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터 회사원, 주부까지..일상에 파고든 마약

김현지 기자 입력 2022. 8. 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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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대 검거된 마약류 사범, 3년 새 2320명 늘어나
'다이어트약·진통제' 의료용부터 화학 구조 바꾼 '신종'까지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2020년, 20대 남성 A씨는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에서 들여온 필로폰을 인터넷에서 판매한 것이다. A씨는 마약 사업이 소위 '돈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약을 직접 투약한 경험도 있던 A씨는 먼저 자신이 교류했던 판매상에게서 필로폰 200g을 샀다. 성인 남성이 최대 투여하는 양은 한 번에 0.1g(일반적으로 0.03g)인데, 이의 2000배나 되는 양이었다. A씨는 미국에서 생산된 후 다른 나라를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온 필로폰을 불특정 다수에게 팔았다. 거래는 보안성이 강한 SNS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이뤄졌다. A씨의 범죄 행각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경찰의 단속망에 걸려들면서 끝났다. 그는 지난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PIXABAY

마약, '다이어트약'으로 버젓이 유통

A씨는 조직폭력배 등 범죄집단에 속한 인물이 아니었다. 직장이 없던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범죄집단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마약류가 일반인들에게도 퍼졌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인들이 신종 마약류를 구할 수 있는 점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마약류에 속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온라인에서 쉽게 거래되고 있다. '우유주사'로 알려진 프로포폴 외에도 다이어트약, 각성제 등이 대표적이다.

"디에타민 양도합니다. 오늘 저녁 6시에 처방받아 왔어요."

"식욕억제제(디에타민) 양도합니다. 3포씩 2주치 있음. 1주당 5만원에 팔아요."

7월26일부터 8월1일까지 SNS에 올라온 글이다. '나비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은 식욕억제제다. 10·20대 사이에서는 다이어트약으로 알려졌다. 이 약의 주성분인 펜터민은 의존성이 강해 마약류로 분류된다. 그래서 16세 이하 소아 등에게 디에타민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 성인이어도 병원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을 살 수 있다. 그런데도 온라인에 디에타민 매매 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디에타민 대리 구매자를 원한다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10대들의 사례도 여럿 있었다. 중학교 3학년 B양은 지난해 중고 사이트에 다이어트약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이후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B양은 기본교육 등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가 최근 공개한 사례도 이와 유사했다. 경남청은 6월16일 마약류관리법상 마약 매매, 판매 광고 혐의를 받는 중·고등학생 40명 등 모두 5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3~4월 병원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 명의로 디에타민을 처방받은 뒤, SNS에 광고를 올려 이를 판매하거나 투약한 의혹을 받는다. 검거된 59명 중 무려 46명이 10대였다.

조기 유학을 떠난 10대가 마약에 중독돼 학업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17세 C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C군은 처음에는 대마에 손을 댔다. 이후에는 엑스터시, LSD 등 중독성 강한 향정신성의약품을 찾기 시작했다. 유학을 떠난 지 불과 5년 만에 마약에 중독된 C군은 결국 가족 손에 이끌려 귀국해 중독재활센터를 찾았다.

통계상으로도 10대 마약 사범은 늘어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부터 4년간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8107명, 1만411명, 1만2209명, 1만626명으로 집계됐다. 10대는 이 기간 205명(104명→164명→241명→309명), 30대는 633명(1804명→2499명→2803명→2437명) 늘어났다. 20대는 2115명(1392명→2422명→3211명→3507명)이나 증가했다. 40대는 304명 줄어들었다. 경찰청이 검거한 마약류 사범은 올해 6월 기준 5988명이다. 10대 179명, 20대 1990명, 30대 1280명이었다.

이러한 마약류 사범은 다양한 직군에서 나왔다. 학생, 회사원뿐만 아니라 가정주부에서 그 수가 늘어났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호텔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30대 가정주부가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대검찰청의 마약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 중 학생은 494명(3.1%)으로, 2017년(105명, 0.7%)보다 2.4%포인트 증가했다. 회사원은 1010명(6.3%), 가정주부는 195명(1.2%)으로 각각 4년 전보다 2.6%포인트, 0.1%포인트씩 늘어났다.

마약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최근 알려졌다. 지난 7월 마약이 들어간 술을 마신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 종업원과 손님이 숨진 사건이었다. 이처럼 유흥주점에서 마약이 오가는 경우는 여전한데, 문제는 더 드러나지 않게 마약을 거래하는 경우다. 텔레그램, 채팅앱 등을 통한 온라인 마약 유통은 활발했다. 특히 '딥웹(deep web)'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 딥웹은 네이버, 구글 등 일반적인 검색엔진으로는 찾을 수 없다. 딥웹의 일종인 '다크웹(dark web)'은 '토르'와 같은 특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폐쇄성이 짙어 불법 거래가 쉽게 이뤄진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마약류 사범은 2021년 기준 2545명으로 2018년보다 1029명 늘어났다. 다크웹·가상통화를 이용한 경우는 832명으로, 같은 기간 747명 증가했다. 올해 6월 기준 인터넷 사범은 1512명, 다크웹·가상통화 사범은 547명이었다. 마약 판매상과 구매자가 직접 만나는 대신 '비대면 거래'가 이뤄진다. '던지기 수법'이다. 판매책이 마약을 특정 장소에 숨겨두면, 구매자가 이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주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마약조직범죄수사계장은 "젊은 층이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뒤 투약하는 경우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신종 마약류는 무서운 추세로 늘어나고 있다. 제한적으로만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식욕억제제·항불안제 등을 남용하는 경우가 퍼지고 있다. 펜타닐이 대표적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환자와 같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보다 효능이 훨씬 강하다. 소량만 투약해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18세 미만 청소년 등은 펜타닐을 투여할 수 없다. 그러나 펜타닐을 마약 대용으로 투약한 10대 40여 명이 지난해 5월 경찰에 적발되는 등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관계자가 3월8일 전북 전주시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태국인 마약 밀수 관련 설명회를 열고 증거품을 보여주고 있다.ⓒ뉴시스

