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과학 방역'→'표적 방역'..알맹이 없는 尹정부 방역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2. 8. 7.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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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는 前정부에서 이미 폐기..기존 지침 답습뿐 디테일 없어
'고위험군 집중 관리'한다지만..의료기관 BCP도 병원 재량에 맡겨
"원내 접촉자 등 선별PCR이라도 지원해야..최악 대비 '플랜B' 전무"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을 겸하게 된 정기석 국가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중대본 제공

"'과학 방역'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과학은 그야말로 아주 광범위한 범위이고요.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도 과학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처음에 과학적인 방역이라고 제안을 했기 때문에 방역에 관련된 여러 과학들, 감염학, 역학, 수리학 등 앞으로 저희가 전체적인 코로나 위기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라고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7월 1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 정기석 국가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

"이제 우리에게는 2년 7개월 동안 코로나19를 헤쳐온 경험과 많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감염이 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들께 일상을 돌려드리면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곳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표적 방역'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8월 3일 중대본 회의, 중대본 이기일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

'과학 방역'을 야심차게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89일이 지났다. 데이터 등 근거 중심의 합리적 방역을 강조한 만큼 윤 대통령이 집권할 때만 해도 차별화된 코로나19 대응노선을 기대하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일일 최대 62만을 찍은 오미크론 대유행을 한차례 겪은 점 때문에 되레 큰 변수가 없다면 무난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6월 말부터 가시화된 코로나19 재유행 이후 방역당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달 29일~이달 1일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코로나19 정기 인식조사'에 따르면, 대통령과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지난 2020년 2월 이래 2주마다 실시된 해당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았다.

재확산 국면에서 가장 바빠야 할 '컨트롤타워' 격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전히 공석이다. 정호영 경북대 의대 교수에 이어 정치자금 유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돼 낙마한 김승희 후보자가 자진사퇴한 지도 벌써 34일이 흘렀다. 유기적이고도 일관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서는 촌각을 다퉈야 할 인사지만, 대통령실 등에서는 일말의 급박함도 엿보이지 않는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이같은 '구멍'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불안한 시그널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당국의 태도다. 현 정부의 방역 노선을 대표하는 '과학 방역'이란 표어는 약 석 달 만에 '표적 방역'으로 바뀌었다. 어떤 정책이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의구심은 오히려 커졌다.

전(前) 정부의 대응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변화된 상황에 맞는 '디테일'은 빠져있는 탓이다. 방역정책의 연속성은 물론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업데이트'가 부족한 답습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K-방역'을 가장 매섭게 비판한 부분은 다중시설의 영업을 제한하고 사적모임 인원을 규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였다. 하지만 유행 억제와 확진자의 중증 방지를 위해 쓰였던 이 정책들은 전임 정부의 임기 내 차례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피해 조절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수단들이 사라짐에 따라, 당국이 적용할 수 있는 선택지의 폭 자체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의무'로 규정되어 있긴 하나 감시체계가 부재해 실제로는 '권고' 수준으로 전락한 △확진자의 7일 격리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곤 방어 수단도 딱히 없는 상태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정부의 방향성이 기존대로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는 거라면, 사실 정부로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거리두기는 '하는 것' 아니면 '안 하는 것', 둘 중 하나고, 하게 될 때 어느 정도 범위를 갖고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리두기를 재개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는 시스템에 들어온 확진자를 관리하는 것, 고위험군에서의 중증·사망을 줄이는 것 외에 (정부가) 할 게 없다"고 부연했다.

서울 양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문제는 일상회복 기조를 유지하며 '중증·사망 최소화'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메시지에 수사(레토릭)만이 난무하다는 점이다. 지난 3일 중대본에서 처음 언급된 '표적 방역'도 같은 일환이다. 단순히 확진자가 속출하는 요양병원·시설 등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의미라면 이는 일체의 접촉면회가 금지되고 종사자 등이 매주 선제검사를 받는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원칙이다.

60세 이상 고령층·면역저하자 등이 확진될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먹는 치료제를 투여하는 등의 조치도 '고위험군 패스트트랙'이란 개념으로 정립된 지 오래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임숙영 상황총괄단장은 지난 4일 '표적 방역'의 뜻을 자세히 풀어달라는 질의에 "기존에 추진해 왔던 방역정책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며 "고위험집단 등 인구집단의 특성에 따라 보다 정밀한 분석을 통해 방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도 "접종을 비롯해 치료제를 적극 투여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확충하고 감염취약시설 보호를 위한 여러 체계를 좀 더 촘촘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한 중에도 위중증·사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추가대책은 없었다. 결국 현행 방침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되풀이한 '동어 반복'인 셈이다.

정기석 위원장은 '표적 방역'을 암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필요한 곳에만 약을 쓰는 '표적 항암치료'에 빗댔다. 거리두기 등 일괄적 규제가 아니라 감염취약시설 등에 대한 '핀셋 방역'을 하겠다는 취지지만 이 역시 알맹이는 없었다.

이는 방역 최전선에 있는의료기관의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침이 부재한 현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외래 환자와 입원환자를 통틀어 각종 기저질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 등은 집단발생에 가장 취약한 시설 중 하나다. 지금은 발열 감시 또는 방역 패스 등 없이도 출입이 자유로워져 숨은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유입되면 의료진과 환자 모두 확산에 속수무책이다.

시립병원인 서울 보라매 병원에서도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2개 병동에서 10명이 넘는 간호사가 확진된 것으로 파악됐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


당국은 고위험군이 다수인 병원도 '표적 방역'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국가가 일률적인 정책을 정하기보다는 병원마다 특성을 고려해 수칙을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 청장은 "의료기관은 이미 코로나19 외에도 다양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강력하게 여러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각 병원은 자체 BCP(Business Continuity Plan·업무연속성계획)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엄 교수는 "병원 직원들이 확진되면 병동 내 환자를 통해 확진된 건지, 지역사회에서 감염된 건지 구분이 전혀 안 된다"며 "1~2주 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병동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내 확진자가 발생하면 주변 환자나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병실 환자 등을 상대로 선별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며 "빠른 스크리닝을 통해 격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비싼 돈 내고 검사를 받겠냐고 하면 누가 받겠나"라고 반문했다.

향후 반복될 재유행을 감안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일종의 비상계획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우세종이 된 BA.5와 BA.2.75('켄타우로스') 등 전파력과 면역 회피력이 뛰어난 변이들이 계속 유입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 이번 유행 대응에만 급급할 게 아니란 뜻이다.

엄 교수는 "이 부분은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계속 얘기했던 지점"이라며 "중증·사망을 줄이자면서도 정작 유행상황이 나빠졌을 때의 '플랜 B'가 전혀 없다.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그 피해를 받아들일 것인지, 이를 넘어서는 상황에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표면적인 소통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내일(8일)부터는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을 새로 겸하게 된 정기석 위원장이 매주 감염병자문위 논의결과 등을 직접 브리핑할 예정이다. 정 위원장은 매회 중대본 회의에도 참석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개진하게 된다.

엄 교수는 "방역은 단어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평생을 감염병만 연구하고 감염병 환자만 본 최고의 전문가가 질병청장인데, 다른 전문가를 또 특별대응단장으로 둔다는 것도 어색하다. 법적·행정적 근거가 있는 직함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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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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