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밖에 날라..중국과 반도체 협력 '여지' 남긴 정부 [강경주의 IT카페]

강경주 입력 2022. 8. 7. 08:23 수정 2022. 9. 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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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61회
미국, 반도체 공급망서 중국 배제 가속화
대통령실 관계자 "중국과 반도체 협력 지속"
대만·일본, 미국과 반도체 동맹 행보 강화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인식..우리는 경제로 접근"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둘러본 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동아시아 순방으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층 격화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한국, 대만, 일본에 이른바 '칩4 동맹'을 제안하고 우리 정부에 이달 말까지 답변을 요청한 상황.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산업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자칫 미국이 들었을 때 오해를 살만한 발언이 대통령실에서 나오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칩4 동맹' 대신 '반도체 협의' 표현 사용

6일 반도체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묻는 다수 기자들의 질문에 "칩4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약 40분간 펠로시 의장과 통화를 했다. 펠로시 의장과 동행한 수잔 델베네 연방 하원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을 언급, "양국이 수혜를 누리며 협력 방안을 논의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은 지난달 28일 자국의 반도체 발전과 기술 우위를 위해 2800억달러(한화 약 363조3000억원)를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국가 안보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중국 배제에 방점이 찍혔단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와중에 한국이 칩4에 가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어떤 의제와 어떤 협의체를 통해 협력을 이야기할 것인지 아직 만난 적이 없고 언제 만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또 "미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대만 등 반도체에서 세계 최고 역량을 가진 국가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우리 반도체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과도 맞춤형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지속할 것이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반도체 협력 논의에도 참가하겠지만 형식과 내용은 차차 논의할 예정"이라며 "그것(칩4)이 누가 누구를 배제하는 반도체 동맹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칩4 동맹' 대신 '반도체 협의'라는 표현을 썼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단어 선택으로 읽힌다.

펠로시 의장, 대만서 반도체 광폭 행보

정부에서 그동안 '칩4 동맹' 표현을 쓰지않는 분위기는 감지됐지만 '중국과 맞춤형 반도체 협력'을 한다는 워딩은 처음 전해진 것이어서 외교가와 반도체 업계가 그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회의 개최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고 이달 말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하면서 사실상 참여를 강요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과 반도체 협력을 지속한다는 말은 미국의 전략과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기 위한 작업에 전력을 쏟는 중이다. 미 의회가 최근 통과시킨 반도체법은 중국에 맞서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은 또 중국 반도체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장비 수출 금지 등 수출 통제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검토도 진행 중이다. 이 방법은 중국의 특정 기업이 아니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을 대상으로 해 한국을 비롯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경제적 야망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 상무부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대한 중대한 국가안보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노력을 저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이 오찬 후 찍은 사진 [차이잉원 페이스북]


한국과 달리 대만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 방문 이틀째였던 지난 3일 TSMC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과 류더인 회장을 만났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페이스북에 "펠로시 의장과의 오찬에 나의 오랜 친구 모리스를 초청했으며 우리의 걸출한 기업가인 류더인 TSMC 회장, 페가트론 정젠중 부회장도 현장에 있었다"는 글과 함께 사진 여러 장을 올리며 친분을 과시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펠로시 의장이 TSMC 최고위층 두 명을 만난 것은 대만 반도체 생산이 미국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준다"고 했다.

미일 협력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달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경제정책협의위원회(EPCC)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및 중요 광물을 포함한 전략적 부문에서 공급망 탄력성 증진을 위한 노력을 진전시키겠다"며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위한 공동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일 양국이 2025년까지 2nm급 차세대 반도체를 양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건드리지 않는 게 우선"

국내 반도체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가량을 생산 중이고 쑤저우에는 반도체 패키징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 D램 공장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생산한다. 인텔에서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도 다롄에 있다. 국내 반도체 수출의 60%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정부와 업계의 고민이다.

반도체 기업의 한 임원은 "태풍에 방향을 잃고 헤매는 배에 올라탄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펼쳐질 시나리오 등을 준비하는 정도"라며 "중국이 중요한 시장이지만 그래도 미국을 건드리지 않는 게 우선이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칩4 동맹에서 빠지면 반도체 소부장 공급이 완전히 막힐 수도 있다"며 "반도체 장비 상위 네 곳 중 세 곳이 미국과 일본 기업이고 핵심 기술은 미국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중국과 협력을 한다는 정부 관계자의 의견 표출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망을 만드는 것이 미래 산업의 핵심자원인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칩4 동맹이) 영화 '대부'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같다. 이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은 칩4 가입에 대한 결정의 순간이 임박했음을 상기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라고 하나 이는 미일과의 생태계 공생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우리가 칩4 가입 요구를 거절했을 때 감당해야 할 손실의 크기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박 3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탁상 푯말.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탁상에 비치했던 푯말과 동일한 것으로 'The Buck Stops Here!'라고 새겨져 있다.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의미로 트루먼 대통령이 1953년 고별연설에서 인용한 문구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한 외교가 인사는 "반도체법과 칩4의 핵심이 '중국 배제'인데 '양다리'를 걸칠 수 있다고 보는 건 무리"라며 "반도체에서 당연히 중국과 협력을 해야하지만 이 역시 미국과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 하에 가능한 얘기"라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인식을 하는데 우리는 '경제'로 접근하고 있어 엇박자"라며 "미국에 반도체 공급망은 핵우산에 버금갈 정도로 보안에 있어 중대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끝으로 "만약 미국이 한국을 칩4에서 배제하거나 우리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에 따른 조치로 차등 대우를 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이런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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