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습관의 힘

한은형 소설가 2022. 8.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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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철원

다음 중 미국 대통령이 아니었던 사람은? 1. 조지 워싱턴 2. 토머스 제퍼슨 3. 에이브러햄 링컨 4. 앤드루 잭슨 5. 벤저민 프랭클린. 답은 5번,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이 문제의 함정은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많이 들어보기도 했고 웬만한 미국 대통령보다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대통령이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달러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다. 대통령도 아니었으면서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앤드루 잭슨과 함께 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었으면서도 어떻게 100달러 지폐에 얼굴을 박았나? 이게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나는 그가 시간 관리를 잘한 걸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그가 쓴 책이 최초의 자기계발서라는 것도. 시간 관리를 도와준다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붙은 ‘프랭클린’이라는 고유명사가 벤저민 프랭클린에서 왔다는 것도. 그의 특별한 삶의 기술에 영감을 받아서 프랭클린 플래너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것이다. 대체 교육도 얼마 받지 않은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계발했던 걸까라고.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형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뜨끔해지는 이 말이 프랭클린 플래너 홈페이지에 있었다. 그는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며 그날의 날씨와 사건들을 기록했다고 한다. 더 신경 쓴 게 있었으니, 본인이 정한 13가지의 덕목을 지키는 것이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약, 근면, 진실함, 정의, 온건함, 청결함, 침착함, 순결, 그리고 겸손함이다. 이 덕목들 모두를 본인의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하나씩 실천한다. 하나가 완성되면 다음 하나로 넘어가는 게 좋다며. ‘절제’가 완성되면 ‘침묵’으로, ‘침묵’이 완성되면 ‘질서’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순서로 늘어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앞의 덕목을 실천할 수 있게 되면, 뒤의 덕목을 실천하는 건 비교적 쉽다면서. ‘절제’가 가장 처음인 것은 절제 없이는 다른 것들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이 말하는 ‘절제’의 규율은 이렇다.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다음 순서는 이러하다. 13가지 덕목들을 세로에, 요일을 가로에 넣고 표를 만들어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해당 칸에 까만 점을 찍는다. 수요일에 ‘결단’이 미비했으면 까만 점, 금요일에 ‘침묵’과 ‘검약’과 ‘근면’을 못 지켰으면 세 개의 까만 점을 찍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주일에 한 덕목씩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첫째 주에는 ‘절제’에만, 둘째 주에는 ‘침묵’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13주를 지내면 13가지 덕목을 실천할 수 있었고, 이런 식으로 일 년에 네 번 실행할 수 있었다고.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밭의 잡초를 뽑을 때에는 한 번에 몽땅 뽑으려고 덤비지 말라고. 자기 능력껏 한 뙈기를 끝낸 후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나는 그가 지키려고 애썼던 13가지 덕목들에는 관심이 없다. ‘절제’와 ‘침묵’이 나한테 왜 필요한지 모르겠고, ‘진실함’과 ‘정의’라는 말처럼 위선적인 말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가 이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사이에 위계를 정하고, 이 덕목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을 반복했던 것에는 관심이 많다. 그가 일찍이 했던 저 일들은 현대인들이 ‘리추얼’이라고 말하는 습관의 힘이니까. 시사상식사전은 리추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습관을 실천하는 것으로 코로나 블루와 취업난, 주택난 등에서 오는 무력감을 극복하려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인스타그램에는 이런 리추얼 라이프를 반영한 해시태그들이 있다. ‘오운완’은 ‘오늘 운동 완료’의 줄인 말, ‘갓생 살기’는 ‘갓생’에서 파생된 단어로 갓(god)과 생을 결합한 말이다. 오운완 같은 특정한 목표를 정하고 매일 실천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삶이 갓생이다.

나는 어려서도 나였고 나이 들어서도 그저 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나는 좀 멋지지 아니한가. 벤저민 프랭클린과 갓생을 사는 이들은 요즘 나의 인플루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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