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땐 '혁신용', 야당 땐 '방탄용'..'계륵' 된 부정부패 조항

탁지영 기자 2022. 8. 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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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헌 80조' 논란으로 본 정당 당헌·당규 변화
박근혜·문재인 당대표 시절, 정치개혁 일환으로 각각 도입
“부정부패 엄단” 취지에도 “과하다” 당내 반대에 잦은 개정
처벌도 유명무실…정치적 ‘유불리’ 따른 고무줄 적용 반복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의 쟁점인 당헌 80조는 부정부패 관련 범죄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내용이다. 여야 모두 부정부패 엄단을 위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유불리 상황에 따라 개정을 시도해왔다. 선거를 앞둔 때는 혁신과 자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야당이 됐을 땐 정치탄압을 강조하며 느슨하게 바꿨다.

■원조는 문재인·박근혜

현행 민주당 당헌 80조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우 사무총장이 당직을 정지하도록 한다.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인정된다면 중앙당 윤리심판원의 의결을 거쳐 징계 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게 했다.

이는 20대 총선을 10개월가량 앞둔 2015년 6월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당시 혁신위는 혁신안에서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 당직을 즉시 박탈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되면 그 선거구에는 무공천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무공천 원칙은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선 당시 민주당 스스로 뒤엎었다.

부정부패 방지 관련 당내 규정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먼저 만들었다. 2004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표가 ‘검찰 기소 시 당원권 정지 및 유죄 확정 시 영구 제명’을 개혁 방안으로 내세웠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밝혀지자 비리 정당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낸 혁신책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2018년 12월 자유한국당은 당원권 정지를 ‘당직 정지’로 개정했다. 재판 결과가 검찰의 기소 내용과 다를 수 있는데 재판 내내 당원권 정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야당이 되면서 정치보복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현재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있으면 뭐하나…유명무실 조항

여야 가릴 것 없이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소속 정치인을 당헌·당규에 따라 처리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부정부패 엄단 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009년 12월 공성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자금 명목 등으로 수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뇌물죄나 정치자금법으로 기소만 돼도 당원권을 정지한다’는 당헌에 따라 그는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이듬해 6월 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지도부 총사퇴 때까지 최고위원 직무를 수행했다.

민주당에서 당헌 80조를 적용한 1호는 윤미향 의원이다. 2020년 9월 당시 민주당 소속 윤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보조금 부정수급(보조금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되면서다. 기소 당일 윤 의원이 먼저 모든 당직에서 사퇴하고 당원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다음날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따라 윤 의원의 당직과 당원권을 정지시켰다.

민주당은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 등으로 논란을 빚은 이상직 전 의원과 재산 신고 누락 및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김홍걸 무소속 의원을 당 윤리감찰단에 회부했다. 기소 전이라는 이유였다. 두 의원 기소 후에는 자진 탈당으로 마무리했다.

■혁신인가, 내로남불인가

당헌 80조 개정 논란은 전당대회 대표 후보인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의 요구가 민주당 당원 청원 1호가 되면서 시작됐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검찰 기소가 뻔하니 기소 시 직무정지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보복 차원에서 기소될 수 있기 때문에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의원 본인도 지난 9일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검찰의 야당 탄압 통로가 된다는 측면에서 (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저 때문에 개정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방탄용’ 지적에 선을 그었다.

이 같은 개정 요구는 민주당이 세 차례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혁신을 공언했던 것과 배치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기소 시 당직 정지 조항은 남겨둔 채 징계 취소 등을 의결하는 주체를 윤리심판원에서 최고위원회로 바꾸는 방안,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의 당직을 정지하는 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오는 16일 전준위 당헌당규개정분과 회의에서 입장을 정리한 뒤 17일 전준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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