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석탄 급해진 中, 호주에 화해 손짓… 호주 “제재부터 풀어라”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2. 8.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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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경제보복 2년, 뒤바뀐 판세

싱가포르에서 열린 19차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폐막한 6월 12일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과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이 저녁을 겸해 1시간 동안 만났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양국 간 장관급 회담이 열린 것은 거의 3년 만이었다. 2020년 4월 스콧 모리슨 당시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촉구한 이후 호주와 고위급 접촉을 단절했던 중국이 국제 다자 외교 무대를 통해 다시 호주와 소통에 나선 것이다.

달라진 중국, 장관급 회담 재개

한 달 뒤인 7월 8일에는 주요 20국(G20) 외무장관 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페니 웡 호주 외무장관이 회담을 가졌다. 왕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수년간 양국 관계가 어려웠던 것은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한 호주 전 정부 때문이었다”면서 “양국 관계가 정상 궤도로 복귀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다만, 관계 회복의 조건으로 ‘중국을 적이 아닌 협력 상대로 볼 것’ ‘제삼자(미국)에 휘둘리지 않을 것’ 등 4가지를 요구했다.

지난 5월 호주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 중국이 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는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고위급 대화는 없다”며 연락조차 받지 않았던 중국이 스스로 태도를 바꿔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전임 스콧 모리슨 총리 시절 양국 관계는 최악이었다. 호주는 2018년 안보를 이유로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촉구하면서 미국이 제기한 ‘중국 책임론’에 힘을 실었다.

중국은 여기에 발끈해 호주산 석탄과 구리, 목재, 와인, 킹크랩 등에 대한 수입 제재를 발동하고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중국 무역 의존도가 35%에 이르는 호주의 약점을 찌르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호주는 중국의 경제보복에도 2021년에는 대중 견제를 위한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가입했고, 미국·영국과 함께 오커스(AUKUS) 동맹을 체결하는 등 반중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새로 출범한 호주 노동당 정부도 안보 분야는 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입장이다.

7월 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외무장관회의에 참석한 페니 윙 호주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현지에서 회담을 가졌다. /중국외교부

당대회 앞두고 정전 사태 재연 우려

서방 분석가들은 호주의 대중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한 이유를 석탄에서 찾는다.

중국은 작년 7월부터 가을까지 석탄 공급 부족으로 동북 지방을 비롯한 전국 20여 개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주민 생활 불편은 물론, 공장 가동까지 중단되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호주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경제 보복이 오히려 스스로 발등을 찍은 꼴이 된 것이다. 호주산 석탄에 대한 금수 조치가 나오기 전인 2019년 중국이 수입한 호주산 석탄은 7689만t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26%를 차지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정이 더 급해졌다. 유럽연합(EU)이 지난 4월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에 합의한 탓이다. 중국은 그동안 인도네시아산 석탄 수입을 늘려 호주 석탄의 공백을 메워왔는데, 이제는 인도네시아산 석탄을 놓고 유럽 국가들과 구매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올해 10~11월 시진핑 주석의 연임이 걸린 20차 공산당 당대회가 열린다는 점도 부담이다. 연임을 앞두고 전국적인 정전 사태가 재발하는 최악의 상황이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국내 석탄 생산을 대폭 늘리고, 호주산 석탄 금수 조치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뉴스는 7월 14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 부처 실무진이 2년 가까이 계속해온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방안을 최고위층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EU의 러시아산 석탄 제재로 석탄 공급 차질이 발생해 정전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호주산 수입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관인 국무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중국 석탄 수입업계에서도 호주산 석탄 금수 조치가 곧 풀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중국 국내 매체들이 전했다.

중 제재에도 석탄 수출 급증

호주는 느긋한 입장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왕이 외교부장이 제시한 4가지 관계 회복 조건에 대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은 건설적이었고 관계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면서도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중국이 무역 제재부터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지만, 중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며 “호주는 어떤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호주 관료 출신인 리처드 마우드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선임연구원은 “관계 회복을 하려면 중국은 호주 대중 정책의 연속성을 인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 상황도 호주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호주는 작년 상반기 중국의 석탄 금수 조치로 수출 물량이 다소 줄었지만, 하반기부터는 국제 석탄 가격이 뛰면서 수출액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직후인 지난 2월 28일 국제 석탄 가격은 t당 436.59달러로 중국 금수 조치 당시인 2020년 10월 5일 57.65달러의 7.6배 수준이 됐다. 석탄 가격 고공 행진 덕분에 호주의 석탄 수출은 지난 5월 작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호주 ‘反中여론’ 3년새 12%→6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호주를 방문하고 2015년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을 때만 해도 중국과 호주 관계는 최상이었다.

2017년 호주 노동당 샘 데스티에리 상원 의원이 중국 공산당과 관련이 있는 중국인 사업가에게 정치자금 제공 등 후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국 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호주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2018년 호주 의회는 외국 정부의 국내 정치 간섭을 막는 내용의 ‘내정간섭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사건을 중국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 호주 정부는 화웨이 5G 통신 장비 사용 금지, 코로나 19 기원 조사 요구 등 반중 조치를 잇따라 내놓았다. 중국은 대대적 경제 보복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이어진 중국의 경제 보복은 효과를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만 불렀다는 게 국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와인, 킹크랩 등 일부 분야가 피해를 보았지만, 호주 경제는 작년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고, 올 상반기에는 기록적인 무역 흑자를 냈다.

경제 보복은 호주 국민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크게 악화시켰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안보 위협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은 2018년 12%였지만, 작년에는 63%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경제 협력 파트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82%에서 34%로 급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7월26일 자에서 “호주는 무역제재를 놀라울 정도로 잘 헤쳐나갔으며 중국의 협박은 호주 국민의 결심만 단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매체는 “호주 국민은 경제가 안 좋아도 중국을 비난하지 자국 정치인을 비판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호주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익을 굳건하게 지킬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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