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다고 날 비웃은 친구, 때리고 심부름도 시켰다..잘못인가 [씨네프레소]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2] 영화 '파수꾼'
학교폭력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둘만의 일이 아니다. 거기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못 본 척하는 수많은 방관자가 존재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혹시 말리다가 자신도 폭행을 당하는 신세가 되진 않을까 하는 공포에 모른 체한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가운데 피해학생은 철저히 소외되고, 폭력의 주체는 교실 내에서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영화는 기태(이제훈)의 아버지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기태가 자살한 뒤 그는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헤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건 자신이 아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아들과 친한 줄 알았던 친구들은 아들에 대해 묻는 그에게 '나는 별로 친하지 않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가장 친하다는 친구는 장례식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영화는 멀리서는 친밀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관계에 늘 긴장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윤과 기태는 중학교부터 알았던 반면, 희준은 고등학교 때 두 사람과 친구가 됐기 때문에 언제나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또한 기태가 "많이 컸다"며 장난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희준은 불쾌했다. 그가 자신을 '꼬붕'으로 여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두 사람의 이런 기싸움은 사춘기를 지나는 어느 친구 간에도 있을 법한 갈등이다. 친구의 말과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는 말을 순순히 털어놓으면 어쩐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도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가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친구 관계의 보편적 양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데 있다.
목줄 풀린 도사견처럼 날뛰던 기태는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다"는 희준의 말과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된다"는 동윤의 얘기를 듣고 자기 처지를 직면한 것이다. 세 사람의 대화는 학교폭력이 지닌 속성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낸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육체와 정신을 멍들게 만들지만,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가해자에게도 온전한 인간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건 상대방이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껴 한 행동을, 가해자는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를 가해자로, 희준을 피해자로만 그리는 이분법적 구도에 머물지 않는다. 극의 초반부를 스치듯 지나가는 신(scene)에서 기태는 한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다. 희준과 동윤을 비롯한 친구들은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그 폭력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맞고 있는 학생의 사연이 나오진 않지만, 어쩌면 그 역시 과거엔 희준과 마찬가지로 무리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태의 시한폭탄 같은 폭력성에 희준과 동윤 또한 일정 부분 책임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마지막에 겪게 되는 파국은 '폭력적이지만 나에겐 착한 친구'라는 기만에 대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장르: 드라마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조성하
평점: 왓챠피디아(3.9/5.0), 로튼토마토 팝콘지수(76%)
※2022년 8월 5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U+모바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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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 지난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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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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