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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TSMC 둘러싸고 힘겨루기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데스크 입력 2022. 08. 0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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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 총통,"펠로시 의장과의 오찬에 모리스 초청"
펠로시 의장, TSMC 회장과 美 투자확대 논의
TSMC, 美애리조나에 반도체생산 공장건설 중
中 "회사존립 위험" 경고..TSMC 美밀착 견제
중국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3일 타이베이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오찬을 함께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TSMC 창업자인 장중머우(가운데 백발 남성) 전 회장.ⓒ 차이잉원 페이스북

미국과 중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업체인 대만 ‘타이완지티뎬루(臺灣積體電路)공사’(TSMC)를 둘러싸고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TSMC 창업자와 회장을 만나 미·대만 반도체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이 TSMC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지난 3일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을 만나 미국 투자확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에서 미국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대만미국협회(AIT)에서 화상으로 류 회장과 회의했다. 양측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달 미 연방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과 TSMC의 미국 추가투자 가능성에 관해 얘기를 나눴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커젠밍(柯建銘) 의원은 “펠로시 의장은 TSMC의 미국 투자에 감사의 뜻을 밝혔고, 류 회장은 투자를 더 늘리기 위해 바라는 사항을 전달했다”며 펠로시 의장이 반도체산업 육성법안을 업계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경제·산업 문제가 미국의 최대 현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TSMC는 미국과 서방에 반도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글로벌 핵심 기업이다. TSMC가 제조한 반도체칩은 F-35 전투기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대표적인 미 군사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미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에도 두루 사용된다. 이런 중요성에 감안해 미국은 중국의 대만침공 등 유사시에 대비해 TSMC에 미 현지공장 건설을 요청해 왔다. 이에 따라 TSMC는 2020년 5월 120억 달러(약 15조 7000억원) 규모를 투자해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최첨단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장은 내년 말 준공돼 5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 트랜지스터를 생산할 예정이다. TSMC 애리조나 공장의 설비 확대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4일 중국에서 대만과 가장 가까운 푸젠성 핑탄섬에서 중국 군용 헬기가 관광객들 위로 날아가고 있다. 중국은 이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대응으로 대만을 사실상 전면 봉쇄하는 형태로 실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핑탄 AFP 연합뉴스

이날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이 주최한 환영 오찬에는 TSMC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Morris Chang) 전 회장이 대만 재계대표들과 함께 초대돼 펠로시 의장을 만났다. 차이 총통은 페이스북에 “펠로시 의장과의 오찬에 나의 오랜 친구 모리스를 초청했으며, 우리의 걸출한 기업가인 류더인 TSMC 회장, 애플 협력업체인 페가트론(Pegatron) 청젠중(程建中) 회장도 현장에 있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펠로시 의장이 TSMC 최고위층 두 명을 만난 것은 대만 반도체 생산이 미국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펠로시 의장과 TSMC 수장과의 만남이 부각된 게 부담스러운지 TSMC 측은 “류 회장은 오찬에만 참석했을 뿐, 펠로시 의장을 따로 만나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만 반도체의 신(神)’으로 불리는 장중머우 TSMC 전 회장은 1931년 중국 저장(浙江)성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이던 1949년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고국을 떠나 미 유학길에 올랐다. 매사추세츠(MIT)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작은 반도체 회사를 거쳐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승승장구하며 스탠퍼드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만 정부의 부름을 받아 국책연구소장을 맡아 대만 반도체산업 밑그림을 그렸다. 당시 대만의 기술력으로는 반도체산업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미국의 반도체 연구원들이 생산 공장을 짓는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창업은 엄두도 못 내고 회사원으로 눌러 앉는 현실에 주목했다. 반도체 연구개발 능력에서 미국을 따라잡기가 요원한 만큼 반도체 제조만 하는 회사를 차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에 투자를 제의했지만 “그게 되겠느나”며 모두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초기 자본금 절반은 대만정부 개발기금이 대고 네덜란드 필립스가 4분의 1 약간 넘게 지분 참여한 국가기업으로 출발했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 56세에 TSMC를 창업해 반도체 하나로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오늘날 팹리스(설계 전담 회사)와 파운드리가 분업구조를 이루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활발하게 창업이 이뤄지는 것은 TSMC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퀄컴과 엔비디아 같은 미 굴지의 팹리스들이 TSMC에 의지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 TSMC의 안위가 ‘자국의 일’이 된 셈이다. 중국의 협박에 맞선 ‘대만 제1의 강군’이 바로 TSMC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이 3일 대만 타이베이 입법원(의회)에서 차이치창 입법원 부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과 대만 의회 간 교류가 늘어나길 원한다”며 지난달 통과한 ‘반도체·과학법’이 양국 협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AP 뉴시스

미국은 현재 대만·한국·일본을 참여시켜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이른바 칩4(chip 4) 반도체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 의회가 ‘국가안보 법안’이란 평까지 나오는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위협에 맞서 미국 반도체 제조역량을 키우고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안이다. 전체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지원한다. 그중 390억 달러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 보조금으로 배정됐다. 조 바이든 정부와 미 정치권은 미국에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도 보조금을 주겠다며 TSMC·삼성전자 등에 미국 투자를 압박했다.


이로써 TSMC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120억 달러를 투입해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미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삼성전자도 이 법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펠로시 의장과 TSMC 경영진의 만남은 TSMC가 중국의 분노를 견딜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TSMC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TSMC가 미국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은 발끈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며 TSMC의 미국 밀착 움직임을 견제에 나선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TSMC에 곤란한 선택을 강요한다고 비판하면서도 TSMC를 향해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통첩을 날렸다.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영문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업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 “펠로시와 TSMC 회장의 만남은 TSMC로부터 추가 투자를 이끌어 내거나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가속화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TSMC를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제조업체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말로, 중요한 시장인 중국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한 것이다.


중국이 TSMC를 갖기 위해서라도 대만 무력통일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연구원의 천원링(陳文玲) 총경제사는 최근 한 포럼에서 ‘대만수복’을 주장하며 “본래 중국에 속한 기업인 TSMC를 반드시 중국 수중에 빼앗아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류더인 TSMC 회장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경제가 흔들릴 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도 붕괴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류 회장은 1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세계 질서가 바뀔 것”이라며 “반도체 칩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침공으로 TSMC 생산이 중단되면 반도체 칩의 10%를 TSMC에 의존하는 중국도 경제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류 회장은 또 “TSMC는 유럽·일본·미국 등 외부 세계와 실시간 연결돼 있고 원료부터 화학물질, 예비부품,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진단까지 모두 연결된 아주 정교한 제조 시설”이라며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이 공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설사 무력으로 뺏는다 해도 가동시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글/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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