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닥터 쇼핑, 명의를 찾아 나서다

기고자/정소연 박사(국립암센터) 2022. 8. 1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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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斷想>
헬스조선DB

암을 진단받으면 환자와 가족들은 소위 ‘멘붕’을 겪습니다. 소식이 알려지면 일가친척, 친구 및 주변 지인들은 모두 조언자로 돌변합니다. 다양한 매체로부터 습득한 암에 좋다는 음식, 시술, 치료법, 명의에 대한 정보를 들려줍니다. 물론 이렇게 소개된 명의들의 실력이나, 이를 권유하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제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넘치는 정보 때문에 암환자와 가족은 오히려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소문난 의사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면서 진짜 암이 맞는지, 무슨 설명을 어떻게 하는지, 소위 나와 ‘케미’(의사와 환자의 신뢰, 흔히 ‘라뽀’라고도 한다)는 잘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봅니다. 일류 병원의 명의에게 진료 받은 뒤 수술 날짜까지 받아두고도 다른 병원을 방문해 다른 상담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치료받을 병원과 주치의를 결정해야 비로소 안심되기 때문일 테지요.

이러한 과정을 닥터 쇼핑(doctor shopping), 호스피탈 쇼핑(hospital shopping)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 기사를 찾아보니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싫은 환자의 행태’로 닥터 쇼핑이 꼽힌 바 있습니다. 닥터 쇼핑은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의 원인이자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절에는 감염전파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병,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병을 치료해 줄 의사가 명의이길 바라고, 나에게 잘해주길 바라고, 그로 인해 완치되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합니다. 암으로 진단된 내 가족이 최상의 병원, 최고의 의사 손에 치료받았으면 하는 보호자의 마음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의사와의 돈독한 신뢰 관계는 꾸준한 치료를 이어나갈 동력이 되기에, 나와 맞는 의료진을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환자와 가족의 간절한 바람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절대 아닙니다. 처음 진료 받고 진단받은 병원에서 모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검진이나 진단을 받은 일차병원에서 의뢰서를 받아 암 전문병원으로 가는 시점에, 소위 빅5라 불리는 여러 암 전문병원을 ‘모두’ 배회하거나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검사하는 경우를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환자와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진들의 실력은 수준급으로, 상향평준화 돼있습니다. 지역별로 지역암센터들이 있는데요. 그곳에는 암 치료에 숙련된 전문의들이 상주하고 있고, 조기 암의 경우 그 치료법이 프로토콜화 돼있어 충분히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각 의학회들마다 진료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의료진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암의 진단, 치료, 관리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병원마다 암종별 ‘적정성 평가’를 받은 뒤 이를 공개하게 함으로써 병원과 의료진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입증하듯 우리나라 암 생존율은 꾸준히 향상했고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위암이나 대장암의 경우 OECD 국가들 중 가장 좋은 예후를 보일 정도입니다. 치료시기를 놓쳐가면서까지 닥터 쇼핑, 호스피탈 쇼핑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외로, 환자의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다양한 치료 옵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치료가 해당 병원에서는 어려운 경우, 희귀난치 암이나 진행성 암이라서 임상시험을 통한 신약치료가 필요한데 해당 지역의 지역암센터에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검진을 받은 지역암센터의 담당 선생님과 상의할 것을 권유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지금의 주치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되레 화를 입을까 두렵고, 병원으로 다시 되돌아오고 싶어질 때 나를 거부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설 것입니다. 그래서 입 밖으로 다른 치료 옵션이나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환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치료가 있는데 여건상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이니까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 병원마다 진료협력 체계를 통해 전원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돕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습니다. 주변인의 의견만 듣고 홀로 헤매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확실히 받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치의에게 명확히 전달하고, 치료 방향을 함께 결정하면 되는 일입니다.

암주치의라면 자신이 신뢰받을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고,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진료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암환자들이 소위 최고의 병원이나 명의를 찾아 헤매기보다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 안에서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정책 개선 또한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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