'식욕억제제·진통제' 의료용 마약류 활개

10대부터 마약을 하는 경우, 보통 부탄가스·본드를 흡입하거나 대마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처방전이 필요한 디에타민, 펜타닐 등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넘어간다.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10대 중에는 엑스터시 등을 먼저 접하는 경우도 있다. 래퍼 윤병호는 2020년 11월 SNS에 "중학교 때부터 LSD, 엑스터시, 코카인 등을 했다"고 했고, 지난해에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펜타닐에 중독됐었다"고 밝혔다. 윤씨는 최근 대마초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마약 성분의 화학구조를 변형한 마약류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마약류는 정부의 법망을 피해 가기 쉽다. 마약 사건을 맡았던 복수의 법조인은 "필로폰, 대마 등 전통적인 마약류보다 신종 마약류를 판별하는 게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대검찰청의 마약범죄백서에 따르면,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 성분 수는 180개에 달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신규 마약류(임시 마약류)는 8월4일 기준으로 93개다. 전문가들은 신종 마약류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했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의료용 대마를 사용할 수도 있다. 공무, 학술연구 또는 의료 목적 등에 한해서만 대마를 쓸 수 있도록 마약류관리법이 2018년 개정됐다. 당시 신창현·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관련 개정안을 내놨다. 이들은 "현행법은 아편, 모르핀, 코카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는 의료 목적의 사용을 허용하면서 대마는 예외로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시한부 뇌종양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해외직구로 대마오일을 구입한 부모가 구속된 사건이 논란거리였다.

그래서인지 전체 마약류 중 대마 사범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대마 사범은 2018년 1533명에서 2021년 3777명으로 2244명 증가했다. 이는 아편, 양귀비, 코카잎 등 마약 사범이 같은 기간 278명 늘어난 데 비해 최대 8배가량 높다. 향정신성의약품 사범 역시 1018명 늘어난 것에 그쳤다. 2021년 기준 마약(-20.6%), 향정신성의약품(-15.9%) 사범은 모두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대마 사범만 17.6% 증가했다. 경찰이 검거한 대마 사범 역시 같은 기간 938명에서 2044명으로 1106명 늘어났다.

기준치 초과 대마 제품 유통…"세밀한 관리 방안 필요"

마약류 제품은 단속망을 피하기 쉽다. 대마 관련 상품이 대표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10월16일 대마에서 추출한 의료성분인 칸나비디올(CBD) 기준치를 고시했다. 대마 씨앗 제품은 10㎎/㎏, 삼(대마)씨유 제품은 20㎎/㎏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30㎎/㎏ 이상인 대마오일 등의 해외직구 제품이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태국의 대마 합법화도 이러한 문제를 키울 요소다. 태국은 6월9일 마약류에서 대마를 제외하면서, 대마 관련 상품을 마련했다. 지난해 4월 기준 캐나다, 우루과이 및 미국 20개 지역에서도 영리용으로 대마를 사용할 수 있다. 대검찰청은 "미국 일부 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대마 합법화 영향으로 여행자, 유학생 등의 대마 및 대마 관련 제품 등 밀수, 흡연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봤다.

국내에서 처벌 강화 요구가 나왔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류 사범을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8일 미성년자에게 대마를 제공하는 경우 형량을 현재의 '1년 이상 징역'에서 '3년 이상'으로 늘리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마약을 상습적으로 유통한 경우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지만, 투약한 경우 등은 징역 3년형까지 처해진다.

현장에서는 단속과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마약류 사범 중 약을 투약해 적발된 이들이 절반 이상이니만큼, 마약을 접한 이들을 치료해야 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전체 인구 중 마약을 하는 비율이 1%를 넘어가면 위험 수준이 될 수 있다"며 "단속이 치료와 재활 등과 연결돼야 효과가 있는 만큼 기관 간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1992년 설립)는 현행법에 근거해 마약 퇴치 및 재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과 부산 두 곳에 거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본부에 등록한 이들은 모두 531명이었다.

그러나 치료보호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21개 의료기관에서 치료보호를 받은 인원은 지난해 280명에 불과했다. 수사기관의 마약류 사범 단속 수와 비교했을 때도 치료보호 실적이 저조했다. 이마저도 특정 병원에만 환자가 몰린 결과다. 인천 참사랑병원 164명, 경남 국립부곡병원 107명 등으로 전체의 97%에 달했다. 현재 정부조차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종 마약류는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범죄 예방과 치료·재활에 중점을 둔 관리 방안이라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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