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약국서 인슐린이 없대요" 법 때문에 당뇨환자들 운다

황수연 2022. 8. 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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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 딸이 1형 당뇨병을 앓는 정모(45)씨는 최근 인슐린을 구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딸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되는 1형 당뇨병 진단을 지난해 받았다. 매일 10차례, 많은 땐 20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모녀가 사는 경기도 화성시의 병원에서는 처방전을 받고도 약국에서 인슐린을 살 수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에게 약사는 “전산상에 재고가 없다고 뜬다”고 했다. 이어 직접 도매상과 통화한 뒤 “최근 강화된 생물학적 제제 배송 규정에 따라 업체에서 더는 인슐린을 유통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를 데리고 인슐린을 구해줄 수 있다는 다른 약국을 수소문해 찾아갔다는 정씨는 “당뇨 환자는 대학병원 오지 말고 동네 병원으로 가라면서 정작 약국에서 약을 못 구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혈당 체크 이미지. 중앙포토

최근 당뇨 환자들이 겪는 일이다. 생물학적 제제 배송 규정이 강화돼 유통업체들이 인슐린 납품을 꺼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유통 업체의 납품 포기ㆍ지연으로 약국들이 인슐린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거나 공급 자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라며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1형 당뇨인들은 약국을 찾아 헤매거나 의약품 유통업체가 인슐린을 배송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이 생긴 건 정부가 지난해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ㆍ판매관리 규칙’을 개정하면서다. ‘생물학적 제제’는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에서 유래된 것을 원료 또는 재료로 해서 제조한 의약품으로, 백신과 인슐린 제제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유통 규제를 강화한 건 지난 2020년 독감 백신이 상온에 노출돼 예방 접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콜드 체인’(냉장 유통) 문제가 드러나자 생물학적 제제를 운송할 때 자동온도기록장치가 설치된 수송 용기나 차량을 써야 하고 관련 기록을 2년간 보관하게 했다. 온도계도 주기적으로 검ㆍ교정해야 한다. 업계의 우려로 6개월간 계도 기간을 뒀고 지난달부터 본격 시행됐는데 즉각 환자들의 애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슐린 주사 이미지. 연합뉴스.

유통업계에서는 콜드체인 구축에 비용과 인력이 필요해 이전과 같은 수시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업계 관계자는 “별도 배송 시스템을 갖춰야 하니 투자비가 추가로 발생하는데, 유통 마진은 그대로다. 손해 보고 장사할 수는 없으니 영세 업체 위주로 배송 횟수를 주 1, 2회로 줄이거나 아예 유통을 포기하는 곳들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인 유통 마진을 요구하는 업체와 제약사 사이의 협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수송 규정을 위반할 경우 최소 3일(1차 위반)에서 최대 6개월(4차)의 업무 정지 등 처벌 조항이 있는 점도 유통 업계의 부담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강모(60)씨는 최근 수십 개 약국에 전화를 돌려 겨우 인슐린을 구했다. 대학병원 인근 약국에서도 “재고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강씨는 “당뇨 환자는 밥을 굶어도 인슐린은 매일 맞아야 하는데 이런 문제가 장기화하면 약을 구하러 서울의 대학병원 앞까지 가야 하는 건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당뇨 연속혈당측정기. 연합뉴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1형 당뇨인들에게 인슐린은 공기와도 같은 의약품이다. 인슐린을 제때 주사하지 못할 경우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문제를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할 권리를 박탈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환우회 측은 “기존의 배송 시스템에서 인슐린 변질 등의 문제가 크게 보고된 바 없었다. 1형 당뇨인들이 상시로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인 만큼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신속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당뇨병연합도 지난달 식약처에 관련 법을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정부는 안전한 의약품 관리를 위해 관련 법 강화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김상봉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인슐린을 관리한다. 인슐린을 예외로 해도 안전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저변에 비용 문제가 있는데 식약처가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서도 “환자가 인슐린을 구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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