체지방, 스트레스 지수 등을 측정해볼 수 있다. 편백족욕도 기분좋게 한다.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치유의 숲은 만연산(668m) 산정까지 이어진다. 소나무와 참나무, 편백 숲 우거진 사이로 오감길이 단장돼 있다. 길도 평탄한 흙길과 데크로 이뤄져 있다. 걸음을 뗄 때마다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다.

오감길은 무등산 무돌길과도 연결된다. 무돌길은 무등산의 허리춤을 따라 도는 둘레길이다. 모두 51.8㎞에 이른다. 화순구간이 21㎞로 가장 길다. 길은 담양과 광주 동구․북구에 걸쳐 있다. 무등산은 2013년 우리나라에서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오감길을 끝까지 걸으려 할 필요도 없다. 주차장에서 1km 떨어진 치유의 숲 센터까지만 걸어도 좋다. 피톤치드, 음이온을 들먹일 것도 없다. 숲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마음속까지 금세 후련해진다. '보약' 같은 숲이다.
 
 화순 만연산 치유의 숲. 숲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청량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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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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