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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낙동강변 '추격전'..차량 절도범 잡고보니 10대 [베테랑]

김도균 기자 입력 2022. 08. 07.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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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29만건(2020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난 5월 29일 저녁 8시20분쯤 4번 국도 대구~경북 칠곡 방면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 아래를 흰색 SM6 한 대가 지나갔다. 같은달 25일 대구 달성군에서 도난신고된 차량이었다. 경북경찰청 칠곡경찰서 상황실에는 곧 바로 WASS(수배 차량 검색시스템)가 작동했다. WASS는 시내 주요 도로와 외곽 경계지역 등에 CCTV에 수배 차량 번호가 포착되면 차량정보가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WASS에 차량이 포착되자 칠곡경찰서는 왜관지구대 순찰2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첫 지령은 "수배 차량이 칠곡군 왜관읍으로 진입할 것 같으니 진입로인 왜관IC를 차단하라"는 내용이었다. 왜관지구대 순찰2팀 소속 이근희 순경시보(29)는 사수와 함께 순찰차에 올라 왜관IC로 향했다. "수배차량이 이동하고 있으니 낙동강변으로 이동하라." 저녁 8시35분쯤 왜관IC 부근에 도착한 이 순경에게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이 순경은 순찰차 방향을 틀었다. 이 순경의 순찰차가 낙동강 위 제2 왜관교를 건넌 시간은 저녁 8시38분. 이 때까지 SM6로 보이는 차량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 이 순경 앞에 놓인 건 세 갈래 길. 도주로는 셋 중 하나였다.

돌아오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길…결과는?
올해 초 칠곡경찰서로 발령받은 이근희 순경시보(29)와 최준영 칠곡경찰서장의 모습./사진=이근희 순경 제공

지난해 9월 첫 부임지인 왜관지구대에 온 이 순경은 매일 순찰을 돌며 이 곳 지리를 꿰고 있었다. 인접지역 구미시가 고향인 이유도 있었다. 앞에 놓인 세 길이 향하는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 순경은 우회전을 해 낙동강 뚝방길로 빠지는 길을 택했다.

뚝방길을 따라 달리면 범인을 못 찾더라도 다른 낙동강 다리를 건너 금방 다시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왕복해야 하는 다른 두 길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포장도 안 된 뚝방길을 50여m 가량 달렸을 때였다. 가로로 나란히 켜진 빨간 불빛이 어둠을 뚫고 이 순경 눈에 들어왔다. 앞서가던 누군가의 차량 후미등이었다. 이 순경은 가속 패달을 밟아 속력을 높였다. 수배 차량과 같은 차종인 SM6 후미등이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윽고 순찰차의 전조등 빛이 앞서가던 차량의 번호판까지 닿았다. 수배차량이었다.

하지만 앞선 차도 뒤따르던 순찰차를 봤는지 갑자기 속력을 내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 순경의 옆자리에 있던 사수는 "정차하고 내리라"는 경고 방송을 시작했다. 이 순경도 핸들을 꽉 쥐고 속력을 냈다. 위험천만한 추격전이 시작됐다. 인적이 드문 길이라 해도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서 도주차량이 행인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순경은 막다른 길로 몰아야겠다 판단했다. 이 순경은 도주차량의 옆을 따라붙으며 인근 공장 부지쪽으로 도주 차량을 몰았다. 이윽고 두 대의 차량은 공장 건물이 가로막고 있는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운전자는 계속된 정차 명령에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도주로를 찾았다. 이 순경 역시 전·후진을 반복하며 도주차량의 앞과 뒤를 연거푸 막았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쯤 범인은 빠져나갔다. 무전을 듣고 지원나온 순찰차 1대가 도착했을 때 이 순경이 타고 있던 순찰차 뒤편에 차 한 대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범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후진으로 그 틈새를 빠져나가며 범인은 순찰차의 뒤 범퍼를 치고 도망갔다. 충돌하자마자 범퍼가 내려앉았다.

지원 순찰차가 곧바로 뒤쫓았으나 범인은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차에선 4명이 빠져나와 도망쳤는데 2명은 그대로 차 옆에 있었다. 근처에 숨어있던 다른 1명도 먼저 잡힌 2명이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하자 순순히 나타났다. 3명은 모두 도난차량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잡히지 않은 사람은 1명뿐이었다.

이 순경과 지원 경력은 웬만한 남성 허리를 훌쩍 넘기는 풀숲 사이를 헤치며 낙동강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10분 가량 수색 끝에 이들은 풀숲 사이 쪼그려앉아 몸을 숨기고 있던 10대 남성 A씨(19)를 발견했다.

A씨는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관 3명에게 강하게 저항했다. 엎드려 눕힌 상태에서도 팔을 등뒤로 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 순경과 경찰관 한 명이 각각 한 팔씩 붙잡고 겨우 등 뒤로 손을 모으고 A씨에게 수갑을 채운 시각은 밤 9시20분쯤. 최초 발견부터 검거까지 1시간여만이었다. 세 갈래길에서 우회전을 택한 이 순경의 빠른 판단이 신속한 검거를 도왔다.

"고맙다고 울던 실종자 어머니 잊을 수 없어서"…'순경시보'가 된 '의무경찰'
지난해 여름. 경찰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이근희 순경시보(29)와 동기들의 모습./사진=이근희 순경 제공

지난해 5월 경찰 시험에 합격하고 같은해 9월 경북경찰청으로 발령받은 이 순경은 여전히 '시보'(試補) 신분이다. 시보란 관직에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그 일을 익히는 기간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이 순경도 현장에서는 한 명의 직업 경찰관이다.

이 순경이 경찰과 연을 맺은 것은 10여년 전 의무경찰 시절부터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종로경찰서 방범순찰대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던 이 순경은 이때의 경험을 잊지 못해 다시 경찰 제복을 입었다.

2012년 11월쯤 당시 의경이었던 이 순경은 아동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의 여아 실종자는 그날 오후 2시쯤부터 행방이 묘연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실종 직후 신고를 냈고 반나절이 지나도 발견이 안 되자 경찰은 밤 10시쯤 이 순경이 있던 부대를 수색에 동원했다.

같은 날 밤 11시쯤 이 순경은 실종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 아이가 혼자 있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인상착의가 신고내용과 달라서 지나칠 뻔했는데 뭔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이 순경은 "실종자가 아니어도 이 시간에 아이 혼자 있으면 안 되지 않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순경은 다가가서 아이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잠깐 돌아와서 한국어를 못한다던 신고내용과도 일치했다. 이 순경 제복에 있는 'POLICE'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이 아이는 앞선 신고의 실종자가 맞았다.

이 순경은 실종된 아이를 찾은 어머니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말했던 그때 경찰을 처음 꿈꾸게 됐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순경은 "경찰이 돼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약 5년간의 긴 수험생활 끝에 지난해 다시 경찰 제복을 입었다.

이 순경은 "'범죄 예방'에 전문성을 갖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이 순경은 "남들을 돕고 싶어 경찰이 되고 싶었던 만큼 경찰이 되고 보니 사람들을 범죄 때문에 울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순경은 "긴 수험생활 동안 바라왔던 직업이라 그런지 일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 순경은 "매일 내가 경찰이 되면 어떨지 상상하면서 공부했고 진짜 경찰이 되니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뿌듯하다"며 "마음 같아선 우리 지구대(왜관지구대)가 더 바빴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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