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회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영화 첫 상영

도쿄/최원국 특파원 2022. 8.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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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다카카게

10일 오후 일본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섭씨 35도에 이르는 무더위에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다룬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일본 시민들로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의원회관 입구에는 약 20m 줄이 이어졌다. 영화가 상영된 대회의실 200석 넘는 좌석이 가득 찼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재일 교포 오충공 영화감독의 ‘감춰진 손톱자국-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이다. 오 감독은 도쿄 인근의 아라가와강 제방에서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유골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학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동포들의 증언을 모아 조선인 학살의 참상을 다뤘다. 영화에서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사진이 나오자 관람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행사를 주최한 ‘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 추도대회 준비회’의 후지타 다카카게(藤田高景) 이사장은 영화 상영 전 “일본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 문제를 기록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관동대지진의 실상을 알리고 희생자 추모를 위해 지난해 12월 발족했다.

10일 일본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열린‘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영화 상영회’를 찾은 일본인들이 학살 당시 사진 자료를 보고 있다. /최원국 특파원

후지타 이사장은 1995년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결의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 일본의 지식인 모임을 이끄는 시민운동가다. 그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일본의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재무장을 추진하자 2013년 대학교수·언론인 등과 함께 국수주의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가마쿠라 다카오(鎌倉孝夫) 사이타마(埼玉)대학 명예교수,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명예교수, 나카무라 아키라(中村眀) 전 교도(共同)통신 편집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일본 간토, 시즈오카, 야마나시 지방에서 일어난 7.9 규모의 지진이다. 사망자 등 희생자가 40만여 명에 달하고 200만명이 집을 잃는 등 일본 지진 재해 사상 최대 피해를 입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인과 중국인이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일본 군대, 경찰과 일본인이 조직한 자경단 등에 의해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이뤄졌다. 독립신문은 관동 지역 조선인 1만5000여 명 중 6600여 명이 학살당했다고 기록했다. 이날 연사로 나선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와 군대, 경찰 등이 학살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학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관객석에서는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다.

추도대회 준비회는 내년 9월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추도회도 연다. 후지타 이사장은 “일본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세계에 알려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숨겨진 역사의 사실과 마주하고 희생자의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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