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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발견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동료 덕분이었어요

한겨레 입력 2022. 08. 06. 16:30 수정 2022. 08. 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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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우영우' 신드롬][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성인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소리에 민감, 눈 못맞추는 신철씨
자극에 예민해 루틴 깨지면 분노
정상 지능 유지되는 고기능 자폐
어울려 살도록 사회가 도와줘야
게티이미지뱅크

신철씨는 20대 남성으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습니다. 손님의 주문에 따라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등을 척척 만들어 냅니다. 그는 초등·중학교 때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눈을 잘 못 마주치고 걸음걸이도 펭귄 걸음처럼 조금 뒤뚱거리면서 걸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정말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도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휴학을 거듭하다가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하다가 바리스타가 잘 맞아서 자격증도 따고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철씨는 평소에 머리에 큰 헤드폰을 쓰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상태로 출퇴근합니다. 도로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기 때문입니다.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듣습니다.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면 힘들기 때문에 지하철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부 자극에 매우 예민한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행동을 항상 반복해서 하는 루틴이 있습니다. 그 루틴을 누가 깨려고 하면 무척 화가 납니다.

별 자체보다 별의 규칙성에 집착

신철씨는 카페에서 주로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이따금 주문을 받고 손님을 응대할 때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는 조금 특이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톤이 높고 너무 빠르게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손님의 눈을 보며 이야기할 때면 마치 손님이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그는 계산하는 모니터만 보면서 주문을 받으면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손님이 있으면 귀를 막지 않고는 참기가 힘듭니다.

신철씨의 행동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바로 동료 민정씨였습니다. 민정씨는 신철씨가 어려워하는 손님들을 만날 때마다 나서서 대신 해결해줍니다. 민정씨는 신철씨가 시선 처리나 말투 이외에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화가 난 경우에도 잘 느끼지 못해서 민정씨가 도와주곤 했습니다. 민정씨도 사실 자신의 동생이 자폐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도와주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철씨는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지만 사실 천문학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집에서는 작은 천체망원경으로 수많은 별들을 관찰합니다. 그는 다양한 모양의 별들이 지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계산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의 방에는 천체의 움직임을 그린 큰 그림들이 벽에 붙어 있고 그림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지구와의 거리가 계산되어 적혀 있습니다. 사실 그가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것도 자신이 일하는 커피 전문점 이름에 ‘스타-’가 들어 있는 것에 꽂힌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별과 관련된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동료인 민정씨는 신철씨가 사회성이 전혀 없고 일본 만화에만 몰두하던 자신의 동생과 너무 비슷하게 생각되어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민정씨의 권유로 신철씨는 부모님과 함께 인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신철씨는 지능지수는 정상이지만 사람들하고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습니다. 신철씨의 세상은 수와 규칙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신철씨가 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가 몰두하는 내용은 사실 별 움직임의 규칙성에 대한 것입니다. 실제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지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신철씨는 사람들과 정서적인 교류가 어렵고 눈 맞춤이 안 되고 표정이 없는 등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주제에 집착하는 특징에다 감각 자극에 대한 과민성을 보였는데 이로써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되었습니다. 다만 다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와는 다르게 지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고기능 자폐로 판정되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대개는 3살 이전 다른 또래들과의 발달상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개월쯤에 언어 발달이 늦어서 부모가 걱정하기도 합니다. 지능이나 자조 기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일부 아이들은 학령기가 되어서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기도 합니다. 각각의 문제 행동이 광범위한 수준에 걸친, 복잡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릅니다. 이 때문에 같은 자폐 스펙트럼이라도 보이는 모습은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사회성 향상 가능…주위서 도와야

담당 의사는 신철씨가 바리스타 일을 몇년간 잘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중요한 예측인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손님들과 소통하고 그 사람에 맞춰 생각해보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신철씨를 이해해주는 민정씨라는 동료가 있는 것도 그에게는 상호작용 능력의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신철씨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말을 잘 듣고 그 내용에 맞춰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철씨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의 내용이 처음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으로 빠지게 되는데 이를 정신의학적 용어로 ‘사고이탈’(tangentiality)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핵심을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을 ‘우원증’(circumstantiality)이라고 합니다. 사고이탈과 우원증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다음에 내가 할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못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사고이탈과 우원증을 유발하게 됩니다. 대화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내가 할 이야기를 거기에 맞춰 대답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도움이 됩니다.

신철씨는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사회성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분들이 일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분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고 조금 느리더라도 기다려 주면 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홍진<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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