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주권을 강화한다

입력 2022. 8. 9. 15:05 수정 2022. 12. 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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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이들 수업을 취재한 적이 있다. 갑자기 한 아이가 날 보며 말했다. “제 얼굴은 찍지 마세요.” 그때 선생님은 사전에 보호자 동의를 받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물론 나는 그 사진을 찍지 않았다. 찍히기 싫다는 아이 표정이 진지해 보였으니까. 

이후 서서히 주변에서 초상권을 비롯한 개인정보에 관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청소년 프로그램 현장에 가게 됐다. 이번엔 달랐다. 미리 선생님이 언질을 줬던 거다.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깨 위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놨거든요. 부탁드릴게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걸까?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라 일컫는 지금의 아동·청소년은 어려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해왔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만큼 디지털 기기에 축적된 개인정보도 많고, 또 침해받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개인정보의 주체로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담당자에게 개인정보 관련 이야기를 듣고 있다.(사진=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제공)

지난 7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교육부, 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시대 아동·청소년이 개인정보 주체로 권리를 행사하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날 오후, 정부서울청사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찾았다. 정보 보호 관련 자료가 가득한 곳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한아 서기관(왼쪽), 조근환 사무관(오른쪽).

“2020년 8월에 이곳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출범했거든요. 그전까지는 개인정보에 관련해 부처마다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기본계획 발표는 관계부처가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정책과 조한아 서기관이 이야기를 꺼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 아동·청소년의 주체적인 권리 행사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교육자와 보호자의 인식 개선을 통해 다 함께 계획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데이터안전정책과 조근환 사무관이 말했다.  

해외 국가나 기업들은 아동·청소년을 더 특별하게 보호, 조처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미비한 실정이다. 단지 만 14세 이하 법정대리인 동의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동이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계획은 디지털 시대 아동·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 권리를 행사하며, 안전하게 보호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범국가적 대책을 마련하고자 추진됐다. 목표와 방향성도 뚜렷하다.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주권 강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에 4가지 중점 과제와 세부 과제도 세웠다. 

추진 과제는 이렇다.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 원칙과 체계를 정립하고, 권리를 실질화하고자 한다. 또 역량 강화를 지원하며 개인정보보호 환경을 조성하는 등 중점 분야를 중심으로 계획했다.

담당자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사진=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제공)

“현행법상 만 14세 이상은 성인과 같은 취급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성인과 중학생 아이가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법 개정을 통해 지금 만 14세의 아동·청소년 보호 범위를 만 18세(혹은 19세)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설명을 듣다 궁금해졌다. 현재 개인정보보호 대상인 만 14세를 만 18(19)세까지 확대하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

“차등화를 두는 거죠. 고등학생에게 부모 동의를 받으라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 14세 미만에게는 법정대리인 동의 제도처럼 높은 수준의 개인정보보호를 적용한다면, 만 18(19)세 미만에게는 ‘잊힐 권리’나 ‘개인정보 실제 이용 제공 내역’ 등으로 본인이 권리 보장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앞서 말한 장기간 축적된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힐 권리’도 추진한다. 2023년부터 본인이 올린 게시물을 삭제 또는 숨김 처리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자료실.

“현재 법정대리인 동의 제도는 획일적이라, 개선 방안도 법제에 담으려고 하고 있어요.”

획일적이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만약 친권자인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셨다고 가정한다면요. 자녀는 도서관 도서 대출이나 교육방송 가입 등 일상생활 자체가 제한될 수 있거든요. 이럴 때 실질적인 보호자가 대신 동의할 수 있도록 개선하려는 겁니다. 법정대리인이 아이에게 학대를 하거나 행방불명됐을 경우도 권한 행사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비슷한 경우를 들었던 듯싶다. 한 아동이 법정대리인 동의가 필요한데, 실제로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난처했던 이야기였다.  

이런 권리를 실질화하려면 앞으로 만들어질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중요하다. 이에 7월 22일 현행 법체제에서 개인정보 담당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행했으며, 세부 내용은 점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7월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행했다.

“어린 학생들은 개인정보 개념을 잘 모를 수 있어서요. 어린 학생에게는 쉽게 이름이나 전화번호 등이 개인정보라는 걸 알려주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침해 대처법이나 받을 수 있는 권리 등 한층 더 나아가 교육할 생각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학교 현장에서 개인정보 교육이 잘 이뤄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 등과 협의해 콘텐츠를 다양하게 하고, 아동·청소년 및 교육자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하려고 한다. 

개인정보보호 환경 역시 안전하게 조성한다. 실태 조사를 통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임과 SNS, 교육 학습을 중심으로 민관이 협력해 자율보호를 확대하도록 할 예정이다.  

“개인정보보호 중심 설계라고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사진, 영상을 올릴 때, 공개 범위를 매번 설정하도록 해 놓는 거죠.” 조 서기관이 알기 쉽게 들려줬다.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적으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셰어런팅(sharenting)에 관해 궁금했다. 셰어런팅은 보호자가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사진, 동영상을 SNS 등에 올리는 걸 말한다. 피해 사례도 많이 들어봤을 터다. 부모가 무심코 SNS에 어린 자녀 사진을 올렸는데, 인터넷에 그 사진이 여기저기 퍼진 경우 등이다. 물론 아이를 귀여워하는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유괴 및 범죄 같은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례도 있다. 아이가 별생각 없이 부모님 정보를 올렸는데, 공동 계정을 사용하면서 부모님의 중요한 정보들이 노출된 경우다. 실제 상담 사례 중에는 별생각 없이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알려줬다가, 후에 이를 빌미로 협박을 당하는 등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한아 서기관, 조근환 사무관이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지금까지 무심코 자녀 사진을 올렸다면,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잖아요. 그런 행동 자체가 전 큰 변화라고 여겨요. 이런 생각이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의 출발점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보거든요.” 조한아 서기관이 밝게 웃었다. 

“저도 아동·청소년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기쁘게 생각해요. 이런 관심들이 아동의 권리 인식을 신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디지털을 누릴 수 있도록 유도해나가겠습니다.” 조근한 사무관이 힘주어 말했다.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두 담당자에게 개인정보에 관해 자세히 듣고 나니, 아동·청소년에게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한층 더 실감됐다. 문득 집 전화번호를 사용했던 내 첫 PC통신 아이디가 떠올랐다. 다행히 이용자가 많지 않던 초창기라 가벼운 장난 전화 정도에서 그쳤지만,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앞으로 제정될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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