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별' 김기민 "최고 자리보다 '나만의 춤' 완성이 꿈"

김소연 2022. 8. 1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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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
18~20일 '발레 슈프림 2022'.. 3년 9개월 만에 내한
"지난해 국립발레단 공연 참여 못 해 한국 팬에 죄송"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은 수석무용수 김기민의 소개란에 "그는 최상급의 형용사를 빼놓고 묘사하기 어려운 무용수다. 춤을 위해 태어나 춤으로 숨 쉬는 몇 안 되는 무용수이기에 그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현지 매체의 평가를 언급해 놓았다. ⓒYOON6PHOTO

"늘 고국 무대를 최우선 순위로 고려하는데 작년 봄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출연이 무산돼 정말 속상했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은 힘도 나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239년 역사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유일한 아시아인 수석무용수 김기민(30)은 18~20일 '발레 슈프림 2022' 갈라 공연을 앞둔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멕시코에서 초청 공연 일정을 마친 5일 화상(줌·Zoom)으로 만난 김기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연 기회를 놓쳤지만 한국 팬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덧붙였다. 김기민은 지난해 코로나19 자가 격리 면제 불발로 내한이 무산되면서 이번에 3년 9개월 만에 고국 무대에 서게 됐다. 2018년 11월 마린스키 발레단의 '돈키호테'가 마지막 내한 무대다.

발레리노 김기민. ⓒJulia Sumzina

이번 공연은 러시아 볼쇼이, 영국 로열, 독일 슈투트가르트 등 다른 명문 발레단 무용수들과 함께 꾸린다. 김기민은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마리아넬라 누네즈와 '해적' '돈키호테'의 그랑 파드되(2인무)를 선보인다. 그는 "나는 파트너 복이 좋다"며 "좋아하는 파트너와 함께 하니 관객도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나 코조카루 로열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프리드만 포겔이 합을 맞춘 '오네긴'의 '회한의 파드되'와 '마농'의 '침실 파드되'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200명이 넘는 무용수 중 단 13명에 불과한 수석무용수로 벌써 여덟 번째 시즌을 맞는 김기민은 "처음 승급했을 때 기분이 좋았던 것 외에는 항상 춤과 함께하고 있어 생활의 큰 변화는 없다"고 했다. 그는 "내 행동 하나로 러시아에서 한국 무용수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수석무용수가 되기 전에도 책임감을 무겁게 느껴 왔다"고 설명했다.

'돈키호테'에 출연한 발레리노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제공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의 아시아인 발레리노로 입단한 김기민은 입단 두 달 만에 주역으로 발탁됐고, 2015년 만 23세에 최연소 수석무용수가 됐다. 그해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공연에도 주역으로 데뷔했고 2016년엔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마린스키 극장 공연과 러시아 국내외 투어, 해외 초청 공연 등 한 해 약 70회의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이미 3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원에서 발레를 처음 접한 김기민은 발레를 시작한 이래 쭉 마린스키를 꿈꿨다. "전설적 작품은 물론이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나탈리아 마카로바 같은 전설적 무용수를 배출한 곳에서 발레의 역사를 느끼고 싶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마린스키는 발레단 부설 발레학교인 바가노바 출신에게만 오디션 자격을 주는 게 정설일 정도로 순혈주의가 강했다. 김기민이 입단할 당시만 해도 외국인 단원은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지금은 김기민의 활약 덕분인지 외국인 단원 숫자가 두 자릿수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마리아넬라 누네즈와 김기민의 '해적' 파드되. ⓒYOON6PHOTO

김기민은 여러 '최초' 타이틀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한동안 두려움과 고민이 커졌던 시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나는 춤을 추고 싶어 발레를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유명한 무용수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를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연습 벌레'로 유명한 김기민은 체공 시간이 유독 길어 '중력을 거스른 듯한 점프'라는 찬사를 받곤 한다. 요즘은 점프나 한 발로 회전하는 피루엣뿐 아니라 감정 표현이 중요함을 알기에 박물관에 가고 다른 공연과 영화를 보는 시간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그런 김기민의 꿈은 최고가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주역이 아니어도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는 정말 많다"면서 "어떤 높은 자리를 향하기보다 '김기민의 춤'이라는 정체성을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발레리노 김기민. ⓒJulia Sumzina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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